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과 허구를 뒤섞어 한 줄기로 엮어내는 이런 특성 때문에 역사 드라마는 종종 논란의 대상이 된다. 보는 사람에 따라 방점을 찍는 위치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역사학자는 '역사'에, 시청자는 '드라마'에 방점을 찍고 바라본다. 그래서 대부분의 '역사 드라마'는 역사학자에게 불편한 느낌을 준다. 역사적 사실보다 드라마의 허구적 재미가 두드러져 보이고, 그러다보면 자칫 역사를 왜곡 및 호도하지 않을까 하는 위기의식마저 느끼게 한다.
최근 방영 중인 '뿌리깊은 나무'는 한글창제를 둘러싼 세종과 신료들의 갈등을, 다양한 극적 장치를 이용해 흥미진진하게 보여주고 있다. 태종으로부터 세종으로 이어지는 '권력이양' 과정, 세종의 '문치(文治)'에 대한 의지, 그리고 한글창제를 둘러싼 갈등을 통해 본 왕권과 신권의 대립 등이 비밀조직 및 집현전 학사 살인사건 등으로 극화되어 재미를 더하고 있다.
세종은 경영학자에게도 상당히 '매력적인 탐구대상'이다. 이 때문에 적지 않은 숫자의 경영학자들이 '세종의 리더십 연구'에 관심과 노력을 기울이고 있기도 하다. 나도 언젠가 세종에 대해 좀 더 탐구해보고 싶은 욕심을 내고 있던 차였다. 그러던 중 드라마를 접하게 되었다. 이 드라마 역시 일부 언론에서 '역사적 사실과 너무 다르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그런데 적어도 내가 보기에 이 드라마는 '큰 줄기에서 역사적 사실을 반영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물론 역사학자가 아니기 때문에 확실하게 주장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온고지신'에 도움을 주는 역사드라마라는 생각이다.
세종은 한글을 반대하는 신하를 내치거나 외면하지 않고 논리적으로 설득하려고 노력했다. 한글에 대한 반대나 우려에 대해 '무조건 내가 옳으니 따르라'는 식의 강압은 하지 않았다. 끈질긴 설득에 결국 신하들이 하나둘 세종에게 굴복하게 되었고 한글은 반포될 수 있었다. 우리는 드라마를 통해 중요한 정책을 성공적으로 실행하기 위해서는 리더의 끈질기고 정성 어린 설득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스럽게 절감한다. 어디 그뿐인가. 한글창제가 당시로서는 얼마나 획기적이며 파격적인 발상이었는지 느낄 수 있게 도와준다. 지금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이며 사용하는 '한글'이 당시에 어떤 의미를 지녔는지 조금이나마 짐작할 수 있게 해준다.
드라마를 통해서라도 현대의 리더들이 온고지신할 수 있다면 참 다행이겠다. 극적 재미를 주려는 디테일, 그 너머에 있는 '역사의 가르침'을 놓치지 말았으면 싶다.
이은형 국민대 경영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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