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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앤비전]독서까지 경쟁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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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미숙 상명대 국어교육과 교수

최미숙 상명대 국어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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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교육에 관한 두 가지 기억이 있다. 기억 하나. 필자가 초등학생이던 1970년대 초반 '대통령기 쟁탈 전국자유교양대회'라는 것이 있었다. '고전을 읽어 민족정기 높이자'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었던 일종의 독서 경시대회였는데, 담임선생님 추천으로 그 대회에 참여하게 되었다. 평소 책을 즐겨 읽으니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는 부푼 기대를 안고. 하지만 주인공이 어떤 일을 한 것이 언제인지 등을 묻는 단순한 문항 앞에서 그 기대는 처참하게 무너지고 말았다. 더군다나 쪽지에 빼곡하게 쓴 예상 문제가 나왔다고 환호성을 지르는 아이들을 보며 참으로 난감했던 기억이 난다. 당연히 나는 대회에서 탈락했고, 시험에도 나오는 그런 중요한 내용을 왜 기억해내지 못했을까 하는 안타까움과 독서 방법이 잘못된 것 같다는 자괴감 때문에 오랫동안 힘들어 했다.

다른 기억 하나. 70년대 후반 필자가 다니던 중학교에서는 독서 시간을 따로 두고 있었다. 그 시간 후에는 전교생의 책 이동이 파도처럼 이루어지는 신나는 시간이 이어졌다. 반별로 동일한 책을 모든 학생이 읽고 일주일 후 뒷반 같은 번호 학생에게 책을 물려주면서 동시에 또 앞반 학생에게서 새 책을 받는 시간이었다. 앞반에서 새 책을 받으랴 읽은 책을 뒷반으로 넘기랴 부산한 시간이 지나면 우리는 일주일 내내 새 책을 가방 안에 넣고 다니면서 읽곤 했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야한 내용을 서로 알려주며 사춘기 소녀답게 키득거리기도 했고, 등장인물의 악한 행동에 대해서는 같이 성토하기도 했다. 모두 같은 책을 읽었기에 수시로 책에 대해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독서 시간에 이루어진 자유로운 독후감 발표를 통해 다른 친구의 생각을 듣는 것도 즐거운 일이었다. 독후감 잘 쓴 학생을 선정하여 상을 수여하지도 않았고, 오히려 그래서 우리는 친구들의 다양한 생각을 존중하면서 책을 읽을 수 있었다.
약 40년이 지난 지금에도 여전히 학교는 독서 교육을 강조하고 있다. 그런데 최근 이루어지는 독서 교육은 실상 초등학교 시절에 경험했던 독서 교육에서 벗어나지 못한 듯하다. 지엽적인 내용 중심의 독서 퀴즈 문항이 그렇고, 특히 대회용 독서 활동이 주를 이룬다는 점이 그러하다. 독서 포트폴리오 활동도 개인적으로 읽은 책 목록을 기록하거나 독후감을 쓰는 활동으로 그치고 있다. 몇몇 학생의 시상을 전제로 한 독후감 대회, 경쟁 구조를 근간으로 하는 독서 대회는 독서를 통해 이루어지는 개인의 다양한 감상과 창의적인 생각보다는 상을 받는 데 집중하도록 한다. 당연히 수상하지 못한 학생들은 열패감에 휩싸이기 마련이다. 이는 분명 독서의 본질로부터 벗어난 것이다.

필자의 중학교 시절 독서 경험이 행복할 수 있었던 것은 오늘날에 비해 비교적 자유로웠던 독서 교육 프로그램 때문일 것이다. 교육용 도서 목록을 정하고, 학교에서 책을 구입하여 학생들에게 나누어줌으로써 책 구입에 대한 부담 없이 독서가 이루어지도록 했고, 정규 수업으로 독서 시간을 따로 마련하여 생각을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을 제공했으며, 무엇보다도 독서가 경쟁구조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서로 자유롭게 생각을 나눌 수 있는 공간 속에서 이루어지도록 배려했다. 기억에 남는 한국 소설과 세계 명작들은 대부분 중학교 때 읽었고, 그때의 독서 경험은 평생 나의 중요한 정신적 자산이 되었다.

학생이 어떤 독서 경험을 하는지 중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진정한 독서 교육을 위해서는 외부에서 이루어지는 행사용 독서 대회, 다른 사람에게 책을 얼마나 읽었는지 입증하기 위한 독서 포트폴리오, 상급 학교 진학을 위한 스펙용 독서 등을 강조하는 것으로부터 시급히 벗어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의미 있는 독서 경험이며 이를 위해 학교별로 특색 있는 독서교육 프로그램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독서는 교육의 근간이며 무엇보다도 의미 있는 독서를 위해서는 학교의 역할이 지대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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