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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꾼 된 '가난한 변호사'

최종수정 2012.12.27 11:23 기사입력 2012.12.27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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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이 가진 신뢰 악용, 횡령 등 경제사범 늘어...서울은 넘치고 지방은 부족한 인력구조도 원인

[아시아경제 정준영 기자] 변호사 업계에서 경제사범 범죄가 늘어나고 있다. 변호사 수의 증가 등에 따라 수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극단적인 '서울 편중' 등이 자초한 과잉경쟁의 여파라는 지적도 높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6부(유상재 부장판사)는 최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 등의 혐의로 기소된 변호사 김모(55)씨에 대해 징역3년6월을 선고했다. 김 변호사는 자신을 "인도네시아 왕족의 해외자금 국내 집행 관련 대한민국 정부를 대리하는 변호사"라고 소개하며 사업가 장모씨와 함께 투자약정금 등의 명목으로 피해자들로부터 13억원 상당을 가로챈 혐의로 지난 4월 재판에 넘겨졌다.
재판부는 "변호사로서의 공익적 지위를 망각한 채 해외자금의 존재나 집행 여부가 매우 불확실한 상황이었음에도 마치 확정적으로 집행될 것처럼 속여 죄질이 무겁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 사건 외에도 해외자금 투자를 빌미로 계속 투자자를 끌어들여 많은 피해자를 양산했고 피해액 역시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며 "일반인이 변호사에 대하여 갖는 신뢰를 심각하게 훼손했다"고 덧붙였다.

회사자금 100억여원을 빼돌리고 회사에 25억원 상당의 손해를 입힌 혐의 등으로 기소된 변호사 박모(48)씨는 지난달 서울고법에서 징역3년을 선고받았다. 아파트 등기 업무를 대신 해준다며 1억9000여만원을 받아 챙긴 혐의로 기소된 변호사 주모(59)씨는 지난달 항소심에서 징역1년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주씨는 1심 당시 수차례 법정에 나오지 않아 재판부가 직권으로 영장을 발부한 적도 있다.

27일 대한변호사협회에 따르면 올해 징계받은 변호사 21명 중 반수 이상(12명)이 금품과 관련해 징계대상이 됐다. 이들은 수임료 외 따로 돈을 챙겨 받거나 돈을 빌리고서 갚지 않았으며, 돈만 챙겨받고 사건을 접수하지 않기도 했다. 변협 관계자는 "징계건수가 예전에 비해 늘어나진 않는 추세(2010년 29건, 2011년 37건)지만 과거 사무장을 통해 사건을 끌어오거나 변호사 명의를 빌려주고 돈을 챙겨받는 등 변호사법 위반 유형이 많았다면 최근 몇 년새 사기, 횡령 등 변호사 직무와 무관하게 경제사범으로 전락한 유형이 많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변호사라는 신분이 주는 신뢰감을 이용해 사건만 수임한 뒤 의뢰인에게 돌려줘야할 몫을 돌려주지 않고 잡아떼는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대표적인 고소득 전문직종 중 하나인 변호사들 사이에서 이처럼 경제사범이 늘어나고 있는 것은 무엇보다 변호사 수가 늘어남에 따라 수임 여건이 악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서초동의 한 중소 법무법인 소속 변호사는 "소형 로펌들의 경우 최근 2년새 인원이 줄어도 신규 채용에 나서지 않는 경우도 많다"며 "서초동에선 임대료만 제대로 내도 다행"이라고 말했다. 수임난이 심화되면서 업무능력이 뛰어난 사무장 모시기 경쟁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부장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정말 뛰어난 사무장의 경우 사무장을 따라 변호사들이 회사를 옮겨가기도 한다"고 전했다. 서울변호사회는 단기간 변호사 대량증원으로 인한 법조비리 증가를 우려해 법조비리신고센터를 지난 4월 개소한 바 있다.

그러나 변호사들이 범죄에 손을 댈 만큼 수임난이 심해진 데에는 변호사들이 자초한 몫도 크다는 지적도 있다. 무엇보다 지역 편중이 심하다. 전체 등록변호사의 73% 가량(9103명)이 서울에 몰려 있는 반면 제주, 강원, 충북의 경우 각각 41명, 99명, 112명에 불과하다. 인구당 변호사 숫자는 서울이 1121명 당 1명인 데 비해 제주는 그 10배가 넘는 1만 4226명, 강원은 1만 5546명, 충북은 1만 3974명에 달한다. 새로 유입되는 변호사 숫자에서도 서울 편중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제주, 강원, 충북의 경우 올해 새로 등록한 변호사는 각 4명, 19명, 21명에 그쳤다. 이 중 로스쿨 출신 변호사는 각 1명, 6명, 11명 수준으로 지방대에 대한 로스쿨 인가 당시 정부가 내세운 지역균형 명분이 실종돼버렸다.


정준영 기자 foxfu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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