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TH 2013] 여성리더 시대
'소프트 DNA'가 복잡 정치 풀고 '고감도 리더십'이 불안 경제 뚫고
[아시아경제 조목인 기자]박근혜 새누리당 후보가 제18대 대통령으로 당선돼 우리나라에도 마침내 여성 리더 시대가 열렸다. 대한민국 헌정 사상 최초로 여성 대통령이 탄생하면서 '여성 리더십'은 최대 화두가 됐다.
경영학자 피터 드러커는 21세기를 '여성의 세기'로 못 박았다. 이제 여성 리더십은 거부할 수 없는 역사의 조류다. 1979년 영국에 첫 여성 총리 마거릿 대처가 등장한 뒤 "여성도 리더가 될 수 있다"는 말이 나왔지만 큰 공감은 얻지 못했다. 그러나 이후 수십년만에 세계는 변했다. 고리타분한 남성 리더십 대신 여성 리더십이 주목 받는 게 전혀 이상한 일은 아니다.
이미 많은 여성이 글로벌 재계ㆍ정계를 주름잡고 있다. 글로벌 경제가 침체의 늪에 빠진데다 세계 곳곳에서 정치 혼란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여성 리더의 활약은 눈부시다.
◆왜 여성 리더십인가=여성 리더십의 핵심은 '상생'과 '화해'다. 남성 리더십은 흔히 명령과 통제, 권위와 복종에 기반한다. 가부장적이고 권위주의적인 기존 리더십에 익숙한 남성과 달리 여성은 사람 간의 관계, 배려, 포용을 중시한다.
남성 리더십은 강인함으로 위기를 헤쳐나간다. 그러나 여성 리더십은 강인하면서도 부드럽다. 여성은 복잡한 성숙과정을 거쳐 완성된다. 수직적 소통관계와 억압, 권력투쟁이 필연적인 남성 리더십과 달리 여성 리더십은 수평적 소통과 이해, 공감이 핵심이다.
산업혁명, 제조업, 규모의 경제를 바탕으로 한 전통 산업에 비해 창의적ㆍ감성적이고 협업을 중시하는 정보기술(IT) 사회에서 여성 특유의 온화함과 소통술은 큰 장점이다.
인류학자인 미국 럿거스 대학의 헬렌 피셔 교수는 "미래 산업구조에서 여성이 남성보다 탁월한 능력을 발휘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상대방 마음을 읽고 다스릴 줄 아는 능력, 뛰어난 언어 감각, 인간관계와 사회정의에 대한 순수한 관심 등으로 대변되는 여성성이 '수평적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한 21세기 사회에 적절하다는 게 피셔 교수의 설명이다.
인류가 개발할 수 있는 마지막 자원이 여성이라는 지적도 있다. 저출산ㆍ고령화 시대에 잠재력이 큰 여성 인력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국가와 기업의 성패가 갈린다는 것이다.
◆글로벌 여성 리더들=현재 한 국가를 이끄는 여성 정치 지도자는 박 당선인 등 모두 18명(국왕 및 총독 제외)이다. 전례 없는 '우먼파워' 시대가 열린 것이다.
현대 여성 리더십의 원조는 '철의 여인'으로 불리며 남성들보다 강한 리더십을 발휘한 대처 전 총리다. 대처 전 총리는 1975년 여성 최초로 보수당 당수가 된 뒤 첫 여성 총리로 세 번 연임에 성공했다. 그는 당시 높은 실업률ㆍ인플레이션, 낮은 경제성장률로 고통 받고 있던 영국에 대규모 개혁정책을 도입했다. 지금도 많은 여성 지도자가 대처 전 총리를 '역할모델'로 꼽고 있다.
현재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지도자는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다. '독일의 잔다르크'로 불리는 메르켈 총리는 글로벌 경제위기에도 독일의 견실한 성장을 이끌고 있다. 이와 함께 특유의 지도력으로 재정위기에 빠진 유럽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메르켈 총리는 미 경제 격주간지 포브스가 지난해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리스트 중 1위를 차지했다. 2010년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의 부인인 미셸 오바마 여사에게 1위를 한 차례 내준 것 말고는 2006년 이후 6년 동안 줄곧 1위에 오른 것이다.
