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하는 세상의 뒤편엔 늘 과학기술이 있었고, 과학기술이 바꾸는 세상의 속도는 점점 빨라지고 있다. 특히 세상에 없던 새로운 기술들을 대거 등장케 한 항공우주과학기술 분야에 종사하는 연구원으로서 '현재적 존재로서의 과학기술의 미래가치'라는 다소 철학적인 주제에 대한 깊은 성찰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과학기술의 양면성도 생각해 볼 주제다. 거시 관점에서 과학기술은 인류를 발전의 길로 이끌었다. 그러나 미시적으로는 늘 긍정과 부정의 성향을 동시에 보인다.
예를 들자면 화석연료 개발로 안락하고 편리하고 편안한 생활을 제공했지만 결국 이 모든 것을 위협할 만한 환경오염을 가져왔고, 정보기술(IT)의 발전으로 시공간의 물리적 한계를 극복하는 소통의 도구를 제시했지만 사생활 침해나 정제되지 못한 집단행동과 같은 무질서함도 가져왔다. 간혹 핵폭탄이나 배아복제처럼 무시무시한 결과를 초래할 만한 과학기술도 그 반대편에선 원자력 에너지와 생명연장의 꿈을 현실화하는 등 순기능적으로 작동해 왔다.
과학기술의 이 같은 속성 때문에 과학기술은 무엇을 어디에 어떻게 쓸 것인가라는 점에 대한 충분한 도덕적 성찰이 동반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과학기술이 당장의 상황을 결정하거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미래를 결정 짓거나 바꿔 놓을 수 있는 있기 때문이다. 특히 과학과 기술이 미래가치에 대한 도덕적 성찰과 분리돼 존재했을 때 그것이 가진 양면성 중 부정적 면이 부각될 가능성은 높아질 것이다.
오늘날 누구도 과학기술이 국가와 세계의 성장동력이라고 믿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과거에도 지금도 과학기술은 분명히 경제발전을 추동하는 가장 큰 힘이었다. 그래서 과학기술의 발전을 위한 전폭적인 투자와 환경 조성 등이 요구될 때 반드시 '성장동력으로서의 과학기술'이라는 논리가 따라왔다.
그러나 이제 '과학기술의 발전'이라는 어젠다를 생각할 때 더 이상 경제논리만을 우선해서는 안 될 것 같다. 예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빨리 변해가는 세상 속에서 과학기술이 또 어떤 양면성을 보여줄지 예측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과학기술에 대해 '현존하는 미래가치'라는 인식이 커질 때 우리는 더 인간적인 과학기술, 더 편안하고 평화로운 미래세상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김방엽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정지궤도위성관제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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