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륜스캔들? 아니, 치열하고 근사한 성장이야기 - 영화 '열여덟 열아홉'
[아시아경제 태상준 기자] 시작은 스캔들이었다. 전 세계에서 가장 예절과 격식을 갖추는 '동방예의지국' 에서 이란성 쌍둥이의 사랑을 그린 영화라니, 도저히 받아들여 질 수 없는 발칙한 소재의 영화로 볼수도 있겠다. 그러나 실상을 들여다보면 다소 누그러진다. 한 개의 정자와 난자가 결합된 수정란이 두 개로 분리된 일란성 쌍둥이와는 달리 두 개의 정자와 두 개의 난자가 만나 탄생한 이란성 쌍둥이(Fraternal twin)가 혈육이지만 다른 외형과 성별 등으로 인해 서로에게 더욱 강한 호감을 가지게 된다는 심리 분석과 실제 사례들이 엄연히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는 현실을 반영한다. 영화 '열여덟 열아홉'은 이런 현실을 애써 피해가려 하지 않는다. '열여덟 열아홉'은 학교 친구들에게 오해를 살만큼 사이가 좋은 이란성 쌍둥이 남매 호야(유연석 분)와 서야(백진희 분)가 지독한 성장통을 겪는 열여덟과 열아홉 사이의 한 해 이야기다. 호야에게 사랑을 고백한 서야. 당황한 호야는 같은 학교 도미(엄현경 분)에게로 도망치고, 서야도 학교 복싱부 선배인 일강(정헌 분)과 충동적으로 만나기 시작한다.
도전적이고 낯설다 못해 파격적으로까지 느껴지는 소재지만, 사실 '열여덟 열아홉'이 하려는 이야기는 따로 있다. 실제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최대한 달콤하고 아름답게 묘사된 TV 속 기존 10대 학원물의 '판타지' 세상과는 달라도 한참 다르다는 것. 호야와 서야의 사랑은 단순한 자극 그 이상의, 치열했던 사춘기의 성장통을 보다 극적으로 표현하려는 매개체에 불과하다. 극 중 호야와 서야가 경험하는 사랑은 순수하지만 당돌하고, 어설프지만 특별한 10대 청춘들에게 밀어닥친 성장통의 시작 지점일 뿐이다.
두 남녀의 사랑의 불장난을 보여주는 것 대신 '열여덟 열아홉'은 둘의 성장통을 헤쳐 나가는 사뭇 다른 방식에 집중한다. 끊임없이 자신을 괴롭히고 그 상처에 아파하는 수동적인 방법을 택한 서야와는 달리 호야는 정면 승부로 간다. 단 한 번도 그의 의사와 주관을 제대로 표현한 적 없는 호야는 권투라는 스포츠를 통해 자신을 밖으로 내는 방법을 비로소 알게 된다. 누구의 방식이 옳다 그르다 판단할 수 없다. 각각 그들만의 방식으로 호야와 서야는 조금씩 어른의 세계에 접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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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불편해서 피하고만 싶은 것에서 출발한 '열여덟 열아홉'은 이상하게도 영화를 보는 관객으로 하여금 자꾸만 자신을 돌아보게 한다. 한창 성장의 아픔을 경험하고 있는 열혈 청춘들은 물론이다. 아주 한참 전에 성장판이 닫힌 기성세대들은 호야와 서야에게서 무모했지만 동시에 달콤했던 자신들의 10대를 본다. 호야는 절대 어디로 도망가거나 숨지 않고, 눈을 똑바로 뜨고 앞을 쳐다 볼 것을 다짐한다. 다섯 개의 혹독한 라운드를 버티고 마침내 환하게 웃게 된 호야의 얼굴은 우리가 이미 경험했던 혹은 앞으로 우리 앞에 닥칠 어려움에 대처하는 모범답안이다. '패륜' 스캔들로 시작한 '열여덟 열아홉'은 이렇게 치열하고 근사한 성장 영화로 거듭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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