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5 전문가 혀를 내두르게 하는 해박함
1969년 현대차 부품과장 시작···현장서 쌓은 경험, 품질경영 토대
개발중인 차 직접 시승 "쏠림이 적다" "미세한 잡음" 체크 꼼꼼히

정몽구 회장은 현대·기아차가 글로벌 선두로 도약할 수 있는 길은 품질뿐이라는 판단을 내리고 지난 10년 동안 강력한 품질경영을 실시했다. 정 회장은 "품질은 생산자적 시각의 필요조건이 아니라 소비자적 입장의 충분조건"이라고 역설해 왔다.

정몽구 회장은 현대·기아차가 글로벌 선두로 도약할 수 있는 길은 품질뿐이라는 판단을 내리고 지난 10년 동안 강력한 품질경영을 실시했다. 정 회장은 "품질은 생산자적 시각의 필요조건이 아니라 소비자적 입장의 충분조건"이라고 역설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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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김혜원 기자]베일에 꽁꽁 둘러싸인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과의 첫 독대 자리를 잊지 못하는 임원들이 유독 많다. 긴장한 탓에 후끈 달아오른 얼굴로 정 회장(MK)을 마주하면 이내 분위기는 부드러워진다.


대화도 술술 풀린다. MK는 상대방의 이야기를 즐거운 표정으로 경청하면서도 의외로 수다스럽다. 현대자동차 사외이사로 선임된 직후 정 회장과 면담한 모 교수는 “생각 속의 MK와 현실의 모습은 완전히 딴 판이었다”며 이야기를 나누고 나서 경외하는 마음이 일었다고 회고했다.

MK를 만나면 느끼는 첫 인상은 다름 아닌 '해박(該博)'이다. 세간에 알려진 정 회장의 일반적인 이미지와는 다소 거리감이 있는 단어임에 틀림없다. 양재동 사옥 집무실 바로 옆에 마련된 접견실에는 한 권의 사전이 놓여 있는데 새카맣게 닳고 닳은 손 탄 흔적이 참으로 인상적이다.


이 교수는 “정 회장이 얼마나 박학다식한지 직접 만나보지 않으면 모를 것”이라며 “부단한 자기계발의 흔적이 곳곳에서 묻어났고 특히 자동차에 대해서는 전문가적인 안목을 지니고 있어 놀랐다”고 전했다.

정 회장은 평소 '자동차'를 소재로 거침없이 대화를 이어 간다고 현대차그룹 경영진은 입을 모아 얘기한다. 이야깃거리를 단단히 준비하지 않으면 역공을 맞을 걱정이 들 정도로 자동차에 대한 정 회장의 지식이 깊고 넓다는 것이다.


엔지니어조차도 주눅 들게 하는 MK의 전문가적 식견은 현대·기아차가 오늘날 글로벌 톱5로 성장하는 데 있어 가장 강력한 동기부여가 된 것으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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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척척박사'…엔지니어도 깜짝 놀라

정 회장은 궁금한 것을 참지 못한다. 보고 느끼고 생각하는 족족 질문을 던진다. 현대차그룹 소속의 내로라하는 엔지니어들은 핵심을 콕 짚어내는 정 회장의 지적에 당황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라고 했다. 남양기술연구소의 한 연구원은 “정곡을 찌르는 문제제기는 너무나 예리하고 날카로워 긴장감을 불러 넣는다”고 말했다.


정 회장에 대한 대중의 이미지는 '수많은 자동차 모델명도 못 외울 것 같다'는 등 실제의 모습인 '자동차 박사'와는 거리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정 회장이 자동차만큼은 전문가에 견줄만한 안목을 쌓을 수밖에 없었던 성장 배경을 알면 오해는 간단히 풀린다. 바로 MK의 '밑바닥 근성'이다.


현대차 최고위 경영자는 “정 회장이 공부를 참 많이 한다는 것을 매번 느낀다”며 “실무부터 착실하게 밟아 온 경영 수업을 통해 직접 체득한 덕분”이라고 설명했다.


1969년 미국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정 회장은 현대차 부품과장으로 자동차와의 첫 인연을 맺었다. 현대차 입사는 딱히 의도한 바가 아니었다. 결혼을 했기에 먹여 살릴 처자식이 있었던 때였다. 당시 정 회장은 오늘날 현대차그룹의 오너가 될 것이라곤 생각하지 못했다고 한다.


이후 자재부장, 사업소장을 거쳐 입사 4년 만에 이사로 초고속 승진하면서 임원 반열에 오른 정 회장은 본격적으로 경영 능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1974년 설립된 현대자동차서비스 초대 사장을 맡으면서 그의 인생은 180도 변했다.


최고경영자(CEO)로서 말끔한 정장 차림 대신 늘 점퍼와 군화로 현장을 누비던 정 회장은 매년 매출액을 두 배 이상 키우면서 성장 가도를 달렸다. 이어 현대정공과 현대산업개발, 인천제철을 거치면서 정 회장은 살아 있는 경험을 차곡차곡 쌓았다.


특히 24년여를 함께 했던 현대자동차서비스에서 축적한 그의 경험과 경륜은 훗날 현대차그룹 회장이 되면서 품질 경영의 정신으로 응집됐다. 현대·기아차가 최우선으로 삼을 요소가 '절대 품질'이라는 확신이 태동한 시기였다.


