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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교' 박해일...노시인의 눈으로 사랑을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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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교' 박해일...노시인의 눈으로 사랑을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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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조민서 기자] "너희 젊음이 너희 노력으로 얻은 상이 아니듯, 내 늙음도 내 잘못으로 받은 벌이 아니다." 70세의 노시인 이적요가 말한다. 목소리는 담담했지만 눈빛에는 그간에 꾹꾹 담아눌렀던 감정이 요동친다. 이것은 17세 은교를 향한 애잔함일 수도 있고,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젊음에 대한 서러움일 수도 있다. 혹은 나이듦을 천대하는 세상에 대한 억울함일 수도 있다.

이 질투와 욕망에 사로잡힌 예민하면서도 섬세하고, 복잡다단한 노시인을 뼈와 살이 있는 살아있는 인물로 누가 연기할 수 있었을까. 박범신의 원작 소설 '은교'를 먼저 본 독자라면 여러 후보군을 떠올렸을 수 있겠다. 그러나 영화 '은교'를 먼저 본 관객이라면 오로지 박해일(36)이다. 대체재가 없다는 뜻도 되지만 그만큼 정지우 감독의 캐스팅이 적확했다는 말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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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우 감독이 30대인 나를 왜 이 인물에 캐스팅했을까 싶었어요. 원작을 참고하려고 읽어봤는데, 순수한 독자로서가 아니라 내가 '이적요'라는 사람을 연기해야 한다는 숙제하는 마음으로 읽게 되더라고요. 영화의 최대 난제도 원작을 읽고 영화를 보는 관객들일 것입니다. 심적으로 부담감도 컸지만 우선 내가 믿어야 관객도 믿게 할 수 있다고 생각했죠. 나중에는 '내 나이 대에 70대 노인의 감정을 이 정도로 표현해냈구나'하는 뿌듯함도 생겼어요."

박해일이 '은교'를 찍기 위해 매번 8시간의 특수분장을 받았다는 고생담은 익히 알려진 얘기다. 축 늘어진 살결과 주름, 울긋불긋한 검버섯과 나직한 말투와 느릿한 걸음걸이. 이적요로 '보이기' 위한 준비는 오히려 쉬운 축에 속했다. 문제는 이적요가 '되는' 준비였다. 한 번도 70대를 살아보지 않은 배우와 감독이 시시때때로 많은 질문과 대답을 쏟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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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회 때 '은교'를 보는 데 긴장도 많이 됐지만 결과물이 어떻게 나올까 호기심도 컸어요. 모든 배우들이 대부분 그럴 건데, 내 모습 밖에 안보였죠. 진짜 멍했어요. 현장의 기억도 생생하게 떠오르고. 특히 영화 후반부에 이적요가 집에서 혼자 쓸쓸히 있다가 생일 축하해주러 온 은교를 맞이하는 장면이 있었어요. '은교가 왔구나' 대사를 하는데 서글프고, 서럽고, 쓸쓸하고, 외롭고 그런 감정들이 중첩이 됐어요. 어떻게든 장면을 찍어놓고, 혼자 이적요의 서재로 가서 한 30분 동안은 그 감정에 빠져있었어요."
어느 새 '이적요'가 된 박해일은 마지막 장면에서는 그냥 흐르는 대로 감정을 놓아버렸다. "엔딩 장면에서 찾아온 은교를 보내면서 이적요가 '잘가라 은교야'라고 하는 대사가 있어요. 이미 감정이 제 안으로 쑥 들어왔었기 때문에 이후에는 감정들을 내려놨죠. 최대한 은교의 감정의 진폭을 받아보려고 했어요. 마지막 대사를 한 후에 보니까 감독님도 '컷'이라는 말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숨죽여 꺼이꺼이 울고 있더라고요." 아직 이적요를 완전히 떠나보내지 못했다는 박해일은 그래서 그런지 '시간이 활처럼 빨리 간다'는 말을 이제서야 체감하게 됐다고 털어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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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지고보니 우리가 박해일을 스크린에서 만난지도 10년이 훌쩍 넘었다. 그 사이 박해일은 '와이키키 브라더스' '질투는 나의 힘' '국화꽃 향기' '살인의 추억' '연애의 목적' '괴물' '모던보이' '이끼' 등 착실하게 필모그래피를 쌓아왔다. 전국 관객 700만 명을 돌파하며 지난해 최고 흥행작이 된 '최종병기 활'로는 청룡영화상 남우주연상까지 받았다. 이미 많은 후배들이 박해일을 '닮고 싶은 배우'로 손에 꼽고 있는 상황에서 선택한 '은교'는 도전이자 모험이었다.

"마흔이 되어서 정지우 감독이 다시 한 번 '이적요'를 하라고 하면 또 할 겁니다. 노인의 관점에서의 감정을 1%라도 더 보여주고 싶으니까요. 단 지금과 같은 청년의 모습을 유지할 수 있다는 조건에서요. 이번 '은교'는 제가 결정했고, 도전했고, 선택했다는 점에서는 점수를 좀 줘도 될 것 같습니다.(웃음)"



조민서 기자 summer@·사진 이준구(ARC STUD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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