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식 14년, 당뇨·구토의 나날
몸도 망치고 환경도 망쳤다는 어느 비건(100%채식주의자)의 고발
육식 포기는 더 많은 곡물 필요, 생태계 균형파괴 새 문제 야기
지방·콜레스테롤 과다 피하려다 영양결핍·저혈당증·관절염도
고기를 먹지 않는다고 다 같은 채식이 아니다. 채식주의자는 스스로 설정하는 한계의 '강도'에 따라 여러 단계로 분류된다. '폴로'는 붉은 살코기만을 먹지 않는 채식주의자로 닭고기까지는 허용한다. '페스코'는 우유와 달걀, 생선까지 먹는 채식주의자다. '락토 오보'는 유제품과 동물의 알은 먹을 수 있고 '락토'는 동물의 알을, '오보'는 유제품을 먹지 않는다. 여기서 더 나아간 것이 '비건'이다. 유제품과 알을 비롯해 모든 종류의 동물성 음식을 먹지 않는다.
2009년 미국에서 출간돼 논쟁을 일으켰던 '채식의 배신'(원제 The vegetarian myth)는 20년간 확고한 비건으로 살아왔던 저자 리어 키스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채식주의의 한계를 제시하는 책이다. 긴 세월동안 키스에게 채식은 신념이자 종교였다. "정의감, 연민, 이 세상을 바로잡고자 하는 절박한 갈망"으로 시작된 채식은 먼저 키스의 몸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이 변화는 채식이 건강에 이롭다는 '상식'을 부순다. 6개월만에 저혈당증이 찾아왔고 2년만에 척추에 엄청난 통증이 찾아왔다. 15년의 시간이 지나고서야 통증의 원인이 채식에서 비롯된 퇴행성 관절염이란 걸 알 수 있었다. 우울증과 초조감, 계속되는 구토 등 식이장애는 물론이었다. 최소한 키스에게 비건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스스로의 몸과 정신에 대한 파괴행위였다. 키스는 육체가 보내는 신호를 무시할 수 있는 동력이 됐던 정치적 신념조차 사실은 허구였다고 말한다. 결국 비건주의란 제목 그대로 '신화' 혹은 '도시전설'이었던 거다. 비건주의를 요약하는 키스의 한마디는 간단명료하다. "비건주의는 식이장애와 컬트종교가 혼합된 거야."
책은 3장으로 구성돼있다. 도덕적 이유와 정치적 이유, 영양학적 이유로 받아들여지는 채식주의에 대한 각각의 반론이다. 많은 경우 채식주의는 '생명윤리'에 기초한다. 육식은 생명을 파괴하기에 옳지 않다는 것이다. 키스는 이런 관점이 지극히 인간만을 고려한 것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과일에게는 생명이 없을까? 키스 자신도 조류와 포유류를 먹지 않기로 한 선택을 "엄마와 얼굴이 있는 것은 먹지 않는다"는 말로 표현해왔지만 이는 인간 중심의 사고방식일 뿐이었다. 채식이 육식보다 환경에 이로운 것도 아니다. 채식주의자들은 고기를 포기한 대신 더 많은 식물과 곡물을 먹어치우고 이를 공급하기 위한 농업은 지구를 파괴한다. 사람이 주로 먹는 일년생 곡물을 재배하는 과정에서 북아메리키 대목초지의 98%가 사라져버렸다.
정치적 이유의 채식도 같은 맥락에서 비합리적이다. 환경 저술가 짐 모터발리는 "인간에게 먹일 쇠고기 1파운드를 생산하기 위해 소에게 4.8파운드의 곡물을 먹이는 관행은 기아와 영양실조에 허덕이는 사람이 넘쳐나는 세상에서 막대한 낭비"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런 계산은 소에게 풀이 아닌 곡물을 먹인다는 전제에서만 유효하다. 모터발리의 말에 따라 고기를 끊는다면, 어차피 곡물 생산이 지구를 파괴해버릴 것이고 전반적 생산량도 줄어들어 다 같이 굶주리게 될 것이다. 게다가 전세계의 곡물 생산은 이제 대형 농업기업들이 쥐고 있다. 정말 정치적인 이유에서 식생활을 바꾸고 싶다면 공장형 축산으로 생산된 동물성 식품을 거부하되 지역 농민과 축산업을 지원하고 현지에서 지속가능한 생산법으로 기른 음식을 취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채식은 건강을 파괴한다고 주장하는 마지막 장은 주로 건강을 이유로 채식을 선택하는 국내에서 가장 논란이 될 만한 영역이다. 채식으로 건강을 잃은 키스 본인의 '경험담'이 절절하게 펼쳐지는 부분이기도 하다. 일단 곡물 위주의 채식 식사에는 전분과 당이 너무 많이 들어 있다. 이로 인해 장이 염증반응을 일으키고 분해되지 않는 식물성 단백질인 렉틴이 혈액으로 흘러들어가 크론병, 류머티즘성 관절염, 제1당뇨병, 다발성 경화증 등 자가면역질환에 걸릴 위험성이 높아진다. 육류 단백질이 빠진 고탄수화물 식단은 당뇨병을 비롯해 위 마비증까지 일으킨다. 키스는 "무려 14년동안 구토와 구역질, 헛배가 부른 느낌에 시달렸다"며 "비건 식생활의 여파에서 회복중인 사람들을 돕는 의사를 만나고서야 겨우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고 회고한다.
만악의 근원처럼 취급되는 지방과 콜레스테롤은 사실 우리 몸이 꼭 필요로 하는 성분이다. 게다가 많은 연구가 일반적 '상식'과 달리 콜레스테롤 섭취와 심장질환 사이에 연관성이 없다는 결론을 내놓고 있다. 그렇다면 왜 많은 사람들이 채식의 영양학적 환상에 빠져 있을까? 키스는 거대 식품자본이 채식의 드라마를 완성시켰다고 지목한다. 전분과 정제된 탄수화물은 식품업체가 가장 많은 이윤을 남기고 팔 수 있는 영양분이다. '저지방, 무콜레스테롤, 고칼슘' 딱지가 붙어 있는 식품이 날개돋친 듯 팔려나가는 현실이야말로 이 드라마의 진실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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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한국에서는 채식에 대한 대중적 논의가 진전되지 않았다. 한국채식연합에 따르면 국내 채식인구는 전체 인구의 1% 수준으로 이마저도 정확한 숫자는 아니다. 인구의 5~6%가 채식을 하는 미국이나 12~13%가 채식주의자인 영국에 비하면 채식이란 한참 낯선 습관이다. 처음 발간되고 3년이 지나 번역된 책이지만 국내에서는 이 책을 서구와 상당히 다른 지점에서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무분별하게 퍼져나가는 각종 건강 이론들을 비판적 시각에서 의심해보는 시각을 갖도록 하는 데는 부분적으로 기능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채식의 배신/리어 키스 지음/김희정 옮김/부키/1만 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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