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금 구매시 가격을 깎아드립니다"
지하경제의 은밀한 유혹


박근혜 정부 지하경제 양성화 첫발
관리감독 범위·처벌 대상 모호

고위층 역외탈세 등 적발 어려워
현금 기반 서민경제 악영향 우려


위 사진은 기사 내용과 상관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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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오현길 기자]#3월 결혼을 앞둔 예비부부인 이 모씨와 박 모씨는 혼수 준비를 위해서 대형 가전대리점을 찾았다. TV와 냉장고를 구입하려고 보니 600만원이 훌쩍 넘었다. 대리점 점원은 자연스럽게 현금으로 결재하고 현금영수증을 발급하지 않는 조건으로 550만원에 판매하겠다고 제안했다. 가뜩이나 부족한 신혼자금을 아낄 수 있다는 생각에 현금으로 결재했다.

# 자영업자 최 모씨는 배달을 위해서 평소 몰고 다니는 1t 트럭에 기름을 넣기 위해서 가격이 저렴한 주유소를 찾는다. 일반 주유소 보다 가격이 ℓ당 100원 이상 싸다. TV에서 값이 저렴한 가짜 기름을 유통한 사람들이 붙잡혔다는 소식에 '혹시 가짜가 아닐까'라는 의심은 들었지만 싼 가격을 외면할 수 없었다.


# 직장인 정 모씨는 이번 겨울 휴가를 이용해 세일 기간을 이용해 명품 가방을 구입하려고 홍콩 쇼핑 여행을 다녀왔다. 관광 가이드로 부터 S급 가방을 판매하는 곳을 찾아낼 수 있었다. 평소 눈여겨봤던 명품 가방과 감쪽같은 모양에도 가격은 절반에도 미치지 않았다. 가짜 명품 가방은 여행용 캐리어에 깊숙하게 담아 세관의 눈을 피했다.


한국에서 살다보면 한번쯤 마주치는 지하경제의 일면이다. 한국 사회에 뿌리 깊게 자리잡은 관행이라는 말로 암묵적으로 이뤄지는 이 지하경제에 국민 대부분이 일조해왔던 셈이다. 눈 앞에 이익은 법보다 앞서기 쉬운 탓이다.


이에 박근혜 정부는 지하경제를 양성화해 조세형평성을 통해 세수를 확대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부담스러운 증세를 대신해 복지공약을 실천할 재원까지 마련하려는 계획이다.


이를 위해 가짜 휘발유, 주가조작 등 불법 지하경제를 향해 연일 강도 높은 비판을 하고 있다.


역대 정권이 지하경제에 관대했던 것은 아니다. 금융실명제를 비롯해 가짜 휘발유 합동단속이나 현금영수증 발행 의무화 조치 등 다양한 정책들을 시행해왔다. 또 올해부터 탈세 제보자, 이른바 '세파라치'에 대한 포상금이 1억원에서 10억원으로 무려 10배나 늘렸다.


현대경제연구원이 발간한 지하경제 해소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지하경제의 비중이 높은 원인으로는 높은 자영업 비율, 조세 회피 유혹 증가, 높은 부패수준, 비제도권 노동시장과 노동시장의 규제를 꼽았다.


그러나 여전히 지하경제가 숨 쉬는 바탕에는 바로 '나 하나쯤이야'하는 인식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이마저도 '월급 빼고 전부 올랐다'는 서민들의 현실을 감안하면, '정당성은 있지만 인정은 없다'는 비난을 초래할 수 있다.


벌써부터 지하경제를 양성화하겠다는 정부의 정책에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현금거래 비중이 높은 자영업자와 중소기업에게 역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그나마 되살아나는 경제를 다시 침체로 빠뜨릴 가능성이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두손 놓고 있자니 암암리에 불법을 조장하는 우를 범해야 하느냐에 의견이 분분하다.


◆지하경제 규모는 '고무줄'=연초부터 지하경제 근절을 위한 정부는 잰걸음 중이다.


국세청은 지난 2월말 가짜 석유를 만들어 팔아 세금을 탈루한 혐의가 있는 이들에 대해서 세무조사에 착수했다. 모두 66명으로 페인트 도매업체까지 포함됐다.


지식경제부에 따르면 가짜석유 탈루 세액은 연간 1조원 규모로, 무자료와 면세유 등을 포함하면 3조7000억원에 이른다.


