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이규성 기자]서울사람이라도 한겨울에 궁궐을 찾는 사람은 드물다. 더욱이 궁궐 뒷편 정원을 산책하는 일은 더욱 없다.그러나 겨울 산책을 원하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가볼만한 곳이 있다. 창덕궁의 숨겨진 정원인 '비원(秘苑)'이다. 눈 덮힌 비원 풍경은 아주 색다른 맛을 안긴다.


특히 정원속의 숨은 계곡 '옥류천'은 유별나다. '비밀 정원 ?' 비원은 임금들만의 사적인 공간이기는 하나 음습하고 피비린내나는 권력 투쟁이나 환락에 빠진 임금의 어두운 욕망을 연상하지 않을 수 있어 좋다. 그 안에는 개혁과 애민정신 그리고 학문을 닦고, 수신하며 소요하던 조선 군주의 철학이 깃들여 있다.

비원은 창덕궁 담장 뒷편에 자리해 있다. 전각을 휘두른 담장의 배후다. '비원'으로 불린 연유는 명확치 않다. 비원은 북악산 보현봉에서 산자락 하나가 길게 능선을 이루며 청계천을 향해 치닫다가 멈춰선 자리에 궁과 한 몸을 이룬다. 창덕궁과 창경궁 등 두개의 궁궐은 물길을 찾아 산에서 내려온 목마른 청룡의 등을 사이에 두고 있다.


즉 궁궐의 배경에 정원을 둠으로써 정원은 북악산 전체로 확장된다. 북악산도 정원에 속하는 셈이다. 비원은 한국 정원의 진수이면서 우리 조상들의 가장 이상적인 자연관을 표현하고 있다.

평지에 커다란 동산을 쌓고, 호수와 물길을 내고, 기암괴석을 가져다 치장하고, 수많은 정자를 지어 다리로 연결한 다음 담장을 친 중국 정원은 그 자체가 하나의 토목현장이다. 반면 일본 정원은 산과 평원, 천(川) 등 자연의 축소판에 기화요초로 오밀조밀 꾸미는 인공적인 공간을 추구한다. 그러나 우리 정원문화는 권위 지향적이지도 않고, 인위적인 느낌도 들지 않는다. 더욱 더 과시한 흔적이 없다. 나무나 바위, 계곡 등 자연적인 형태를 그대로 살린다. 특히 비원이 그렇다.


창덕궁과 창경궁 두 담장 사이를 걸어 올라가면 아주 평범한 숲이 나온다. 거기서부터 '비원'이다. 제일 먼저 닿는 곳이 구비진 골짜기 사이의 '부용지'라는 연못과 그 주변의 정자다. 부용지 주변엔 부용정, 부용정을 마주 보고 있는 2층 전각 '주합루', 북측의 영화당이 있다. 모든 건물은 물을 시야로 두고 있는게 특징이다. 주합루 아래층은 왕실도서관인 '규장각'이며 윗층은 서책을 읽으며 토론하는 장소다. 정조가 젊고 유능한 인재를 모아 개혁을 추구하던 곳이다.

정조는 주합루(오른쪽) 아랫층에 규장각을 둬 젊은 인재를 모아 개혁을 추구했다. 영화당(왼쪽)은 과거 시험을 주재하던 장소다.

정조는 주합루(오른쪽) 아랫층에 규장각을 둬 젊은 인재를 모아 개혁을 추구했다. 영화당(왼쪽)은 과거 시험을 주재하던 장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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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용정 동측에 자리잡은 영화당은 넓은 마당을 끼고 있다. 창덕궁의 여러 전각보다도 높은 기단을 갖추고 있다. 마당에서 올려다 보면 압도적인 분위기기를 연출한다. 영화당 마당은 임금이 직접 과거시험을 주재하거나 무관들과 활쏘기 등 군사훈련을 하던 장소다. 정원의 한편에 학문과 무예를 연마할 곳을 뒀다는 점이 눈에 띤다.


다시 골짜기에서 기슭을 따라 걸어나가면 불로문이 나온다. 그 안쪽 왼편에 기오헌과 의두합이 있다. 효명세자가 아버지 순조에게 부탁해 지은 건물이다. 단청도 안 돼 있고 장식도 없는 수수하다. 시골 선비들의 서재같은 형상이다. 기오헌의 넓이는 열댓평도 안 되고, 의두합은 댓평 남짓이다.


효명세자가 독서와 사색, 학문을 닦았다. 이곳에서 더 몇걸음 나가면 애련지와 애련정이 나온다. 숙종이 연못과 정자에 '연꽃을 사랑한다'는 뜻을 붙였다. 불로문 더 안쪽에는 '연경당'이 있다. 연경당은 사랑채와 안채, 서재 등을 갖춘 양반집으로 지어졌다.고종 때 외국 공사를 접견하고 연회를 베푸는 장소로 쓰였다. 소현세자가 지었다.


