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블로그]반값의 불편한 진실
[아시아경제 이초희 기자]주말에 시간이 남아 인터넷을 뒤적거리다 문득 스팸메일을 모아두는 보관함을 열어보게 됐다.
각종 인터넷 쇼핑몰에서 보내온 광고메일들이 하나 가득 쌓여 있었는데 죄다 제목에 '반값세일'이란 말이 붙어 있었다.
작년까지만 해도 광고문구의 최대 스타는 '폭탄세일'이었는데 요즘은 반값이 폭탄을 완전히 밀어 낸 모양이다.
반값에 준다는 물건도 하나같이 제각각이다. 고가 식재료의 대명사인 한우 쇠고기부터, 해외 명품시계, 최신형 TV, 자전거, 명품지갑, 하다못해 라면 한박스 까지도 요즘은 반값에 판단다.
총선 시즌을 맞아 정치인들이 내건 공약에도 반값이 판친다. 등록금도 반값, 집값도 반값. 온 세상의 소비재들을 모두 반값에 내다 팔아도 모자랄 지경이다.
원래 받는 값에서 반을 깎아준다니 소비자들에게 있어 이보다 짜릿한 단어는 없다.
소셜커머스가 등장한 이후 내수시장에서 반값이란 단어는 이제 의례히 붙는 고유명사처럼 되버렸다.
최근에는 대형마트나 대형슈퍼에서 과일, 채소, 생닭, 라면 같은 상품을 반값으로 깎다 못해 이 가격을 무려 수개월간이나 동결시킨다는 발표가 잇따르고 있다.
조금만 생각해 보면 참으로 희한한 상황이다. 예전만 해도 우리나라 유통사나 대형제조사들은 물가가 조금만 올라도 이를 제품 가격에 즉각 반영해 왔다. 원가 구조가 워낙 투명하고 마진이 적다 보니 가격을 올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게 단골 변명꺼리였다.
그런데 천지개벽할 일이 벌어진 것도 아닌데 갑자기 앞 다퉈 물건 값을 반으로 깎아준다는게 가능할까?
반값에 팔린다는 물건들을 보면 모두 유통구조의 혁신을 이뤘단다. '중간 유통 단계' 라는 것을 획기적으로 없애다 보니 값이 절반으로 뚝 떨어졌단 얘기다.
반값 마케팅이 유행한지는 이제 고작 1년여. 이 짧은 시간동안 반값에 팔아도 남는 방법을 생각해 냈다면, 결국 예전에 받았던 가격은 모두 두 배 넘게 비싼 값이었다는 얘기가 아닌가. 물론 자체브랜드(PB)상품들이 반값 품목의 주를 이루고 있다보니 '유통구조의 혁신'이 가능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일반 대기업 제품들의 반값구조는 어떻게 나온 것일까.
소비자들은 반값이란 말에 현혹돼 물건을 산다. 그러나 그것은 결국 자신이 예전에 지불해야 했던 바가지 가격의 일부를 이제야 돌려받고 있는 셈이니 억울함은 두 배로 늘어난다.
저마다 반값을 붙이느라 난리 법석이다. 주말에 배포되는 대형마트 광고 전단지에는 몽땅 반값 투성이다. 유통사들이 하나 같이 내걸고 있는 소위 '반값', 사실은 그것이야 말로 원래 받아야 할 '제값'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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