2010년 한국석유관리원이 파악한 자료에도 가짜 석유에 따른 탈세 규모가 1조7000억원 수준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최근 단속이 강화되면서 규모는 줄어들고 있지만 점차 지능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국내에서 유통되는 유류제품 가운데 가짜가 차지하는 비중에 대한 정확한 집계는 없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아 물증은 없지만, 가격이 저렴한 주유소 등을 의심만 하고 있는 셈이다.


가짜 석유 유통 구조(자료:국세청)

가짜 석유 유통 구조(자료:국세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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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외에도 국세청은 이번 세무조사를 시작으로 차명재산 은닉, 비자금 조성, 고액 현금거래 탈루, 역외탈세 등에 대해 검증을 강화한다는 방침이다. 특히 고액 현금거래 탈루가 사회적으로 만연했다고 보고 이에 대한 조사가 심층적으로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역시 규모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조세연구원에 따르면 지하경제 규모는 2008년 기준 GDP의 17.1%를 차지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하지만 정확하게 집계된 자료는 아직까지 발표되지 않았다.


2005년 LG경제연구원은 GDP의 28.8%로 추정했으며, 새누리당은 한국의 지하경제 규모를 GDP 대비 24%로 추정하며 연간 372조원으로 보고 있다.


지하경제가 음성적으로 자생하다보니 정확한 추정이 불가능한 것은 일면 당연하다. 그러나 구체적이지 못한 추정치로 인해 자칫 무분별한 규제 강화 등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높다고 지적하고 있다.


일례로 가짜 석유 유통을 근절하기 위해 석유 불법유통 징후를 매일 점검할 수 있도록 수급과 거래 상황 보고 체계를 전산화하는 방안을 추진중이다.


이는 곧 전국 1만여개 주유소에서 판매량을 전산화해야 하며, 정유사와 공급계약 내역도 공개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에 주유소 업계 관계자는 "기름값 낮추자고 아르바이트 줄이며 인건비까지 줄이는 마당에 판매량 등을 일일이 전산화하자는 것은 탁상공론"이라며 "세금을 더 걷기 위해서 세금을 쏟아 붓는 현실"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지하경제, 뿌리뽑기 가능할까=박근혜 정부가 지하경제 양성화를 출범 초기부터 외치고 있으나 어느 선까지 가능할지에 대해서는 일선에서조차 확신하지 못하고 있다. 지하경제를 통한 탈세를 적발하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동안 적발 사례를 보면 가짜 휘발유나 현금영수증 미발급처럼 상대적으로 쉽게 적발할 수 있는 사례보다 비자금 조성이나 역외탈세 등 적발하기 어려운 방법으로 많이 발생하고 있으며, 더 대규모로 이뤄진다.


이는 또한 서민 경제에 연관된 지하경제와 불법행위에 기반한 지하경제를 구분하는 작업이 선행돼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특히 이 같은 경우는 적발했다 하더라도 처벌이 쉽지 않다. 지난 2월 서울중앙지법은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선박왕' 권혁 시도상선 회장에게 징역 4년과 벌금 2340억원을 선고했다.


'선박왕' 권혁 시도상선 회장 (참고사진)

'선박왕' 권혁 시도상선 회장 (참고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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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결과를 얻기 위해 국세청은 2년간 철저한 조사를 펼쳤고, 법정 다툼도 길게 이어졌다. 그만큼 역외탈세는 증명하기 어렵다는 반증이다. 앞서 국세청은 '구리왕' 차용규, '완구왕' 박종완 등 역외탈세 혐의자들과의 싸움에서는 연이어 패한바 있다.


현재 국세청이 변호사, 회계사, 골프장, 유흥업소 등 탈세 가능성이 큰 고소득 자영업자들에 대한 세무조사를 강화하고 있지만 기대만큼 성과를 거둘지 의구심이 드는 이유다.


때문에 일부에선 지하경제 양성화가 결국 현금거래 비중이 높은 영세 자영업자와 중소기업들의 조세 부담만 가중될 것이란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지하경제를 샅샅이 뒤져 세원을 밝혀내려는 시도가 국민의 생활을 위축시키고 갈등을 유발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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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실정에 맞는 다양한 맞춤형 정책이 요구된다. 자영업자나 고소득 전문직 성실납세자에게 인센티브를 제공하거나 현금거래가 많은 서비스 업종엔 전문적인 관리·감독을 도입하는 방안도 필요하다.


김민정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과세저항 및 서민경제에 미칠 부작용을 최소화하면서 제도적 유인책을 마련해야 한다"며 "단기적으로는 불ㆍ탈법 거래를 해소하면서 중장기적이고 체계적인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오현길 기자 ohk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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