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 전으로 돌아가보자. 1997년 15대 대선에 한나라당 후보로 나섰다 김대중에 패한 이회창은 명예총재로 일단 정치전면에서 한걸음 물러난다. 재기를 노리며 세력을 다지던 그는 이듬해 '4ㆍ2 재보선'에서 새로운 돌파구를 찾으려 한다. 그때 눈에 들어온 인물이 박근혜다. 박근혜는 한나라당 후보로 대구 달성 보궐선거에 나서 첫 금배지를 단다. 박근혜의 정계 입문은 본인의 의지에 이회창의 권유가 더해진 결과다.
5년 전에는 또 어떤 일이 있었나. 이회창은 16대 대선에서 낙선한 뒤 한동안 현실정치와는 거리를 두었다. 그러다 17대 대선을 한 달여 앞둔 2007년 11월 돌연 한나라당을 탈당, 무소속 출마를 선언했다. 이명박 후보가 BBK사건 등으로 지지율이 흔들리고 보수 진영 일각에서 이회창 출마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진 데 고무된 것이다. 세를 확장하기 위해 당내 후보경선에서 패하며 이명박과 소원했던 박근혜의 지지를 끌어내려 공을 들인다.
그러나 박근혜는 냉정했다. 이회창이 12월 들어 세 차례나 서울 삼성동 박근혜의 집을 찾아갔지만 지지를 설득하기는커녕 얼굴조차 보지 못한다. 박근혜가 "후보경선에서 졌다고 해서 당을 탈당해 이회창을 지지하는 것은 정도(正道)가 아니다"며 아예 만나주지도 않은 것이다.
그 이회창이 그제 박근혜 지지를 선언하고 새누리당에 입당했다. 자신이 도움을 청했을 때 냉정하게 손을 뿌리쳤던 박근혜를 돕기 위해 5년 만에 떠났던 당을 다시 찾은 것이다. 추석 때부터 박근혜 측이 공을 많이 들이고 지난 21일엔 박근혜가 직접 이회창을 집으로 찾아가 그동안의 서운한 감정을 풀었다곤 하지만 보통 사람으로선 쉬 하기 어려운 행보인 것만은 틀림없다.
이회창이 '고집 세고 남의 말 잘 안듣기로 소문난 사람'이기에 더욱 그렇다. 사적인 연(緣)의 고리를 뛰어넘어 나라 장래를 위해 박근혜에게 힘을 보태겠다는 대인의 풍모인지, 아니면 아직도 정치판에 미련이 남아 노욕이 동해서인지. 혹 항상 자신이 중심에 서 있던 '대선에의 추억' 때문일까? 이도저도 아니라면?
사족. 이회창은 박근혜 지지를 선언하는 자리에서 "제가 이루지 못한 그 꿈을 박 후보를 대통령에 당선시킴으로써 이루고자 한다"고 했다. 그가 이루고자 한 꿈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어경선 논설위원 euhks@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