'메르켈 리더십'의 핵심은 공감과 소통, 인내와 설득이다. 그는 CNN과 가진 회견에서 "연방정부와 16개 주정부로 권한이 분산된 독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회적 유대'"라며 "힘든 과정을 거친 합의는 초당파적 해결책이 된다"고 강조했다. 독일의 굼뜬 행동에 대해 불평하는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에게는 "위기를 한 방에 날려버릴 바주카포는 없다"며 "모든 것은 남을 설득하는 힘에 달렸다"고 조언했다.
메르켈 총리와 함께 병든 유럽을 이끌어가는 또 다른 여성이 크리스틴 라가르드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다. 재무장관 시절 프랑스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로 꼽힌 라가르드 총재는 IMF의 64년 역사상 처음 배출된 여성 총재다. 경제학자들을 제치고 법률 전문가가 IMF 수장이 된 것도 그가 처음이다.
라가르드 총재는 재무장관 시절 프랑스 재계를 주름잡던 남성 엘리트 문화에 정면으로 도전했다. '유로화의 아버지'로 불리는 미 컬럼비아 대학의 로버트 먼델 교수는 라가르드 총재를 '글로벌 슈퍼스타'로 평가하면서 "정치ㆍ경제ㆍ외교에서 강한 리더십을 발휘한 그가 최고의 IMF 총재로 등극할 것"이라고 예상한 바 있다.
여성 리더십을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또 다른 인물이 미국의 외교 수장인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이다. 최근 시사 주간지 타임은 힐러리 장관을 2016년 미 대선에서 '거부할 수 없는 선두 주자'로 꼽았다. 그가 미 국무장관으로 확고한 업적을 남긴데다 오바마 대통령 재선에 기여한 남편 빌 클린턴의 공적까지 더해 논란의 여지가 없는 거물이 됐기 때문이다.
힐러리 장관이 국제 현안을 해결하기 위해 얼마나 열심히 뛰었는지 숫자로도 나타난다. 그는 국무장관으로 재임하며 총 112개국을 방문했다. 재임 기간의 25%가 넘는 384일을 해외에서 보냈다. 그 동안 비행한 거리만 147만㎞에 이른다. 역대 미 국무장관 가운데 최고 기록이다. 여성 리더십의 선두 주자로 미국 위상을 높이고 있는 그는 포브스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리스트 중 2년 연속 2위에 올랐다.
남미 최대 경제국 브라질을 이끄는 지우마 호세프 대통령도 대표적인 여성 지도자다. 지난해 시사주간 타임이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 가운데 한 사람으로 선정된 호세프 대통령은 과감한 추진력의 소유자다. 대중적 인기도 높다. 최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브라질 국민 78%가 그를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이대로라면 호세프 대통령이 오는 2014년 재선에 성공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호세프 대통령과 함께 남미의 대표적 여성 지도자로 꼽히는 인물이 아르헨티나의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대통령이다. 페르난데스 대통령은 네스토르 키르치네르 전 대통령의 부인이다. 이들은 세계 최초로 '부부 대통령'이라는 기록을 남겼다.
변호사 출신인 줄리아 길러드는 호주 사상 최초의 여성 총리다. 그는 온화한 성품의 소유자다. 하지만 야권의 성차별주의를 맹렬히 비난하는 등 정책 대결에서 여전사 같은 모습도 보여준다.
현직은 아니지만 인도의 프라티바 파틸 전 대통령, 핀란드의 타르야 할로넨 전 대통령도 각각 인도와 핀란드 최초의 여성 지도자였다.
◆재계의 '알파걸'=여성들이 정계에서만 글로벌 리더로 이름을 날리는 것은 아니다. 하드웨어 시대가 가고 소프트웨어 시대가 오면서 남성 대신 눈부신 성과를 내는 여성 기업인이 늘고 있다.
미 경제 격주간지 포천이 해마다 선정ㆍ발표하는 '미 500대 기업 CEO' 중 여성의 비율은 2000년 0.6%(3명)에서 지난해 4%(20명)로 높아졌다. 이들 대다수는 외부 영입이 아닌 내부 승진을 통해 최고경영자(CEO)가 됐다. 과거 여성을 CEO로 둔 기업은 화장품ㆍ식료품 부문에 국한됐다. 그러나 요즘은 ITㆍ화학ㆍ금융 등 다양해졌다.
