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처럼 연비문제로 어느 때보다도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는 현대ㆍ기아차를 보면 '부르몽의 악몽'이 떠오른다.
그러나 결과는 끔찍했다. 현지에서 생산한 쏘나타의 품질 문제가 불거지면서 결국 1993년 부르몽 공장의 문을 닫았다. 회계상으로도 1996년 5000억원 손실을 남겼다. 당시 현대차에겐 전혀 희망이 없는 듯 했다. 부르몽 공장 철수 후 '싸구려 차'란 꼬리표가 늘 따라다녔기 때문이다. 이 꼬리표를 떼기위해 정몽구 회장을 중심으로 연구소는 연구소대로, 서비스 조직은 서비스 대로 뭉쳤다. 이로부터 11년 후인 2004년 현대차는 J.D.파워사의 신차품질조사(IQS)에서 사상 처음으로 도요타를 제치며 일반 브랜드 부문 4위에 올랐다. 품질로 정면 승부 하지 않으면 성공할 수 없다는 급박감이 빚어낸 결과였다.
똑같은 데자뷔다. 그래도 지금 현대ㆍ기아차에게 다행인 것이 있다. 부르몽의 위기를 헤쳐냈던 현대차만의 뚝심이 있다는 것이다.
연비오류표기사태를 보고 받은 정몽구 회장은 "이게 있을 수 있는 일이냐. 10여년간 쌓은 품질 신뢰도가 다 무너지고 있다"며 격노한 것으로 알려졌다. 임직원들을 상대로 "교육을 어떻게 시켰냐"며 목소리도 높였다. 하지만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도요타 리콜사태와 같은 대형 악재로 번지지 않게끔 즉각적인 후속조치를 강조했다.
이번 사태 발생 즉시 신속하게 진화에 나선것도 위기를 극복해 낸 학습효과 영향이 컸다. 존 크라프칙 현대차 미국법인장이 이례적으로 '대단히 죄송하다'는 표현까지 쓰며 사과를 했고 보상 대책도 내놨다. 현대ㆍ 기아차의 품질을 책임지고 있는 연구소 수뇌진도 전면 교체했다. 도요타가 북미시장에서 가속페달 등 차량결함으로 1000만대 이상을 리콜했던 지난 2009~2010년 당시 최고경영자와 회사측의 늑장대응으로 되레 화를 키웠던 모습과는 비교된다.
이은정 기자 mybang21@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