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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장사 만만세>, 세상에서 가장 묵직한 연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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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장사 만만세> 2부 금 KBS1 밤 11시 40분
불경하다. 1부에서 씨름의 전성기인 80년대를 회고한 <천하장사 만만세>는 2부를 길바닥 위에서 말라 죽어가는 지렁이의 클로즈업으로 시작한다. 향수에 젖어 있던 시청자들의 뒤통수를 내리치기라도 하듯, 한 때 전 국민의 사랑을 받았던 민속씨름이 어떻게 몰락하게 되었는지 담담한 어조로 그리는 2부는 씨름팬들의 상처를 쿡쿡 찌른다. 씨름판의 영웅 이만기를 “천하장사로 박제된 이름”이라 부르고, 왕년의 천하장사 이태현이 K-1에 진출해 “얻어 터지는” 초라한 광경을 보여주는 대목에 이르면 불경함은 극에 달한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그렇기 때문에 <천하장사 만만세>는 씨름에 대한 가장 절절한 러브레터다.

어디서부터 어긋나기 시작한 건지 복기하는 연인들처럼, <천하장사 만만세>는 민속씨름이 쇠퇴한 과정을 통시적 관점으로 짚어낸다. 한 시대의 지배적 콘텐츠는 시대의 한계를 넘어 존재할 수 없고, 개인의 기량을 가리는 종목임에도 팀을 위해 희생할 것을 강요받는 ‘양보씨름’이나, 천하장사 결승전 현장에서 즉흥적으로 계체승을 도입하는 주먹구구식 행정은 사실 8,90년대 한국의 시대적 한계였다. <천하장사 만만세>는 씨름계의 모순과 한계를 손가락질 하는 대신 그것이 시대 전체의 한계임을 암시하며 끌어안고 함께 반성한다. 되풀이하지 않기 위한 오류의 복기. “과거로 사는 삶이란 낡은 것이 아니라 어쩌면 퇴색되지 않는 새로움일지도 모른다”는 내레이션이 과거에 대한 무분별한 긍정으로만 들리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천하장사 만만세>는 왕년의 장사들이 힘차게 들판을 달리는 시퀀스로 끝을 맺는다. 말라비틀어진 지렁이 같은 오늘이지만, 다시 일어나 달릴 내일을 꿈꾸는 이 징후적 엔딩이야말로 제작진이 전하고 싶었던 진심이 아니었을까. 매서운 질책과 반성 끝에 발견한 작은 희망, 우리는 미디어가 한 시대와 그 시대를 풍미했던 스포츠에 대해 표할 수 있는 최고의 경의를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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