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이 같은 '계보도'를 액면 그대로 믿기에는 적지 않은 문제가 있다. 우선 계보도에 등장하는 인물이나 이들의 역할, 중요도가 뇌물전달 창구 역할을 맡은 '브로커'들의 입에 의해 상당 부분 좌우된다는 것이다. 문제의 브로커가 자신에게 도움이 될 만한 사람에 대해서는 입을 닫거나 역할을 가볍게 해주고 자신에게 서운하게 한 사람에 대해서는 관련성을 과장하거나 위증한다 하더라도 검찰이나 언론이 이를 확인할 방법이 사실상 없다. 심지어 자신이 전달하기로 한 돈을 다른 데로 빼돌리는 배달사고를 내고서도 당사자에게 전달했다고 우기면 그걸로 끝이다. 뇌물사건의 특성상 돈을 전달했다는 '정황'만 있을 뿐 실제로 돈이 오갔는지 '사실입증'이 어렵기 때문이다.
브로커들의 공통점은 불법적 로비의 시장수요의 특징을 잘 파악하며 겉으로는 그럴듯한 직함과 명함을 가지고 있고 인맥과 학맥을 잘 연결해 불법자금 전달 창구 역할을 자임한다는 점이다. 우리나라에는 로비를 합법화할 수 있는 법이 없고 로비스트라는 합법적인 직업도 없기 때문에 브로커는 그 자체로 불법일 수밖에 없다. 로비를 원하는 '시장수요'는 엄존하는데도 로비를 원천적으로 막아버리니까 당연히 음습한 로비의 암시장이 발생하고 불법 브로커만 우후죽순으로 생겨난다.
언제까지나 이 같은 불법 브로커가 활개를 치도록 내버려 둘 것인가. 차제에 미국처럼 로비를 합법화하고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법론을 고민해 보면 어떨까. 합법적 로비스트는 일정한 자격을 갖추고 직업윤리를 갖춘 사람이다. 로비의 내용도 공론의 장에 오르게 돼 일반 사람들이 쟁점을 잘 알 수 있게 된다. 로비스트 등록을 받을 때 자격기준을 까다롭게 해서 자신의 평판을 중요시할 만한 사람으로 제한하는 것도 부작용을 줄일 수 있는 방법 가운데 하나다. 로비스트가 합법화되더라도 불법 브로커들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그 부작용을 현저히 줄일 수는 있을 것이다.
홍은주 한양사이버대 실버산업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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