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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에는 외국인 관광버스가 서지 않는 까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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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오주연 기자]#처음 이태원을 찾았을 때는 1998년 중학교 3학년 때였다. 당시 영어를 유창하게 하는 한 연예인이 자신은 외국에서 단 한 번도 산 적이 없지만 이태원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덕분에 외국인들과 영어로 대화할 수 있게 됐다고 했다. 정말 이태원은 외국인들만 북적이는 '딴세상'일까. 그때가 촌년의 첫 이태원 나들이였다.

14년전, 이태원은 '외국인들의 쇼핑 천국'이었다. 서양식 몸에 맞는 빅사이즈 티셔츠, 구제 미제 청바지, 영어로 표기된 다양한 소품, 신발…. 서울 변두리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물건들로 가득했다. 가게로 들어가는 이들 대부분 이 외국인이었다. 상인들은 서툰 영어로 대꾸하며 삶을 꾸려나갔고, 그때마다 외국인들의 손에는 한 가득 쇼핑백이 들려 나갔다. 그때부터였다. 뇌리 속에서 이태원은 '서울 속 작은 외국'이었다.
2012년, 이태원은 '한국인들의 먹거리 천국'으로 변해있었다.

▲지난 14일, 이태원은 더 이상 외국인들이 가득한 외국인들의 쇼핑관광지가 아니었다. 2012년 이태원은 한국인들을 위한 이색 레스토랑과 클럽, 성형외과, 화장품 브랜드숍, 카페가 즐비하다.

▲지난 14일, 이태원은 더 이상 외국인들이 가득한 외국인들의 쇼핑관광지가 아니었다. 2012년 이태원은 한국인들을 위한 이색 레스토랑과 클럽, 성형외과, 화장품 브랜드숍, 카페가 즐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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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5일 금요일 저녁, 20대 젊은이들이 '프라이데이 나잇'을 외치며 우르르 이태원역에서 내렸다. 해밀톤호텔 뒤편으로는 클럽과 바(Bar)가 즐비하게 늘어졌고, 쭉 뻗은 도로 양측에는 레스토랑·카페·화장품숍들이 차지했다. 양손 가득 쇼핑을 즐겼던 노랑머리의 외국인은 사라지고 세련된 옷을 빼입은 한국인들이 이탈리안 레스토랑 야외 테라스마다 꾸역꾸역 들어찼다.

"헤이, 빅사이즈?"를 외치던 호객꾼 대신 "여기요, 2층에 자리 있어요"라며 새 식당 개장을 알리는 알바생이 손목을 잡았다. 네일아트 숍에는 20대 한국인 여성들이 빼곡히 자리를 채웠다.
30년동안 이태원에서 의류장사를 했다는 황모(60)씨는 "이태원이 죽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태원에 '먹자문화'가 뜨는 바람에 쇼핑으로서의 기능은 크게 상실했다"며 "프랑스식 레스토랑, 이탈리안 레스토랑 등 이색적인 음식을 먹어보려는 한국인들만 늘었지 쇼핑 하러 이태원에 오는 외국인들은 크게 줄었다.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한국고객 중심의 레스토랑 열풍 말고 이태원에 외국인이 사라진 이유는 또 있다. 바로 외국인 단체 여행객이 사라진 것.

의류업체 한 상인(65)은 "외국인 단체 관광버스가 이태원에는 아예 서질 않는다"며 "여행사에서 이태원 대신 한남동에 소위 '가이드타운'을 만들어놓고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이곳 을 '이태원에 있는 한 쇼핑센터'라고 소개하며 여기에 몰아넣고 쇼핑하게 만든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 곳에서 엄청 바가지를 씌어 짝퉁 등을 파는 바람에 이태원에 대한 이미지는 외국인들에게 점점 더 나빠지고 있다"며 "예전에는 고객의 90%가 일본인 관광객이었는데 지금은 10명 중 1명이 일본인 관광객 손님일 정도로 확 줄었다"고 설명했다.

▲불꺼진 '해밀톤 쇼핑센타'

▲불꺼진 '해밀톤 쇼핑센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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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이탈리안 레스토랑 등 한국 젊은이들에게 인기있는 식당은 내국인들로 가득찼지만, 외국인들이 주로 찾는 이슬람계 레스토랑은 텅텅 비었다. 이슬람사원 쪽으로 올라가니 길 양쪽으로는 터키음식, 인도음식 등 이색적인 식당이 많이 있었지만 금요일 저녁 시간인데도 불구하고 테이블 곳곳마다 공석이었다.

할랄푸드 전문점 이모(40)씨는 "2~3년전부터 외국인들이 이태원을 많이 떠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슬람 쪽 음식은 독특한 향이나 맛 때문에 내국인보다 해당국가 외국인들이 찾는데 최근 파키스탄, 터키, 말레이시아, 인도 쪽에서 온 외국인들이 다시 제 나라로 떠나거나 서울 외곽으로 빠져나갔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들은 대부분 돈을 벌기 위해 온 생계형"이라며 "6~7년전까지만 해도 이들이 식당을 차리고 종업원으로 일하며 터를 잡아왔는데 최근 월세는 크게 오르고 불경기라 장사는 안돼서 많이들 떠났다"고 설명했다 .

악세사리 상인 김모(30)씨는 "이태원이 레스토랑 위주로 상업화되기 때문에 인테리어도 고급화되면서 월세도 오른다"고 말했다. 그는 "소방도로에 있는 한 수제 칼국수 집은 월세 70만원이었는데 주변에 레스토랑들이 죄다 인테리어를 싹 하면서 월세가 덩달아 300만원으로 올랐다. 결국 문닫고 나갔는데 이런 경향 때문에 이태원은 계속 변하고 있다"며 "먹거리만 가득한 이태원에 외국인은 없고 한국인들만 가득하다"고 말했다.

현재 용산구 이태원동에서 영업하고 있는 음식점은 836개이며 그 외 헤어악세사리점은 10개, 면세점 34개, 게스트하우스 22개, 박물관 39개, 와인 54개 등이다.
▲불꺼진 쇼핑센타 앞, 외국인은 없고 한국인들만 가득하다.

▲불꺼진 쇼핑센타 앞, 외국인은 없고 한국인들만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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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주연 기자 moon1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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