가장 주목 받는 이들이 미 IT 업계를 주름잡고 있는 여성 CEO 3인방이다. 휴렛패커드(HP)의 멕 휘트먼, IBM의 버지니아 로메티, 제록스의 우르술라 번스가 바로 그들이다.
미 500대 기업 CEO 가운데 유일하게 10위권에 포함된 여성이 휘트먼이다. 그는 개인용 컴퓨터(PC) 시장 부진으로 경영난에 처한 HP가 1년 사이 두 CEO를 물갈이한 끝에 낙점한 인물이다. 휘트먼은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업체 e베이에서 11년 동안 CEO로 재직한 바 있다. 이를 바탕으로 HP의 과감한 개혁에 나서고 있다. 그는 포브스가 선정한 '인터넷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CEO'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HP와 경쟁관계에 있는 IBM도 올해 초 로메티를 첫 여성 CEO로 임명했다. 로메티는 지난해 9월 의사회 의장으로도 선출돼 CEOㆍ사장ㆍ의장을 겸하게 됐다. 1981년 IBM에 시스템 엔지니어로 입사한 그는 2009년 마케팅ㆍ전략 담당 부사장으로 승진하고 이어 3년만에 CEO까지 등극했다.
미 500대 기업 CEO에 처음 포함된 흑인 여성 번스는 'IT 업계의 여전사'로 불린다. 뉴욕 빈민가의 싱글맘 밑에서 태어난 그는 인턴으로 들어간 첫 직장에서 30년만에 CEO까지 오른 신화적인 인물이다. 오바마 대통령 직속 고용위원회 27인 가운데 한 사람인 그는 현재 오바마 2기 정부의 상무장관 후보 물망에 올라 있다.
지난해 7월 야후 CEO로 등극한 마리사 마이어도 빼놓을 수 없는 여성이다. 구글 최초의 여성 엔지니어인 마이어는 구글 홈페이지, G메일, 구글지도 등 구글 제품 관리에서 핵심 역할을 해온 인물이다. 업계에서는 그가 구글과 페이스북의 부상으로 고전 중인 야후를 부활시킬 수 있을지 주목하고 있다. 최근 그는 출산 후 2주만에 직장으로 복귀해 주목 받기도 했다.
지난 100여년 동안 남성이 주도해온 자동차 업계에서도 '알파걸'의 활약은 눈부시다. 대표적 인물로 세계 최대 자동차 메이커인 제너럴모터스(GM)의 차기 CEO로 급부상하고 있는 메리 바라 부사장을 꼽을 수 있다. 그는 남성이 독식하고 있는 자동차 업계의 '유리천장'을 뚫고 최고위직에 오른 인물이다. 바라 부사장이 CEO에 오른다면 GM 역사상 첫 여성 CEO가 탄생하게 되는 셈이다.
역사와 전통을 중시하는 독일 자동차 업계에도 여풍(女風)이 거세다. 세계 3위의 고급 자동차 메이커 다임러는 크리스틴 호만 덴하르트 박사를 125년 역사상 첫 여성 이사로 영입했다. BMW는 독일 국영 철도회사 도이체반의 인사 총괄 밀라그로스 카이나앙드레를 첫 여성 임원으로 임명했다.
◆'친디아' 성장 이끄는 여성들=글로벌 경제를 주름잡는 여성이 선진국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세계 인구의 40%나 차지하는 '친디아(중국과 인도)'에서도 여성은 초고속 경제성장의 주인공 역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경영 컨설팅업체 보스턴컨설팅그룹(BCG)은 최근 보고서에서 '여성경제(Female Economy)'의 시대가 도래했다고 선언했다. 해마다 급증하는 여성 경제 인구가 국가 경제를 뒷받침하는 데 결정적인 힘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BCG는 특히 중국의 눈부신 경제성장을 뒷받침하는 여성들 힘이 놀라울 정도라고 설명했다. 중국 여성들이 벌어들이는 소득은 2000년 3500억달러(약 37조5000억원)에서 2010년 1조3000억달러로 증가했다. 10년 사이 3배 이상으로 는 것이다. 이는 오는 2020년까지 4조달러로 더 증가할 듯하다. 이럴 경우 중국 여성들의 소득은 20년 사이 무려 10배 이상으로 늘게 되는 셈이다.
