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안에 한인출신 미국 대통령 만들자”
‘미국 입양아’ 신호범 미국 워싱턴주 상원 부의장, “할 수 있다(can do)는 믿음”으로 살아와
[아시아경제 이영철 기자] “앞으로 20년 안에 한인출신 미국 대통령을 만드는 게 내 마지막 꿈이다.”
최고령 입양아, 가장 성공한 입양아로 손꼽히는 신호범(78) 미국 워싱턴주 상원부의장의 소원이다.
인종차별을 없애려 정치에 뛰어든 뒤 이 소원은 지금까지 변함없다. 신 부의장은 “한국인 정치지망생을 양성하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신 부의장은 13일 오후 대전 중구청에서 “고난의 역사가 희망의 역사를 낳는다”는 주제로 특강을 했다.
그는 6·25전쟁 고아에서 한국인 최초로 워싱턴주 상원의원이 되기까지의 어려운 역경을 이겨낸 생생한 이야기를 들려줘 직원들에게서 많은 박수를 받았다. 특강 뒤 신 부의장의 인터뷰 자리를 만들었다.
그의 성공비결이 가장 궁금했다. 그는 “할 수 있다(can do)는 믿음”이라고 답했다.
그는 “나는 할 수 있다. 너는 할 수 있다. 우리는 할 수 있다는 굳은 믿음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며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어도 이 믿음만 있으면 헤쳐갈 수 있다”고 강조했다.
통일문제에도 관심이 많았다. 그는 “독일이 통일을 위해 쓴 돈이 8354억유로(1218조2888억원)이지만 미래를 위한 투자였다”며 “북한주민들을 위해 많은 지원이 필요하고 통일을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의 나이 4살 때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초등학교조차 못 다닌 아버지는 생계를 위해 남의 집 머슴으로 살았다. 그는 외할머니집에서 2년을 살다 6살 때부터 서울역 부근에서 노숙생활을 시작했다. 6·25 전쟁은 꼬마 신호범을 절망으로 내몰았다. 피란생활하면서 개구리와 아카시아꽃, 뱀을 잡아먹고 연명하다 미군병사의 도움으로 ‘하우스보이’로 일하게 됐다.
16세에 군의관인 미군 대위의 양자로 입양된 그는 18세에 부산 영도에서 배를 타고 미국 길에 올랐다. 다시는 조국을 찾지 않겠다고 침을 뱉으면서 떠난 소년은 성공해서 다시 돌아와 부산 영도에서 잘못했다고 큰 절을 했다.
신 부의장은 “나는 모든 것에 절망했고 가슴 속엔 울분만 남아 있었다. 이런 나를 양부모들은 사랑으로 감싸 안았다”고 말했다.
양아버지는 정이 많고 따뜻했다. 소년이 이국생활에 적응을 못하고 너무도 외로워 울고 있으면 가만히 다가와 그를 감싸 안고 ‘난 너를 믿는다’고 격려해줬다.
글을 전혀 모르던 소년 신호범은 하루 3시간씩 자고 열심히 공부해 검정고시로 워싱턴대학에 합격했다. 이후 석·박사학위를 받고 31년간 워싱턴대에서 교수생활을 했다.
그는 고국을 찾아와 서울 영등포에 살고 있는 친아버지를 만났다. 배운 것 없고 먹을 것 없어 남의 집 머슴살이로 살았다는 아버지를 보는 순간 자신을 버린 아버지에 대한 원망은 물거품처럼 사라졌다. 아버지를 미워했던 자신을 자책하며 용서를 구했다.
그는 1991년 워싱턴 하원의원에 당선됐다. 이어 동양계 최초로 상원의원에 당선돼 내리 5선을 하며 현재 상원의원 부의장으로 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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