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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준희의 축구세상]스플릿 시스템에 대한 몇 가지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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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준희의 축구세상]스플릿 시스템에 대한 몇 가지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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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은 이 땅의 프로축구가 새로운 모습으로 탈바꿈하는 원년이 된다. '승강제'의 도입으로써 진정한 경쟁과 스토리가 살아 숨 쉬는 프로축구로 뻗어 나아가기를 바라는 것은 실로 축구를 사랑하는 모든 이의 한결같은 마음일 것이다.

승강제가 모쪼록 우리 축구의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작동하기를 염원한다는 이야기는 다른 기회들을 통해 언급해왔을 뿐 아니라 필자 나름의 승강제 시행 방식을 제시하기도 했다. 따라서 필자 역시도 원칙적으로 승강제 찬성론자임에 틀림이 없다. 다만 오늘의 칼럼에서 다루고 싶은 것은 다음 시즌 시행될 이른바 '스플릿 시스템'에 관한 몇 가지 우려 사항들이다.
스플릿 시스템의 요체는 16개 클럽이 시즌 30라운드를 벌인 후 순위에 따라 리그를 둘로 쪼개(split) 상위리그와 하위리그를 구성하고, 클럽들은 각각의 리그에서 추가 14라운드를 더 치르게 된다는 것이다. 당연하게도 30라운드까지 따낸 각 팀의 승점은 이후에도 연결되며, 일단 상, 하위로 리그가 나뉜 이후의 순위 변동은 각각의 리그 내에서만 이루어지게 된다. 상위리그에서는 우승 및 AFC 챔피언스리그 진출을 위해, 하위리그에서는 승강제 원년을 1부리그에서 맞이하기 위한 투쟁이 펼쳐질 것이다.

개념적으로 이 방식은 스코틀랜드 리그의 아이디어를 따르고 있다. 하지만 필자가 가장 우려하는 것이 바로 이 '개념'의 문제다. 이 개념이 스플릿이라는 이름 그대로 '통합'보다는 '분리'에 기반한 것이기 때문이다.

필자는 이전 칼럼인 < 한준희의 축구세상: 한국형 승강제를 위한 인터리그 >에서 승강제가 시행됐을 때 1부와 2부 사이에 인터리그를 두어 1부와 2부의 접촉 면적을 최대한 넓히면서 1부와 2부를 '하나의 프로리그'로 보이게끔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했다. 이렇게 하는 것이 1부리그 팀 수의 감소가 아닌 전체 프로 팀 수의 증가라는 외연 확대 효과를 그나마 기대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이는 또한 '2류', '2등'이 곧잘 외면 받는 풍토에서 2부리그의 값어치를 조금이라도 높여보고자 하는 의도에서였다.
인터리그는 한 마디로 "따로 또 같이"라는 기본 개념으로부터 출발한다. 지난해 9월1일 필자가 한국방송 홈페이지 < 이광용의 옐로우카드 >에서 인터리그 이야기를 꺼냈을 때 필자는 이를 두고 스코틀랜드식 아이디어를 '뒤집어 생각'하는 방식이라 이야기했다. 1부를 같이 하다가 둘로 쪼개지는 스코틀랜드 방식과는 정반대로, 우리의 경우는 1부와 2부가 따로 있더라도 각각의 구성원들끼리 함께 하는 기회 또한 최대한 만들어보자는 의미였다. 결국 스플릿의 기본 개념은 인터리그의 그것과는 완전히 반대다. 스플릿은 "따로 또 같이"가 아니라 "같이 또 따로"의 개념으로부터 출발한다. 1부리그를 모두 함께 하다가 후반에 가서는 둘로 쪼개져버린다.

물론 여기서 인터리그에 관해 다시 역설코자 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인터리그 아이디어 또한 자체적으로 문제들을 내포한 것일 수 있는데다, 1부와 2부의 팀 수가 일치하지 않을 공산이 큰 현실에서 인터리그를 시행할 경우 당장 리그 일정 짜기가 그리 수월치만은 않을 것도 예상되는 까닭이다. 그리고 이에 관해서는 프로축구연맹에서도 충분한 연구가 있었으리라 믿는다.

