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덕 감독 "영화 수상당시 청계천에서 무거운 박스 들고 다니던 15살의 내 모습 떠올라"
[아시아경제 조민서 기자]"외국에 나가면 꼭 받는 질문이 있다. '한국에서는 인기가 없고, 유럽과 러시아에서는 영화가 인기가 있는데 기분이 어떠냐'는 질문이다. 그럴 때마다 '아니다, 한국에도 내 영화를 지지해주는 분들이 있다'고 얘기한다. 진심이다."
제69회 베니스영화제에서 대상인 황금사자상의 영예를 안고 김기덕 감독이 금의환향했다. 11일 동대문 메가박스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김 감독은 연신 싱글벙글 웃음을 지으며 농담을 건냈다. '아리랑'을 불렀던 시상식에서의 그 옷차림과 신발 그대로였다.
영화제에서 있었던 일들에 대해서도 유쾌하게 설명했다. 외신기자 시사회에서 유례없이 10분간 기립박수가 터져 나와 놀랐다는 얘기서부터, 알베르토 바르베라 집행위원장이 잔뜩 흥분한 채 "영화제를 운영하면서 이런 (기립박수를 받는)일은 처음"이라고 했던 에피소드까지 전했다. 김 감독은 "어떤 외신 기자는 "영화가 끝나자마자 산사태같은 박수가 터졌다"라고 표현했는데, 기분이 참 묘했다"라며 "이 영화를 만들기를 잘했구나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이 같은 기대와 관심이 수상 전날에는 부담이 됐다. 김 감독은 "많은 사람들이 내게 와서 '피에타'가 '황금사자상'을 탈 것이라고 얘기했는데, 수상 전날에는 너무 부담이 커서 잠도 오지 않았다. 만약 수상을 하지 못하면 다시 바닥으로 떨어지는 것인가라고 생각했다"라며 당시 심정을 고백했다.
작품에서 주인공 '강도'로 분했던 배우 이정진 역시 "개봉 2주차인데 상영관이 너무 적다. 작품이 많이 걸려 있어서 관객들이 편안하게 찾아볼 수 있는 영화가 됐음 한다"고 소감을 말했다. 일부 외신들이 끝까지 경합을 벌인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의 '더 마스터'와 비교해 '피에타'를 깎아내리는 것과 관련해 그는 "좋은 라이벌이 있어야 좋은 결과가 나온다"며 "축구경기에 비유하자면 '더 마스터'는 감독상과 MVP를 차지한 거고, '피에타'는 대한민국이 우승한 것"이라며 일침을 놓기도 했다.
김기덕 감독도 "다른 영화는 상영회차가 1000회 이상이 되지만 우리 영화는 400~500회에 불과하다. 그렇지만 좌석점유율은 60% 이상이 된다. 정상적인 극장의 상도에서는 좌석점유율이 높으면 상영회차를 늘리는 게 맞는데, 아직도 그러지 않더라. 내가 멀티플렉스의 폐해를 말하고 다니면서 내 영화가 2관씩 차지하는 거는 말이 안되고, 다만 한 관이라도 제대로 상영했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또 "1000만 관객이 넘거도 점유율이 낮은데 계속 관을 차지하는 영화들이 진짜 '도둑들'"이라며 우회적으로 영화 '도둑들'을 언급하기도 했다.
이어 김 감독은 피에타가 베니스에서 그랑프리로 호명된 순간, "청계천에서 무거운 박스를 들고 다니던 15살의 내 모습이 떠올랐다"고 말했다. 그는 "데뷔작인 '악어'에서부터 최신작인 '피에타'까지 줄곧 '구원'을 주제로 하고 있다"며 "내게 있어서 구원은 믿음과 이해와 용서가 아닐까 싶다"고 전했다.
최근 축하인사를 주고받은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경선 후보와의 관계를 묻는 질문에 김 감독은 "그와 나는 공수부대와 해병대와의 관계다"라며 농담을 던졌다. 이어 그는 "개인적으로 훌륭한 삶을 살지 못해서 문 후보의 캠프에 간다거나 하는 일은 있을 수 없고, 다만 멀리서 마음으로 기도하겠다"고 전했다. 배울 것이 많은 사람으로는 문재인 후보를 포함해 이창동 감독, 손석희 성신여대 교수를 꼽았다.
끝으로 김 감독은 다시 한 번 영화계에 당부했다. "'피에타'는 맛있는 음식으로 소화가 다 돼 배설이 된 똥이다. 그 똥이 거름이 되어서 좋은 쪽으로 갈 수 있으면 좋겠다. 관객들이 극장에 가서 상영을 늘려달라고 요구를 해도 되고, 그렇지 못해서 막을 내리더라도 그것이 '피에타'의 운명이라 생각한다. 다음 영화를 하게 해달라."
조민서 기자 summ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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