◆'프로 MK'…현장서 해답 찾는 CEO

현대차그룹 연구개발(R&D)의 '본산' 남양종합기술연구소는 매일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다. 시도 때도 없이 출몰하는 정 회장 때문이다. 매월 2~3차례 헬기를 타고 불쑥 나타난다. 기아차 임원은 “오전 경영진 회의 도중 갑자기 연구소에 가고 싶다는 얘기를 하면 바로 출발하는데, 이는 아주 흔한 광경”이라고 했다.


정 회장은 일흔을 훌쩍 넘긴 고령에도 직접 시승을 하면서 개발 중인 차량을 꼼꼼히 체크한다. 최근에는 기아차가 야심차게 준비 중인 박스카 '탐(TAM·프로젝트 명)'을 몰아 보고선 “쏠림이 적다”며 만족감을 표하기도 했다.


쏘나타와 K5 하이브리드에 대해서는 “일본 도요타 하이브리드 차량보다 성능이 더 좋은 것 같다”고 호평을 했는데 출시 이후 두 모델은 예상 외로 판매량이 급증해 주위를 놀라게 했다. 기아차 대형 세단 오피러스를 시장에 내놓을 당시에는 “미세한 잡음이 귀에 거슬린다”는 말 한 마디로 출시가 지연되기도 했다.


정 회장은 이처럼 현장에서 답을 구하는 CEO다. '현장 경영'은 정 회장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꼬리말이 돼 버렸다. 현장을 직접 보고 가슴으로 느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훗날 현대차그룹의 성장 원동력이 됐던 R&D 기능을 통합한 것도 현장에서 힌트를 얻은 결과물이다. 1999년 초 현대·기아차 회장이 된 MK는 전국 각지에 흩어져 있는 연구소를 남양으로 한 데 묶을 것을 지시했다. 정 회장은 그 당시 “현대차 울산과 기아차 소하리연구소 기술력이 더 떨어지는 것 같다. 남양연구소로 힘을 합쳐라. 상대적으로 낙후된 기아차 R&D 수준을 하루 빨리 높여 양사 간 기술 격차를 줄여라”고 주문했다.


배우겠다는 열정만 있으면 든든한 지원도 아끼지 않는다. 현대차 사외이사들은 지난해에 이어 올 들어 전 세계 각지에 있는 해외 공장을 맘껏 둘러보고 공부하고 왔다. “이왕 사외이사를 할 거면 제대로 배우고 싶다”는 한 사외이사의 돌발 발언에 감동한 정 회장이 즉각 지시를 내린 것이다.


현대차의 또 다른 사외이사는 “현장을 직접 보고 나서 현대차그룹이 세계 어떤 기업과 비교했을 때 조직원의 자발적 모티브(동기)가 강하다는 장점을 발견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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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만은 우리 기술로 만들어라”

정 회장이 자동차를 만들 때 가장 관심을 기울이고 직접 챙기는 분야는 심장(엔진)이다. 특히 파워트레인에 대한 원천 기술 확보에 온 열정을 쏟았다. 연구소에서 가장 자주 들르는 곳 중 하나가 파워트레인연구소 건물이다.


정 회장의 주문은 '우리 것만의 파워트레인을 개발하라'였다. 독자적인 엔진 하나 없이 수입에 의존하는 자동차 회사는 엄격히 말해 자동차 제조 도매상에 불과하다는 게 정 회장의 생각이었다.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정 회장은 수시로 엔진 개발 현황을 살피면서 독자 기술력을 확대해 나갈 것을 지시한다”며 “최근 10년 사이 현대차 R&D에서 가장 만족해하는 부문이 바로 파워트레인이고 앞으로도 어마어마한 자금이 엔진 개발에 투입될 것”이라고 전했다.


선친인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 때부터 시작된 엔진에 대한 독자 개발의 꿈은 정 회장의 시대에 와서야 비로소 현실이 됐다. 2000년 국내 최초로 승용차용 디젤엔진을 독자적으로 개발한 것에서부터 터보 GDi엔진까지 해마다 고기능 엔진을 선보이면서 자동차 산업 R&D 역사에 새로운 획을 그었다.


회사 고위 경영진은 “과거 현대차는 차체를 만들어 놓으면 일본 미쓰비시에서 들여온 구형 엔진을 얹어 차를 만드는 방식이었다”면서 “이제는 글로벌 자동차 기업들이 현대차의 엔진 원천 기술을 사가려고 러브콜을 보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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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회장의 다음 목표는 '친환경'과의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이다. 오래 전부터 환경 친화적인 미래 자동차 개발이 중요하다는 점에 주목했던 그는 “친환경차 개발은 단기적 투자 타당성으로 평가할 것이 아닌 브랜드 자산 증대에 가장 중요한 필수 요소”라고 설파해 왔다.


지난 2005년 3월, 40여명의 연구진으로 하이브리드 개발팀을 꾸리고 또 다른 꿈을 현실화하기 위해 첫 단추를 뀄다. 친환경차 부품 국산화와 시장 선도를 위해 정 회장은 오늘도 현장 속으로 뛰어든다.


MK리더십 특별 취재팀(이정일ㆍ채명석ㆍ최일권ㆍ김혜원ㆍ조슬기나 기자) MKlead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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