다만 그럼에도, 스플릿에 내재된 '분리' 개념에는 자체로 찬동하기 어렵다. 스코틀랜드 리그는 잉글랜드와 더불어 세계에서 가장 먼저 축구를 시작한 곳이다. 레인저스와 셀틱 이외에는 변변한 팀이 없는 작금의 현실에도 불구하고, 그 곳에는 장구한 세월 동안 각각의 클럽을 떠받쳐왔던 팬들과 문화가 존재한다. 따라서 분리의 개념으로 가든 통합의 개념으로 가든, 스코틀랜드 리그는 전체가 돌아가는 데에 큰 지장이 없다. 프로축구를 위한 전통과 기반, 문화가 이미 충분하기 때문이다.

반면 우리에게 있어 잦은 '분리'는 위험하다. 스플릿은 1부리그 자체를 좋은 리그와 나쁜 리그로 나뉘어 보이게끔 할 수 있다. 좋은 리그에는 8팀만이 존재하며, 아래쪽 리그는 단지 '2류들의 경쟁'으로 비쳐질 수 있다. 차후 생겨날 2부리그가 이렇게 비쳐지는 것도 가급적 막아야 할 판인데, 1부리그 자체에서부터 1등급과 2등급의 구분을 두겠다는 것은 여러 가지로 찬동하기가 어렵다. 하위리그 팀들끼리 벌일 14라운드가 과연 그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대중의 이목을 집중시킬 수 있을까? 2부로 떨어지기도 전부터 이른바 하위리그를 치르게 되는 클럽의 스폰서들은 과연 이를 어떻게 생각할까?

상, 하위로 나뉜 이후의 경기 수가 너무 많아 보인다는 것도 다소간 걱정거리다. 물론 14라운드가 지니는 장점들도 있기는 하다. 우선 모든 팀이 홈과 원정에서 한판씩 치를 수 있다는 것, 클럽의 명운이 걸린 강등과 생존을 결정하는 마당에 충분한 경기 수를 갖게 함으로써 강등되는 클럽들의 불만을 최대한 억누를 근거를 마련한다는 점에 있어서는 그러하다.

그러나 이 점들을 감안하더라도 14라운드는 많아 보인다. 스코틀랜드는 물론이고 스플릿을 선택하는 어떠한 리그도 스플릿 이후 이 정도로 많은 경기 수를 소화하지 않는다. 우선 이것은 앞서 치렀던 '정상적인' 30라운드의 값어치를 꽤나 감소시킨다. 물론 30라운드까지의 승점이 연결되기는 하지만, 14라운드에 걸려있는 42점의 승점은 이전 30라운드까지의 순위를 대부분 뒤엎을 수 있는 크기다(실제로 올 시즌 9위 제주와 15위 대전의 승점 차는 13점이다). 상위 강팀들과의 통합 경쟁 속에서 선전했던 팀들에게 억울한 제도라 할 만하다.

예전에 시행해본 적이 없는 바는 아니나 정규리그만 44라운드를 치르게 된다는 것 자체에도 다소간 무리한 측면이 있다. 스페인의 지극히 일반적인 클럽 스포르팅 히혼이 지난 시즌 치른 공식경기의 수효는 딱 40경기에 불과하다. 물론 이는 그들이 국왕컵에서 일찍 탈락한 결과다. 그러면 비교적 오랜 시간 컵대회들을 병행했던 클럽들의 경우는 어떨까? 지난 시즌 잉글랜드에서 FA컵 결승까지 진출, 기염을 토한 스토크 시티의 총 경기 수는 48경기였다. 유로파리그를 병행했던 독일의 레버쿠젠도 지난 시즌 48경기를 치렀다. 유럽의 클럽들이 이 정도일진대 우리 클럽들의 선수층에 비추어 44라운드란 도대체 적은 경기 수가 아니다.

올 시즌 전북의 경기 수를 보아도 44라운드의 쉽지 않음이 드러난다. 올 시즌 전북은 남아있는 AFC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K리그 챔피언결정전들까지 포함해 모두 47경기를 소화할 예정이다. 하지만 리그가 44라운드가 되면 이야기는 사뭇 달라진다.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노리는 K리그 클럽이라면 리그와 챔피언스리그에서만 56경기를 치러야 한다. FA컵에서 첫판 탈락을 목표(?)로 삼는다 하더라도 57경기는 기본이다.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에서 탈락하는 클럽의 경우도 51경기까지는 소화해야 한다. 이는 보통의 유럽 클럽들의 경기 수를 웃도는 수치다.

스플릿 시스템이 여러 가지 연구들을 통한 노고의 산물이라는 것은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 그러나 몇 가지 부분들에서 걱정거리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모쪼록 승강제가 준비 과정에서부터 잘 굴러갈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한준희 KBS 축구해설위원·아주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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