여기까지는 비원속에 있으면서도 실질적인 비원은 아니다. 공용공간으로서의 정원이라면 연경당 너머 옥류천 일대가 임금의 사적인 공간이다. 옥류천에서야 비로소 비밀의 정원을 이룬다. 나즈막한 골짜기에 계곡이 형성돼 작은 물길기가 흐르는데 이것이 바로 옥류천이다. 따라서 옥류천은 창덕궁 후원 북쪽의 가장 깊숙한 골짜기에 흐르는 물줄기다. 계곡은 그저 도랑에 지나지 않고 물줄기도 가늘다. 그런데도 가장 한국적인 정원인 까닭은 무엇일까 ?


한겨울 옥류천에 들어서면 누구나 감탄사가 절로 난다. 한여름철과는 전혀 다른 풍경이다. 눈덮힌 숲에 앙상한 나무들, 소박한 정자와 도랑이 전부인 숨은 정원은 전혀 꾸밈이 없어 넋을 빼앗긴다. 주변은 모두 시야가 가려져 있고, 아주 깊은 숲에 든 착각을 들게 한다. 건물, 괴석, 담장, 석교, 계간, 폭포, 천정, 암석, 보도가 계곡의 형태에 맞춰 자연스럽게 놓여 있다. 주변의 갈참나무와 소나무, 가문비나무는 누가 손을 댄 흔적이 없다. 그저 흐르는 물은 흐르고, 작은 소(沼)에는 잠시 물들이 쉬어간다.

이곳은 임금들의 사적인 정원이다. 실질적인 비원이기도 하다. 주변 자연 환경을 전혀 거스르지 않은게 특징이다.

이곳은 임금들의 사적인 정원이다. 실질적인 비원이기도 하다. 주변 자연 환경을 전혀 거스르지 않은게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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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류천 일대는 제왕들이 치자로서의 번민을 잠시 벗고, 사색하고, 자족하며 스스로를 돌아보던 장소다. 네개의 정자가 그것을 말해 준다. 소요정, 태극정, 취한정, 청의정, 농산정은 왕들이 머물던 곳이라기 하기에는 지나치게 아담하다. 그러면서도 주변의 환경을 전혀 해치지 않는 자세로 시선을 물길에 머물도록 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눈길을 끄는 정자가 청의정과 농산정이다. 청의정은 팔각지붕에 볏집을 얹었다. 본래 청의정 앞에 작은 논이 있어 임금들이 매년 직접 농사를 지었다. 영조가 추운 날에 모내기하러 나서자 신하들이 말렸다. 그러나 영조는 "춥다고 논에 나가 일하지 않으면 과연 임금이 백성의 모범이 되겠느냐"며 일을 했다고 한다.(영조실록 48권) 참 어지간한 임금이다.


다른 정자와 달리 농산정만은 주거형이다. 직사각형으로 반듯하며 길쭉한 형태다. 농산정은 기단을 낮게 쌓아 터를 다진 위에 지어졌다. 여러개의 여닫이문이 달려 있다. 방안에는 벽면과 바닥에 한지를 발랐다. 정조가 화성행궁을 하기 전에 총신과 측근만을 불러 행궁 절차를 상의하고 격려했던 장소다. 옥류천 정자는 너댓평 규모로 지어져 몇사람 앉기도 어렵다. 왕의 휴식공간치고는 지나칠 정도로 소박하다. 소요정, 태극정, 청의정, 취한정은 인조, 농산정은 정조 때 지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조가 화성행궁 직전 총신과 측근을 불러 격려했다고 전해진다.

정조가 화성행궁 직전 총신과 측근을 불러 격려했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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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 정자에선 각 기둥에 쓰여진 '주련'을 읽는 것도 또 다른 재미다. 그 중에 김가진이 쓴 것으로 전해지는 청의정의 주련에는 이런 글귀가 있다.


 "僊露長凝瑤艸碧(선로장응요초벽)
 彩雲深護玉芝鮮(채운심호옥지선) 
 신선의 이슬은 길이 요초(瑤艸)에 푸르게 맺혔고
 채색 구름은 깊이 옥지(玉芝)를 곱게 감쌌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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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기한 풀잎에 이슬이 맺혀 있고 채색 구름을 감싼 풍경은 신비롭기 그지 없다. 선경에서 자란다는 진기한 풀인 '요초(瑤艸)'와 신선이 먹는다는 '옥지(玉芝)'가 이곳을 신선의 세계로 이끈다.이처럼 정자의 주련들은 옥류천 주변의 정취와 풍경, 정신세계의 청정한 경지를 담고 있다. 수림속의 작은 오솔길과 완만한 구릉, 그리고 작은 계곡에 정자 하나 짓는 것으로 자연을 소유하지 않는 한국적 정원 미학이 눈 덮힌 겨울에 더욱 고고히 빛난다. 한 겨울 비원 산책은 잠시 세상의 번민을 벗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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