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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준희의 축구세상]울산의 '철퇴' 브랜드, 바람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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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준희의 축구세상]울산의 '철퇴' 브랜드, 바람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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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한 인터넷 포털에서 2011 K리그 챔피언십을 프리뷰하며 네티즌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흥미로운 질문들 가운데 하나는 전북의 '닥공(닥치고 공격)'과 같은 특유의 브랜드를 지닌 K리그 클럽이 있는가에 관한 것이었다. 이에 필자는 전북과 같은 공식화가 이루어지진 않았으나 일부 축구팬들 사이에 회자되는 울산의 '철퇴' 브랜드가 매우 그럴듯하다고 대답한 바 있다.

전북의 '닥공'은 클럽의 수장 최강희 감독이 공개 석상에서 직접 그 표현을 사용함으로써 완벽하게 공식화되었다. 그 표현과 전북이 추구해온 공격지향적 스타일, 다득점 축구가 적절히 들어맞음은 물론이다. 실상 전북은 뒤지고 있지 않은 상황에서조차 수비형 미드필더의 수를 줄이고 공격 자원의 수를 늘리는 모험적인 선수 교체를 종종 감행하는 팀이다. 이따금씩 이로 인해 곤경에 빠지는 경우도 있지만, 공격력에 승부를 거는 전북의 고집과 자신감은 결코 사그라지는 법이 없었다. 이제 '닥공'은 전북에 있어 하나의 브랜드처럼 여겨지게 됐고, 따라서 그들은 앞으로도 한동안 이 브랜드를 지켜 나아가기 위한 노력을 경주할 듯싶다.
울산의 '철퇴'는 '닥공'처럼 공식화된 표현은 아니다. 하지만 축구팬들이 이를 사용하는 것에는 근거와 일리가 있다는 생각이다. 울산은 매우 조직적인 수비를 바탕으로 실점을 최소화하면서 결정적인 한두 방으로 상대를 꺼꾸러뜨리는 경기들을 종종 펼쳐 보인다. 시즌 전체로 보면 득점이 적지만 승점 쌓기에 필요한 만큼의 득점을 한다. 골을 터뜨리는 스타일에 있어서도 곽태휘, 김신욱과 같은 중량급 득점원들의 한 방이 대표적인 무기. 따라서 빠르게 여러 번 휘두르는 창이나 검보다는, 한 번 터뜨렸을 때의 파괴력이 큰 철퇴가 분명 잘 어울리는 느낌이다.

전북의 '닥공'이 올 시즌 K리그의 블록버스터라면 울산의 '철퇴'는 챔피언십 최고의 히트 상품이다. 다만 승리하는 스타일이 '철퇴'와 같다 해서 울산 자체를 둔탁하기만 한 팀으로 생각한다면 그것은 오해다. 특히 수비에 있어 울산은 적절한 간격을 유지하며 수비 블록을 형성하는 속도가 빠르다. 경험과 노련미, 평균적인 기본기의 측면에서도 울산은 좋은 팀이다. 이는 상대의 압박에 직면하는 상황에서도 당황하지 않고 볼 소유권을 지켜내는 장면들에서 두드러진다. 사실상 이것들은 모두 훌륭한 '철퇴'를 휘두르기 위한 전제 조건과도 같다.

