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살이 가까웠던 할머니가, 백발 며느리에게 미안하여 하루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올 모란이 지기까진 가만히 꽃지듯 눈감을 거여." 그해 모란이 피고 봄바람은 모란을 흔들었습니다. 할머니는 성한 몸을 애써 뉘고 창밖의 꽃을 바라보며 서러워 눈물지었습니다. 며느리는 부엌 죽담에 숨어앉아 모란꽃 바람에 가슴을 쓸며 울었습니다. 그해 모란은 정말 몰래 졌고 할머니는 봄을 넘기셨습니다. 이듬해 모란꽃 다시 이울 때, 어머니는 돌아간 할머니의 그 말씀 떠올리며 다시 울었습니다. 야속한 봄바람은 나는 꽃을 불어서 경대 위에 놓입니다만, 눈물 어룽거린 눈에 꽃은 둘도 되고 셋도 됩니다. 피는 꽃 지는 꽃이 어디 꽃이기만 하겠습니까.
빈섬 이상국 편집부장ㆍ시인 isom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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