하고 싶던 얘기를 먼저 꺼내는 그대가 있었으면 좋겠다. 언어들의 끝이 끝없이 따뜻해져서 이 느낌들만으로도 사랑의 가건물 한 동 짓고도 남겠다 싶은 그런 그대가 있었으면 좋겠다.
늙어가는 그대가 있었으면 좋겠다. 늙은 표정의 여유와 은은한 미소와 담담한 슬픔이 있었으면 좋겠다. 한밤중에 함께 마시는 차 한잔, 후루룩 입술에 닿는 물소리가 정겨운 그대가 있었으면 좋겠다. 재미없는 영화를 함께 보고난 뒤 눈을 맞추며 킥킥거릴 수 있는 그대가 있었으면 좋겠다. 무슨 책을 읽고 있느냐고 그 책의 어떤 대목에 줄 치고 있느냐고 물을 수 있는 그대가 있었으면 좋겠다. 잠 오지 않는 날 밤새도록 쪽지글 나눌 그대가 있었으면 좋겠다.
못생긴 생각들 어설픈 욕망들도 그 맑은 거울을 만나면 이내 아름다워지고 순결해지는 그런 그대가 있었으면 좋겠다. 거짓말들에 지친 입과 귀를 쉬게 하는 순정의 언어들을 들려주는 그대가 있었으면 좋겠다. 그 이름과 그 얼굴과 그 생각이 아주 담박해서 어쩌면 떠오르지도 않는 그대가 있었으면 좋겠다. 내 곁에 감도는 공기, 휘발하는 계절의 기분, 어느 날 발 담근 계곡물의 간지럼, 깊이 전해오는 해묵고 새로운 슬픔 같은 그대가 있었으면 좋겠다.
그대를 위해 남은 인생의 한 반쯤 떼어주고 싶은 욕심이 나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 내 눈이 멀어 떠도는 시간의 남루를 잊을 수 있는 그런 그대가 있었으면 좋겠다. 가진 기억이 이미 한 생애를 적셔 이대로 헤어져도 여한이 없을 그대가 있었으면 좋겠다.
이향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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