록 피아노의 전설, 벤 폴즈와의 황홀한 두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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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태상준 기자] 록밴드 세션에 ‘건반’이 있는 경우는 수없이 많다. 하지만 그 중 대부분의 건반은 키보드다. 기계의 힘으로 음의 변주를 가능케 하는 악기. 하지만 피아노의 경우는 다르다. 대개 피아노로 록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선율을 다루는 데 능숙한 피아노는 발라드나 재즈, 블루스, 정확하게는 고전음악에 더 어울리는 악기 같고, 비트와 리듬, 템포의 적절한 배치가 훨씬 더 많이 필요한 록에는 기타와 베이스, 드럼이 가장 중요한 악기 같다. 그러나 벤 폴즈 파이브의 앨범을 듣게 되면 그 선입견은 부서져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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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 폴즈는 1970년대 중반, 목수였던 아버지가 일당 대신 받아온 낡은 피아노를 처음 치기 시작했다. 그는 엘튼 존과 빌리 조엘 노래를 ‘줄창’ 반복해 들으며 스스로 음악 문법을 터득했으며, 엘튼 존을 연상시키는 유려한 대중적 멜로디를 작곡하는 능력에 더해 곡의 전반적 기조를 피아노가 조율할 수 있는 자신만의 테크닉을 완성했다. 1994년 밴드 벤 폴즈 파이브를 처음 결성한 벤 폴즈는 작곡 뿐 아니라 작사에도 참여, 20대 청춘들이 직면하는 절망과 멜랑콜리, 자기 모멸, 냉소 어린 유머 감각을 유려하게 풀어냈다. 벤 폴즈 파이브는 ‘유약한 소년들을 위한 펑크 록 밴드’거나, 혹은 두꺼운 안경을 쓴 채 피아노 앞에서 무아지경으로 빠져드는 듯한 모습이 안겨주는 이미지 때문에 ‘너드(Nerd)들을 위한 록밴드’라는 찬사를 받기 시작했다. 어쩌면 이런 설명이 편견을 강화시킬수도 있다. 무엇보다, 벤 폴즈 파이브는 더없이 아름다운 음악을 들려주기 때문이다.

2001년 솔로 출발을 선언한 뒤 동료 뮤지션들 존 메이어, 조시 그로반, 루퍼스 웨인라이트 그리고 영화 ‘어바웃 어 보이’로 유명한 영국 작가 닉 혼비와의 협업 등으로 왕성한 활동을 펼쳐왔던 벤 폴즈가 처음 한국에 왔다. 지난 6월 9일 광장동 악스홀은 입추의 여지가 없었다. 벤 폴즈 파이브 시절부터 근 15년 동안 최근의 솔로 프로젝트까지 전부 찾아 들으며 벤 폴즈의 음악을 연모해온 팬들에겐 너무 오랜 기다림이었다. 대규모 뮤직 페스티벌에 울려 퍼지는 ‘떼창’까진 아니지만, 이들은 벤 폴즈가가 다음 곡으로 넘어갈 때마다 그 제목을 연호하고 가사를 조용히 따라부르거나 눈을 감고 황홀한 표정으로 음미했다. 벤 폴즈 파이브를 세계적으로 알린 대표곡 ‘브릭 Brick’을 부드럽게 연주할 때, 가사가 내포한 냉엄한 고독과는 상관없이 팬들은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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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 위의 벤 폴즈는 앨범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리드미컬하고 격렬했다. 그는 피아노를 드럼처럼 난타했고, 혹은 프렌치 호른의 선율에 가볍게 올라탈 만큼 부드럽게 어루만졌다. 공연 내내 피아노 앞의 의자에 거의 앉지 않은 채, 엉거주춤하게 선 자세로 그는 피아노를 지배했다. 그리고 그 피아노가 모든 악기 위에 군림하며 무대를 장악했다. 처음으로 피아노 앞을 벗어났을 때는 세션맨들이 모두 일렬로 서서 일본에서 구입한 장난감 악기에 아이폰 베이스 어플리케이션까지 겸하여 최신 히트곡 ‘프럼 어보브 From Above’를 공연했을 때였다. 팬들은 그 답례로 정성스레 준비한 프리스비, 벤 폴즈 인형, 티셔츠를 흔들어대며 벤 폴즈의 주의를 끌었고, 공연 클라이맥스에 접어들었을 무렵엔 무대 왼쪽편 관객석으로부터 종이비행기가 날아올랐다. 피아노를 치던 벤 폴즈의 눈이 휘둥그래졌고, 입가엔 큰 미소가 걸렸다.

집에 돌아와 벤 폴즈의 앨범을 다시 들었다. 여전히 아름답지만 이제는 앨범이 심심하게 들린다. 무대 위에서의 벤 폴즈는 앨범보다 스물 여섯 배 정도 더 신나고 경쾌하고 즐거웠다.


글_김용언(씨네21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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