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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준희의 축구세상]그라운드의 실천하는 지식인 소크라테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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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 [사진=Getty Images/멀티비츠]

소크라테스 [사진=Getty Images/멀티비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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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라운드의 명선수로 이름을 날렸던 이들 가운데 가장 철학적이고 사색적인 이름을 지닌 사나이 소크라테스가 향년 57세로 생을 마감했다. 그리고 그는 단지 그 이름을 지녔을 뿐 아니라 그 이름에 걸맞고도 남음이 있는 삶을 살았다.

소크라테스는 축구사를 빛낸 플레이메이커들 중 한 명이었고, 또 의사였으며, 민주주의를 신봉한 '행동하는 지성'이기도 했다. 그가 집필했던 칼럼들은 그라운드 위의 이야기를 넘어 축구가 사회, 정치, 경제를 어떻게 반영하고 있는지, 그것들이 축구에 어떻게 스며들고 있는지를 다루곤 했다. 그는 강연을 했고 저작을 집필 중이었으며, 최근까지도 브라질의 월드컵 개최가 초래하는 부정적 측면들에 관해 비판적 시각을 견지하고 있었다.
1982 월드컵 경기들이 국내에 방송되던 시절부터 소크라테스는 우리에게도 종종 '의사 축구선수'로 소개되곤 했다. 그는 그 특이한 이름과 이력만큼이나 눈에 띄는 외모를 하고 있었는데(당시로선 매우 큰 키에다 당대의 테니스 영웅 비외른 보리를 모방한 듯한 외모), 그러나 무엇보다 축구팬들을 매료시킨 것은 소크라테스의 기량이었다. 침착하면서도 지극히 절묘한 그의 플레이 하나하나는 '하얀 펠레'로 소개되며 당대 최고라 일컬어지던 지코보다도 더욱 인상적이었다는 생각이다. 물론 82 월드컵 전체의 궁극의 주인공들은 브라질을 거꾸러뜨린 파올로 로시, 그리고 울부짖듯 포효하던 마르코 타르델리였기는 하지만 말이다.

실상 1982년의 브라질 팀은 '최강의 전력으로 월드컵을 들어 올리지 못한' 축구사의 대표적인 몇 팀들 가운데 하나로 꼽힐 만하다. 쉽게 예상할 수 있듯이 1954년의 '골든팀' 헝가리, 1974년의 '토털풋볼' 네덜란드야말로 이 계열의 대표 주자들이다. 그래도 헝가리와 네덜란드는 각각 결승전에는 진출했었고, 1934년의 '원더팀' 오스트리아의 경우는 4강에까지 올랐다(잉글랜드, 우루과이와 같은 축구 강국이 불참한 월드컵에서 마티아스 진델라의 오스트리아는 틀림없이 강력한 우승 후보였다). 그러나 소크라테스가 주장을 역임했던 82년의 브라질은 심지어 4강에도 오르지 못했다.

당시의 브라질은 역대 최고라 해도 과언이 아닌 가공할 재능의 미드필드 조합(지코-소크라테스-팔카웅-세레조)을 보유하고 있었다. 하지만 미드필드 의존도에 비해 수비와 최전방에는 결함이 있었던 데다, 점점 상승하는 분위기의 이탈리아를 충분히 경계하지 않은 것도 그들의 탈락을 부채질했다. 무엇보다도 이탈리아의 로시가 브라질 전에서 '생애 최고의 경기'를 펼쳤던 것이 컸다. 소크라테스는 82년 팀보다 덜 화려했던 86년 브라질 팀의 일원으로 다시 한 번 월드컵에서 활약하지만 8강 프랑스 전에서 승부차기 실축을 범한다.
절묘한 백힐 패스, 스루 패스, 강력하고도 정확한 슈팅, 영리함과 침착함의 대명사였던 플레이메이커 소크라테스의 월드컵은 결국 이렇게 빈손으로 마감됐다. 그러나 그는 월드컵과는 또 다른 의미의 가치 있는 일들을 이미 해낸 인물이었고, 어쩌면 브라질에서 그는 축구선수 그 이상의 존재였다. 그가 20여 년 간 이어져온 브라질의 군부독재를 그라운드와 축구 클럽에서부터 타파하기 시작한 주인공인 까닭이다.

당시의 브라질 클럽들은 '군부독재의 축소판'과도 같이 운영되곤 했는데, 특히 경기가 열리기 전 며칠 동안 선수들을 숙소에 감금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소크라테스가 이끌었던 '코린치안스 민주주의' 운동은 이러한 군부독재 분위기와 악습에 항거해 클럽의 대소 사안들을 클럽 관련자 모두의 민주적 투표에 의해 결정되게끔 했다. 이 운동은 코린치안스 클럽의 좋은 성적과도 연결됐다. 민주화로 단결한 코린치안스는 명문 클럽들이 즐비한 상파울루 주의 파울리스타 챔피언십을 2연패하는 개가를 올린다.

축구 클럽의 민주화는 하나의 상징적 단초였다. 소크라테스가 이끌었던 민주화 운동은 더욱 직접적인 모습으로도 표출됐다. 코린치안스는 대통령 직선제를 촉구하는 걸개를 내걸었고, 선수들은 국민들의 투표 참여를 독려하는 셔츠를 착용했다. 브라질의 군부독재는 1985년에 마침내 종식됐다. 소크라테스는 그의 클럽과 축구가 브라질의 민주화 회복 과정에 작은 밀알이 되었다는 것을 언제나 자랑스럽게 여겼다.

세계 축구사에는 소크라테스 이외에도 이른바 '많이 배운' 선수들, 그리고 '정치에 관심을 두는' 선수들이 존재해왔다. 하지만 소크라테스만큼 뛰어났던 선수가 소크라테스만큼 직접적으로 사회를 위해 실천하며 살아갔던 경우는 별로 없었다. 그는 의술을 배웠고 철학서를 읽었으며 미디어를 통해 축구와 사회, 정치와 경제를 논했다. 그러나 그는 자기 홍보와 선전에 그치는 유형의 인간이 아니었으며, 한 마디로 '행동하는 지식인', '실천하는 축구선수'였다. 그의 명복을 빈다.

한준희 KBS 축구해설위원·아주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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