중국 여성들의 경제 만족도도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BCG의 설문조사에서 중국 여성의 88%가 '현 재정상태에 만족한다'고 답했다. 87%는 '현 직업이 안정적'이라고 답했다. 미 여성들의 직업 만족도가 44%에 불과한 것과 대조된다.
중국인들은 이미 글로벌 소비시장의 주요 고객으로 떠올랐다. 특히 샤넬ㆍ루이뷔통ㆍ헤르메스 같은 글로벌 명품 시장의 큰손은 중국 여성들이다. 2010년 중국 여성들은 명품 소비에 310억달러를 썼다.
중국의 여성들은 글로벌 자동차 시장에서도 괴력을 발휘하고 있다. 이탈리아의 고급 자동차 브랜드 마제라티는 지난해 중국인 구매자의 30%가 여성이라고 밝혔다. 미국과 유럽 고객 중 여성이 차지하는 비중은 겨우 2~5%다.
BCG는 보고서에서 성공하는 중국의 여성 기업인 수도 늘고 있다고 지적했다. 세계 여성 부호 13인 가운데 절반이 넘는 7명은 중국인이다. 영국 소재 컨설팅업체 그랜드 손턴에 따르면 중국 기업의 고위 간부들 가운데 여성은 34%로 세계 2위다.
중국 재계를 주름잡는 대표적인 여성 CEO로 미 하버드 대학 경영대학원이 선정한 '세계 100대 CEO'에 이름을 올린 중국 최대 에어컨 제조업체 거리(格力)전자의 둥밍주(董明珠), 정보통신업체 화웨이(華爲)그룹의 쑨야팡(孫亞芳) 회장, 소호차이나의 장신(張欣) CEO, 양광(陽光) 미디어그룹 회장이자 '중국의 오프라 윈프리'로 불리는 양란(楊瀾)이 있다. 이들 대다수는 밑바닥부터 시작해 최고까지 오른 자수성가형으로 다양한 분야에서 중국의 변화를 이끌고 있다.
인도 여성들의 경제력도 급속도로 향상되고 있다. 2010년 현재 일하는 인도 여성의 수는 1억3400만명으로 총 2800억달러를 벌었다. 이는 오는 2020년까지 3배가 넘는 9000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친디아로 묶으면 여성들이 2020년까지 5조달러가 넘는 소득을 올리게 되는 것이다. 이는 국내총생산(GDP) 순위로 세계 4위인 독일을 넘어서는 규모다.
인도의 여성 CEO 비율은 특히 높다. 인도 대기업 가운데 여성을 CEO로 둔 곳이 11%에 이른다. 포천 선정 미 500대 기업 여성 CEO 비중(4%)의 2배를 웃도는 규모다. 이들은 민간 대형 은행과 국영 은행, 글로벌 기업의 요직에서 활동 중이다.
인도의 대표적인 여성 기업인으로 민간 은행 ICIC의 찬다 코하르 CEO, 하르짓 길 필립스 아시아ㆍ태평양 담당 CEO, 인도 HSBC의 나이나 키드와이 대표 등이 있다. 코하르 CEO는 포브스의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 이름을 올린 인물이며 길은 유럽 최대 전자업체 필립스 계열사의 첫 인도 여성 CEO다.
인도 여성들은 미래에 대한 긍정적인 태도로도 유명하다. BCG 조사에서 인도 여성 가운데 81%는 '앞으로 5년 안에 삶이 더 나아질 것'이라고 답했다. '향후 10년 안에 경제적ㆍ정치적으로 향상된 삶을 살 것'이라고 답한 이는 86%다. 이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치다.
이렇듯 인도 여성들은 '긍정적인 마인드'를 갖고 있다. 더불어 인도의 첫 여성 대통령인 파틸과 첫 여성 총리인 인디라 간디를 배출했을만큼 정치의식도 매우 성숙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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