말이 나온 김에, 챔피언십에서 개별적인 선수들의 활약 또한 흠잡을 데 없었다. 언제나 꾸준한 살림꾼인 유틸리티 플레이어 에스티벤은 유로 2008의 마르코스 세나를 연상케 하는 팔방미인 활약을 펼쳐 보였다. 폭 넓은 활동량의 김신욱(이전부터 원톱의 뒤를 받치는 미드필드 포지션도 종종 소화해왔다)의 발 솜씨는 계속 향상되고 있다. 설기현의 크로스는 여전히 그 어떤 후배들보다 위력이 있으며, 김영광의 민첩한 선방 또한 훌륭했다.
어떤 축구팀이 브랜드를 지니는 것은 충분히 가치 있는 일이다. 세계로 눈을 놀릴 경우 작금의 가장 극명한 사례는 역시 바르셀로나의 '티키타카(tiki-taka)' 브랜드다. 짧은 패스와 부단한 움직임의 반복 속에 볼 점유를 지속하는 이 브랜드는 80년대 후반에서 90년대 중반까지 요한 크라이프가 바르셀로나 지휘봉을 잡으면서 클럽에 뿌리를 내리게 된다. 물론 크라이프 이후의 바르셀로나가 언제나 한결같이 최고 수준의 티키타카를 구사해왔던 것은 아니지만, 바르셀로나의 '티키타카 DNA'는 적절한 조건이 충족되기만 하면 언제든 최고도로 발현되도록 프로그램된 것이나 다름이 없다.

바르셀로나가 너무 높은 곳에 위치하는 사례로 여겨진다면, 이에 대비되는 평범한(?) 클럽의 예는 역시 스토크 시티다. 먼 옛날 잉글랜드 축구사의 테크니션 스탠리 매튜스를 배출한 클럽이기는 하지만 지금의 스토크에게 떠오르는 이미지는 '공중전 축구‘, '거한 축구', '몸싸움 축구', 그리고 특별히 '롱 드로인'과 같은 것들이다. 이미 이것들은 스토크의 브랜드로서 자리 잡았고 스토크를 상대하는 팀들은 이에 진저리를 칠 정도다. 유로파리그에서 스토크에 패한 하주크 스플리트 감독 크라시미르 발라코프(옛 불가리아 스타)가 경기 후 "이것은 올바른 축구라 생각되지 않는다"고 했을 정도이니 말 다했다. 선수 시절 장신이 많은 분데스리가에서 오랜 시간을 보낸 발라코프에게도 로리 델랍의 던지기와 같은 무기는 도대체 낯선 것이었음에 틀림없다.

한 마디로 스토크는 "축구의 신이 그라운드 뿐 아니라 그라운드 위의 공중도 허락했음"을 몸으로 보여주는 클럽이다. 그리고 사실상 스토크의 경기는 바르셀로나의 경기와는 또 다른 유형의 흥미로움을 제공한다. 리오넬 메시와 사비 에르난데스, 안드레스 이니에스타가 오늘은 어떤 방식의 절묘한 골을 합작할 것인가에 관심이 모아지는 것과는 또 다른 의미에서, 로리 델랍과 스토크의 장신 군단이 오늘은 어떤 방식으로 상대를 어이없게 만들 것인가가 은근한 흥미를 자아내곤 한다. 반대로 상대 팀이 스토크에 대응하는 방식, 스토크를 요리하는 방식 또한 관심거리가 아닐 수 없다(언제나 만만치는 않더라도 현실적으로 스토크는 이기는 경기보다는 지는 경기가 좀 더 많은 팀이다).

상품 일반의 원리가 그러하듯 브랜드 구축은 분명 손님들을 더 많이 끌어오는 효과가 있다. 특히 브랜드와 브랜드가 충돌하는 경우라면 그것은 관심과 흥미를 유발시키는 데에 안성맞춤이다. 뿐만 아니라 적절한 전술, 플랜과 결부된 브랜드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 잘 하는 것 한 가지를 끈질기게 파고드는 팀이라면 적어도 기본 이상의 성적을 낼 공산이 큰 까닭이다.

전북의 '닥공' 선풍에 이은 울산의 챔피언십 활약이 더 많은 K리그 클럽들의 특성적 브랜드 형성을 촉발하는 계기로서 작동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다양한 브랜드들이 혼재할수록 흥밋거리도 연구거리도 더 늘어난다. 아, 물론 '침대'와 같은 브랜드는 사절이다.


한준희 KBS 축구해설위원·아주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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