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련이 말하는 故 정주영 회장
그가 없었다면 88올림픽은···
[아시아경제 이정일 기자] 사진 속 고 정주영 명예회장은 환희에 차 있었다. 카퍼레이드 차량에 우뚝 선채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드는 모습에서는 "마침내 해냈다"는 벅찬 감동이 묻어났다. 정부마저도 회의적이던 '88 서울 올릭픽' 유치를 일궈낸 아산(峨山)의 집념은 빛바랜 사진에서 더욱 생생히 살아났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최근 펴낸 '월간 전경련' 7월호에서 정주영 회장의 지난 삶을 반추했다. 그가 숨이 막힐 듯 팽팽했던 남북 군사대치, 경쟁국 일본에 비해 턱없이 열악했던 국제사회에서의 발언권, 그리고 부족한 시설 인프라 등의 악재를 뚫고 국위 선양에 앞장섰던 것은 당시 전경련 회장으로서 올림픽 유치 위원장이라는 중책을 맡았기 때문이었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2018년 강원도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에 성공한 감동이 긴 여운을 남기는 가운데 정 회장의 88 올림픽 유치에 대해 전경련은 "재계가 앞장서 대한민국 역사에 빛나는 금자탑을 남겼다"고 평가했다.
전경련의 '정주영 시대' 회고는 출범 50주년을 맞아 과거를 반추함으로써 새로운 50년을 맞이하자는 취지로 마련됐다. 전경련측은 "전경련이 도약하는 과정에서 정 회장의 역할이 매우 컸다"며 "그의 발자취를 돌아봄으로써 전경련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많은 교훈을 얻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 회장이 전경련 회장을 맡은 기간은 1977년부터 1987년까지(13~17대)로, 역대 회장 가운데 가장 길다. 그만큼 숱한 격동의 굴곡을 넘겼다. 이병철 초대회장(1961~62년), 이정림, 김용완, 홍재선 회장에 이어 77년 13대 회장에 오른 정 회장은 그해 10월 전경련 회관을 건립해 재계의 오랜 숙원을 풀었다.
카터 행정부가 주한 미군 철수을 추진하면서 한반도가 요동칠 때는 세계 석학들이 참여하는 '동북아 정세 한ㆍ미ㆍ일 회의'를 개최해 위기 극복의 단초도 마련했다. 하지만 1979년 12 12 사태로 전두환ㆍ노태우 군사 정권이 들어서면서 시련은 커졌다.
신군부의 철권 통치에 정 회장은 강력히 저항했고 긴장감은 고조됐다. 정부와의 갈등이 재계에 부담이 될 것이라고 판단한 정 회장은 스스로 물러날 뜻도 내비쳤다. 2차 연임 임기가 끝나는 1981년 2월 정기 총회에서 그는 "더 이상 연임하지 않겠다"고 밝혔지만 "정부의 압력에 물러서면 재계가 똑바로 설 수 없다"는 회원사들의 간곡한 만류에 고집을 꺾었다.
이후 정 회장은 전경련 회장직 3연임을 마치는 1987년까지 6년간 군사 정권과 갈등의 나날을 보냈다. 특히 그는 1987년 2월 은퇴를 앞두고 열린 전경련 임원 회의에서 "앞으로도 정부의 이러한(재계를 힘으로 굴복시키려는) 자세에서 굴복해서는 안된다"고 주문했다.
전경련의 이번 정주영 평가에 대해 한 재계 관계자는 "과거에 비해 전경련이 정부에 일방적으로 끌려가지는 않지만 아직도 입김에 좌우되는 것은 사실"이라며 "평창 올림픽 유치로 재계의 역할이 부각된 이 시점에 정치와 재계의 건전한 협력관계를 역설한 정 회장의 철학을 되새겨봐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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