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은 행복한데 눈물은 언제 흘리지? - 독일 블록버스터 뮤지컬 '엘리자벳' 국내 초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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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태상준 기자] 엘리자벳 폰 비텔스바흐(Elisabeth von Wittelsbach, 1837~1898). 시퍼런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진 프랑스의 마리 앙투아네트, 불이 꺼지지 않는 대영제국을 이끈 엘리자베스 1세와 빅토리아 여왕 급은 아니지만 격동기 유럽 근대사에서 절대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엘리자벳은 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 프란츠 요제프 황제(Kaiser Franz Joseph)의 아내다. 프로이센 뮌헨의 평범한 집안의 차녀에서 어떤 것도 부러울 것 없는 황후 자리에 올랐지만 실상 그의 삶은 불행하기 짝이 없었다. 유럽에서 전통과 격식을 가장 중시한 합스부르크 왕가의 적통으로서 평범한 여자의 삶을 포기한 채 황손의 어머니 '황후'의 삶을 강요 받은 엘리자벳은 1898년 스위스 레만 호 근처에서 이탈리아인 무정부주의자 루이지 루케니(Luigi Lucheni)에게 암살되는 것으로 비운의 삶을 마감했다. 그러나 오스트리아에서 엘리자벳은 여전히 불멸의 존재다. 사망한지 100여 년의 시간이 훨씬 지난 지금까지도 엘리자벳은 오스트리아를 대표하는 인물로 여전히 그들의 기억 속에 생생히 살아 숨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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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후 엘리자벳이 무대에서 화려하게 부활했다. '모차르트!'와 '레베카' '마리 앙투아네트' 등 독일 뮤지컬의 히트 콤비인 작사가 미하엘 쿤체와 작곡가 실베스터 르베이가 1992년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처음 내놓은 '엘리자벳 Das Musical Elisabeth'(제작_㈜EMK뮤지컬컴퍼니)이 8일부터 서울 한남동 블루스퀘어 삼성전자홀에서 공연 중이다. 독일어 권 뮤지컬로는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엘리자벳'은 1996년부터 일본과 헝가리를 비롯해 스웨덴, 네덜란드, 독일, 이탈리아 등 전세계로 뻗어나갔다. 한국은 이번이 초연이다. 7년의 제작 준비 기간에 300 여명이 넘는 스태프들이 참여했으며, 100억 원이 넘는 총 제작비가 투입됐다. 황후 엘리자벳의 일대기에 초점을 맞춘 '엘리자벳'은 '죽음'이라는 초월적인 존재를 등장시켜 황후의 극적인 인생을 실제와 허구를 적당히 섞어 설득력 있게 풀어낸다.


'블록버스터 뮤지컬'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엘리자벳'은 무대 위 다채로운 의상과 화려한 미술이 관객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LED 조명에 회전 무대, 3D 영상까지 사용한 무대 미술은 웅장하며, 합스부르크 전통 방식 그대로를 재연한 400 여벌이 넘는 전통 의상들은 시각적인 재미를 톡톡히 안긴다. 미국 브로드웨이나 영국 웨스트엔드와 비교해도 뒤지지 않을 만큼 '엘리자벳' 속 노래들은 귀에 '쏙쏙' 박힌다. 쿤체와 르베이의 히트작 '모차르트!'와 마찬가지로 고음 부분이 인상적인 삽입곡들이 많다. '엘리자벳'이 대사를 최소화하고 노래로 내러티브를 이어가는 '송 쓰루 (Song Through)' 뮤지컬로서의 기본 조건은 만족시키고 있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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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정상급 뮤지컬 배우들의 화려한 앙상블을 보는 맛도 쏠쏠하다. 여성 관객이 지배하는 국내 뮤지컬 시장에서 '엘리자벳'은 여자가 타이틀 롤인 보기 드문 작품이다. '지킬앤하이드'의 루시 역으로 친숙한 김선영과 '아이다' '브로드웨이 42번가' 등 뮤지컬 배우로 안착한 옥주현이 엘리자벳 역으로 더블 캐스팅됐다. 옥주현의 엘리자벳이 연기를 많이 발산하는 식이라면, 김선영은 절제 안에서 폭발하는 엘리자벳을 보여준다. 엘리자벳의 내면을 탐구하는 '죽음'은 두 걸출한 뮤지컬 배우인 류정한과 송창의에 더해 지난해 '모차르트!' 흥행 신화의 장본인인 김준수(시아준수)가 합류했다. 또한 엘리자벳에 관련된 사건의 키워드를 쥔 루케니는 김수용과 박은태, 최민철의 입을 빌어 엘리자벳을 질투하고 유혹하며 찬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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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 소리 나는 제작비가 투입된 화려한 미술과 무대는 '엘리자벳'의 강점인 동시에 약점이기도 하다. 의상과 무대, 조명 등 가능한 최고의 볼거리를 많이 보여주기 위해 '엘리자벳'은 1, 2막을 합쳐 서른 번의 장면 전환을 반복한다. 너무 자주 변화하다보니, 정작 내러티브를 따라가기가 쉽지 않다. 무대의 미학적인 감상 조차 불가능할 때도 있다. 루케니가 장 사이사이 무대에 올라 이야기의 진행 상황을 요약 정리하도록 한 것은 이를 만회하기 위함이다. 하지만 '엘리자벳'의 최대 약점은 극 중 엘리자벳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 인간으로서 삶의 권리를 찾으려고 한 엘리자벳의 슬픔과 고독, 연민의 정서는 과잉의 무대와 미술 속에 매몰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을 수도 있겠다. 기실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는 아니다. 안타깝게도, 쿤체와 르베이의 첫 합작 뮤지컬 '마녀'(1991) 이후 그들의 모든 작품들에서 끊임없이 지적되어 온 약점에서 '엘리자벳' 역시 자유롭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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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상준 기자 birdcage@ㆍ사진제공_㈜EMK뮤지컬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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