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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명철의 인사이드스포츠]이천수를 이젠 그만 놓아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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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명철의 인사이드스포츠]이천수를 이젠 그만 놓아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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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축구 팬들의 관심을 끌었던 뉴스 가운데 하나는 이천수의 베트남 리그(수퍼리그) 진출 설이었다. 본인의 강력한 부인으로 일단락됐지만 첫 보도를 접한 적잖은 팬들이 2002년 한일 월드컵 4강의 주역 가운데 한 명인 이천수의 현 상황에 많이 놀랐을 것 같다.

베트남 언론의 보도는 그럴 듯했다. 보도 내용의 골자는 “이천수가 선수 생활을 이어가기 위해 베트남 진출을 노리고 있으며 스위스에 있는 스포츠 컨설턴트 회사를 통해 베트남 클럽에 프로필을 보냈다”는 것이었다. 이런 뉴스를 알릴 때 양념처럼 따라붙는 선수 약력에는 2002년과 2006년(독일) 두 차례 월드컵에 뛰었다는 사실과 스페인과 네덜란드 등 유럽 클럽에서 뛰었다는 내용이 들어가 있었다. 자국 관련 보도이니 2006년 독일 월드컵 아시아 지역 2차 예선(2004년 9월 8일·호치민, 한국 2-1 승리)에서 베트남을 상대로 프리킥 골을 넣었다는 건 빼놓을 수 없었을 터이다.
베트남 진출설과 관련해 다시 한 번 화제의 인물이 된 이천수를 보며 축구 팬들이 가장 먼저 떠올린 것은 무엇일까. 글쓴이는 뛰어난 프리킥 솜씨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2005년 12월 프로 축구 K리그 대상 시상식에서 울산 현대의 이천수와 FC 서울의 박주영은 최우수선수(MVP)를 놓고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트로피는 이천수에게 돌아갔다.

7년 전 두 선수가 MVP 자리를 놓고 겨룰 때 그해 ‘최고의 경기’로는 6월 네덜란드에서 열린 세계청소년축구선수권대회(FIFA U-20 월드컵) 한국-나이지리아전(한국 2-1 승리, 득점자 박주영·백지훈)이 뽑혔다. 경기에서 단연 화제는 백지훈이 인저리타임에 사각에서 터뜨린 결승골이었다. 하지만 후반 44분 박주영의 그림 같은 프리킥 동점골이 없었으면 역전 드라마는 연출될 수 없었다. 이후 박주영은 나이지리아를 상대로 또 한 번 프리킥 골을 터뜨렸다. 2010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이었다.

이천수의 발재간도 뒤지지 않았다. 많은 경기 예선에서 멋진 프리킥 골을 넣은 그는 2006년 독일 월드컵 본선에서 토고를 상대로 다시 한 번 프리킥 골의 진수를 선보였다. 2000년대 중반 이천수와 박주영은 그렇게 프리킥 전문가로 쌍벽을 이루고 있었다.
두 선수의 프리킥은 강력한 무회전 킥을 주로 구사하는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와 종류가 다르다. 페널티아크 근처나 골문에서 20m 안팎의 거리에서 터지는데 강한 회전과 함께 골대 모서리를 향해 날아간다. 호날두의 프리킥이 홈런 타구라면 두 선수의 프리킥은 왼손 타자와 오른손 타자가 때리는 좌·우익선상 2루타쯤 된다. 이쪽 방향으로 날아가는 타구는 대체로 강한 회전이 걸려 휘어져 나간다. 두 선수의 프리킥은 부드럽고 정확하다. ‘슛은 마지막 패스’라는 말을 실감나게 한다.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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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 70년대 축구 팬들은 이런 종류의 킥을 ‘바나나킥’이라고 불렀다. 요즘 쓰는 ‘감아 차기’의 원조쯤 되는 말이다. 1969년 6월 26일 이제는 흔적도 없이 사라진 서울운동장에서 국가 대표 2진과 보루시아 MG의 친선경기가 열렸다. 이때 국가 대표 1진은 1970년 멕시코 월드컵 지역 예선을 앞두고 ‘105일 원정’으로 불렸던 유럽을 포함한 장기 국외 원정에 나서 있었다.

1960년대 말∼1970년대 중·후반 분데스리가의 강호로 군림한 보루시아 MG 선수들은 한국 선수들보다 한 수 위의 기량을 자랑했다. 특히 미드필더 군터 네처는 코너킥을 직접 골로 연결해 3만여 관중의 탄성을 자아냈다. 네처가 감아 찬 공은 회전이 걸리면서 반대편 포스트 안쪽으로 휘어져 들어갔다. 이때 국내 언론이 만들어 낸 말이 ‘바나나킥’이다.

이듬해인 1970년 9월 3일 서울운동장에서 열린 국가 대표 2진 백호와 벤피카의 경기도 빼놓을 수 없다.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 득점왕 에우제비오가 터뜨린 30m 가량의 강력한 프리킥 골은 엄청난 각도로 휘어 들어가 국내 팬들에게 충격을 안겼다. “아, 프리킥을 저렇게 강하게 휘어 찰 수도 있구나.”

설로 끝나긴 했지만 신세대 프리킥의 고수 이천수가 베트남 리그에 진출하려 했다는 뉴스는 왠지 뒷맛이 씁쓸하다. 베트남 축구를 결코 얕잡아 보는 게 아니다. 한국 축구가 일제 강점기에서 벗어난 뒤 처음으로 국외 친선 경기에 나선 게 1949년 1월의 일이다. 이때 상대는 홍콩과 베트남, 마카오였다. 한국은 베트남과 경기에서 1승 1무[4-2(이 전적은 대한축구협회 나라별 역대 전적에서 빠져 있다), 3-3]를 기록했다. 이때 이후 한국은 남베트남(월남) 또는 통일 베트남과 총 23차례 만나 15승 6무 2패로 역대 전적에서 크게 앞서고 있다. 5-0, 4-0 등의 대승을 거둔 적도 있지만 2003년 10월 ‘오만 쇼크’를 포함해 최근 3차례 경기에서는 0-1, 2-0, 2-1 등의 접전을 펼쳤다. 동남아시아 각국 리그들이 나름대로 발전하고 있다는 증거다.

이천수의 국외 리그 진출설은 그의 현재 선수 신분(임의탈퇴)과 당연히 관련이 있다. 임의탈퇴는 징벌적인 성격이 있는 경우도 일부 있지만 근본적으로 영구 제명 또는 영구 실격 등과는 완전히 다른 선수 신분의 하나일 뿐이다. 영구 제명도 풀리는데 이천수의 임의탈퇴 족쇄는 왜 풀리지 않고 있을까. 그는 경기장으로 돌아오고 싶어 21일 광양전용구장을 찾은 관중 앞에서 고개를 숙여가며 잘못을 빌었다. 흐르는 눈물은 악어의 그것과 거리가 멀어 보였다.

신명철 스포츠 칼럼니스트




이종길 기자 leem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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