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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현장]'한지·갈대·종이조각'.."창조는 치열함에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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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오진희 기자] 작품을 한다고 누구나 미술가가 되는 것은 아니다. 수많은 미대 졸업생들이 미술시장에 문을 두드리지만 전업작가가 되는 일은 녹록치 않다. 새로움을 전제한 자신만의 작업세계가 있어야 하고, 세상에 작품을 내놓을 만한 자신감은 '다작'이란 과정을 거쳐야 생기는 법이다. 여기서 또 세상에 인정받기까지는 스스로가 작품을 홍보해야한다. 단체전, 개인전, 아트페어 등에서 끝없이 품평이 이어진다. 국내 뿐 아니라 작가가 싸워야 할 공간은 이제 세계로 확장돼 있다. 안정적인 궤도에 이르기까지는 작업과 전시과정에서 밑지는 투자도 각오해야 한다.

중견작가들에게서 들을 수 있는 이야기다. 미술가의 현실을 가감 없이 밝힐 수 있는 것은 그들이 꾸준히 작업을 전개해오면서 겪은 시행착오가 있었기에 가능하다. 창조와 치열함은 작가의 삶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다. 후배 작가들이 귀담아 들어야 하는 작가 인생론이다.
지난 24일 서울 학여울역 SETEC(서울무역전시컨벤션센터) KASF(코리아 아트 썸머 페스티발 2012)에서 중견작가 3인방을 만났다. 서정민·장안순·안성환 작가다. 이들의 공통점은 작품의 소재면에서 우선 남다르다. 서정민 작가는 10여년 동안 '한지'를 돌돌 말아 자르고 이를 기하학적인 추상조형 형태로 이어 붙여 작업해 오고 있다. 장안순 작가는 순천지역의 대표 동양화가로 이 지역의 상징인 '갈대'를 수묵으로 그린지 7년이 돼 가고 있다.

조각가 안성환 작가는 철을 소재로 한 작품위주에서 2년 전부터 '종이'로 만든 조각품을 시장에 선보이고 있다. '한지조형'·'순천 갈대'·'종이조각'. 이들 작가 각자가 선보이고 있는 작품들의 트레이드마크다. 특히 국내 미술시장을 넘어 해외 아트페어 등 세계 시장에 문을 두드리고자 치열하게 노력하고 있는 작가들이다.

한지조형작가 서정민 화백.

한지조형작가 서정민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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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작가들에게 아트페어 만큼 자신의 작품을 알릴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없다. 하지만 한 두번 출품했다고 해서 세상이 알아주기를 바라는 것은 오산이다. 해외 아트페어에 5년 정도 작품을 내놓고 기다리니 이제야 조금씩 내 작품을 보는 사람들이 생기고, 작업도 정착이 돼가고 있다"
서정민 작가의 이야기다. 그가 해외시장에 자신의 작품을 출품한 지는 지난 2007년부터다. 중국 상하이 아트페어부터, 이스탄불(터키), 칼스루에(독일), 런던(영국), 대만, 마이애미, 바젤 등 수많은 아트페어에 참가한 경력이 있다. 한지조형작업을 한 지 10년, 해외 시장에 발 디딘지 5년이 돼서야 시장은 그의 작업을 알아봐준다. 서 작가는 올해도 네덜란드, 마케도니아, 스위스 등지를 누비며 아트페어, 비엔날레 등에서 활동을 벌일 계획이다. 지난해 스위스 바젤 솔로 프로젝트에서는 세계 10대 갤러리 안에 속한 스위스 갤러리 Houser&Wirth 대표가 그가 만든 100호짜리 한지조형작품을 사들이기도 했다.

그는 후배 작가들에게 "젊은 작가들은 급하게 뭔가를 성취하려고 하지 말고 묵묵히 필요한 게 있으면 쫓아다녀야한다. 농사를 짓는데 내가 괭이를 들어야지 누군가 해줄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면서 "새로운 창조물이되 감동을 줄만한 작업을 고안하고, 관람객들의 눈을 끌어당기는 작품을 만들어야 한다. 치열함을 가지고 국내 뿐 아니라 해외에도 문을 두드려라"고 조언했다.

