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화가 한삼숙|꽃으로 표현한 봄의 단상 ‘純情의 희망노래’
권동철의 그림살롱 97 | 서양화가 한삼숙 ‘꽃들의 시샘’ 연작
꽃이, 꽃 중의 꽃이 되고픈 은밀한 욕망을 누가 독(毒)이라 말할 수 있나. 입술을 깨물고도 눈물이 멈추지 않으면 그건, 사랑이다. 그대 역시 한철 피어나는 인생. 독을 품어라!
바닷가 산기슭. 연분홍 철쭉 통꽃잎이 어색한 눈빛으로 흔들리며 서 있다. 연록(軟綠)의 잎맥 위에 유난히 뽀송한 털이 부끄러운 듯 가녀린 손을 가슴에 살포시 한번 토닥이곤 풍성한 머릿결을 쓸어 넘겼다.
해풍(海風)을 가르며 달려온 완행열차는 노인의 긴 하품처럼 기적을 울리며 간이역을 알렸다. 헤로인(heroine)의 자웅을 겨루듯 명자, 목련, 양귀비 ‘미화(美花) 3총사’가 눈부신 매혹을 발산하며 사뿐사뿐 난간을 내려올 때 햇살아래 수묵이 번지듯 절정의 진한 라일락 향(香) 연보라 스카프가 봄바람에 휘날렸다.
“참 묘하지. 계절은 어쩔 수 없어. 봄은 상처보단 동경심이 강한 법이거든.” 목련이 인적 드문 역사(驛舍)를 빠져나오며 읊조릴 때 기적소리를 내며 기차가 떠난 자리엔 가슴 저미도록 하얀 벚꽃이 흩날렸다.
시들지 않는 꽃이 되고픈 열망
블루사파이어 물색 위에 황혼이 출렁이며 번쩍였다. “어떤 그리움이기에 저 찬물에도 식지 않고 타는 걸까.” 빨갛게 익은 뺨 같은 명자가 방갈로 베란다 아래 철썩이는 바닷소리를 바라보며 말을 걸었다. “하룻밤 정은 아닌 거야, 그치?” 평소 말수가 적은 목련의 입에서 나온 뜻밖의 질문에 놀라 그만 앞뒤가 맞지 않는 단정적인 행동을 하고 말았는데 “아니 뭐, 가시 돋친 몸매에서 이런 예쁜 자태는 더 이상 없지.” 목련과 양귀비가 동시에 눈이 마주쳤다.
일순간 미묘한 흐름이 저녁 공기를 갈랐다. 잠시 후, 아우들의 얘기를 묵묵히 듣고 있던 양귀비가 입가에 의미있는 미소를 머금고 예리하게 한마디를 꽂았다. “그건 달아오른 거지. 속내를 죄다 드러낸 그런…”이라며 하찮은 듯 눈썹을 천천히 내리깔았다. 명자의 얼굴엔 일그러짐이 역력했다. 자존심 상한 입술은 가늘게 떨리는듯 하다. 목련에게 앙칼지게 쏴붙였다. “넌 왜 비만 오면 천박하게 길거리에 드러눕고 그러니?” 냉랭한 분위기에 입을 꾹 다물고 듣고만 있던 목련이 자기에게 날아든 느닷없는 힐책(詰責)에 울컥하는 감정을 쏟아냈다. “솔직히 달빛에 나처럼 백옥피부 자신있게 드러낼 수 있는 미모 본 적이나 있수?”
점점 분위기는 뜨거워져 간다. 마음먹고 봄 여행을 떠나온 셋이서 다툴 것만 같은 미묘한 분위기를 완벽하게 조용히 가라앉힌 건 역시 관록의 양귀비였다. “너희들 아무리 그래봤자 나는 황제에게 귀비의 책봉을 받은 몸. 그것도 황후의 자리를 비워둔 채 말이다. 무슨 말이 더 필요하니. 치명적 아름다움의 운명을 너희들이 알기나 해. 미모의 최고봉, 시들지 않는 꽃, 거긴 내 자리. 너희들은 부르거든, 나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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