그의 그림에는 동양화가 가지는 기운생동이 한지를 말고 붙여 이은 조형으로 승화된다. 그는 소재로 쓸 한지를 일산의 서예원에서 주로 구입한다. 한지를 말아서 자르면 남는 글씨부분이 작품 안에 이어져 선을 만들어낸다. 의도적으로 노란, 파란색이 들어간 글씨가 담긴 한지를 이용해 작품의 변주를 더한다.

그는 겸손한 표정으로 "10여 년 전 유럽미술여행을 다녀와 전통을 재해석한 나만의 작품을 고민했고 그것이 한지작업이 된 것이 최근에야 알려지게 됐는데, 이를 계기로 '한국적인 작품'을 소개하고 대표할 수 있는 세계적인 작가가 되고 싶은 게 꿈"이라고 밝혔다.

순천지역 대표 동양화가 장안순 작가

순천지역 대표 동양화가 장안순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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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 지역 대표 동양화가 장안순 작가 역시 비슷한 이야기를 전한다. 장 작가도 중국, 독일, 러시아, 프랑스 등 해외 아트페어와 더불어 국내 아트페어에서 수많은 전시를 치른 경험이 있다. 특히 그는 지역작가로서 자부심이 대단하다. 정부나 시장이 지역의 특성을 반영한 작품들에 큰 관심이 없는 것이 서운한 점이다. 그러나 지역작가로서 살아남는 길은 우선 '작가'에 달렸다는 게 장 작가의 지론이다.

그는 "지역작가들이 중앙에 진출하는데 주춤하는 경향이 있는데, 끊임없이 아트페어에 나오고 서울에서 전시도 가져보는 노력들이 필요하다"면서 "무엇보다 전시장에서 직접 관람객을 만나고 품평을 듣고 시장의 흐름을 파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리적으로 또는 문화적 지원 측면에서 소외받는 지역 작가들은 전시 개최 수나 관람객과의 대화에서도 그 기회가 적다. 이를 극복해 내기 위해서는 작가가 작품을 선보이는 장을 스스로 만드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또 정부차원에서도 지역작가들에게 관심을 기울여 주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장 작가의 그림에는 순천 갈대밭과 군무 떼는 그 지역의 자연과 느낌을 잘 담겨 있다. 갈대꽃의 춤을 표현한 일명 ‘춤사위’ (부제-째즈)와 갈대꽃과 갈대 잎을 소재로 한 ‘청혼’, 흑두루미와 자연의 조화를 화폭에 담은 작품 ‘너였기에~’등이 이번 KASF에 소개됐다. 독일대사관에는 그가 기증한 '새떼 군무'를 주제로 한 작품이 걸려있다.

종이조각가 안성환 작가

종이조각가 안성환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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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작품이 바로 조각가 안성환 작가의 '얼굴' 시리즈였다. 석조로 보이는 이 작품을 작가가 "들어 보세요"란 말에 손에 쥐어보니 굉장히 가벼웠다. 1~2kg 정도로 느껴졌다. 알고 보니 종이로 만든 조각품이다. 안 작가는 미대를 졸업하고 사찰의 전통목공예 문양 조각을 업으로 삼다가 최근 5년 전부터는 철을 소재로 한 조각 작업을 진행해 왔다. 그는 "철은 재료비가 상당한데 학창시절 종이로 조각을 시도했었던 경험을 살려 1년전부터 종이 소재로 조각 작업을 한다"고 말했다.

종이조각은 신문지나 골판지, 이면지 등을 물에 끓여 종이의 원재료로 환원시키는 작업부터 시작된다. 이를 도배 풀처럼 만들기 위해 썩히고, 건조하면 조각에 필요한 재료가 만들어진다. 끓이고 식히고 건조하는데 몇 달이 소요된다. 이 재료를 가지고 개서 이어붙이며 테라코타 식으로 만들어진 게 바로 '얼굴' 작품이었다.

안 작가는 "아마 종이로 조각을 하는 작가는 매우 드물 것"이라면서 "앞으로 나만의 종이조각을 꾸준히 만들어 세계적인 종이 조각가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전시장에 비치된 방명록에도 '돌인 줄 알았더니 종이라니..대충격'이라며 관람객들의 놀라움이 묻어있다.



오진희 기자 vale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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