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랏빚은 뒷전..도넘은 곳간털기
[아시아경제 이경호 기자] 무상복지,무상교육에 이어 반값등록금 논란까지 정치권의 곳간털기가 도(度)를 넘었다. 혈세를 축내 나라살림이 거덜나는 것이 뻔한 데도 여야 할것없이 자고 나면 표퓰리즘(대중영합주의)대책을 내놓고 있다. 반값등록금이 대학생들의 촛불집회와 잇단 동맹휴업을 통해 제 2의 촛불시위로 번지자 당정청은 이르면 이번주에 대책을 내놓을 것으로 보인다.
임태희 대통령실장, 백용호 정책실장, 이주호 교육과학기술부 장관, 황우여 한나라당 원내대표, 이주영 한나라당 정책위의장 등 당정청은 8일 밤 시내모처에서 모임을 갖고 반등록금 부담완화와 대학경쟁력 제고를 위한 구체적인 방안을 곧 발표하기로 의견을 모았다고 한다.
1월만해도 여야 모두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현안이었으나 4.27 재보선과 대학생들의 시위로 급물살을 탔다. 민심과 여론이 들끓자 민주당 등 야당이 학생들의 주장에 맞장구를 치고 시위 속으로 뛰어들었다. 여당인 한나라당은 황우여 원대대표가 협의도 없이 5월 22일 반값등록금을 추진하겠다고 했고 내부 논란이 커지자 등록금 부담완화·인하방안이라는 간판만 바꿔달았다.
최대 6∼7조원이 소요되는 반값에 필요한 재원을 어떻게 마련하고 세입과 세수, 교육재정에 미치는 영향이 어떨지는 뒷전이다. 여당은 물론 민주당내 일부의원들조차 "앞뒤재지 않고 표심에만 너무 휘둘린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2009년 현재 전국에 205개 대학이 있고 총선과 대선의 유권자인 대학 재학생은 203만명에 이른다. 10년전에비해 25%이상 증가했다. 단순계산해 4인가구로 치면 1000만명에 이른다.한나라당 이경재 의원은 "민주당 손학규 대표가 6조 원에 이르는 재정문제를 거론하지 않았다"면서 포퓰리즘 정책에 경쟁적으로 나서는 것이라고 비판하고 "한나라당의 등록금 대책도 재정 문제를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곳간에서 인심난다지만 재정 건전성은 이미 나빠질대로 나빠졌다. 2010년 중앙ㆍ지방정부의 채무를 합친 국가채무는 373조8000억원에 이른다. 5년전에 비해 50%가 증가했다. 공기업부채도 272조원에 이른다. 올해까지 재정건전성을 강화하겠다는 정부는 내년에는 균형재정의 기틀을 확립하겠다면서 필요한 곳에는 집중해 쓰고 그렇지 않으면 지출을 줄이기로 했다.그러나 이번 의원입법 형태로 발의된 법률안 9486건 가운데 예산이나 세제 지원이 필요한 2780건의 법률이 통과될 경우 필요한 재정은 800조원이다. 연간 국내총생산(GDP)의 75%에 해당된다.
국가재정을 책임지고 있는 곳간지기들의 고심도 깊어지고 있다. 윤증현 전 기획재정부 장관은 떠나는 자리에서까지 "최근 유행처럼 번져나가는 무상(無償)'이라는 주술(呪術)에 맞서달라"고 했다.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은 "우후죽순의 복지 포퓰리즘에 맞서 레오니다스가 이끌던 300명의 최정예 전사처럼 테레모필레 협곡을 굳건히 지켜야 한다"고 했다. 임종룡 재정부 1차관은 "우후죽순처럼 불어닥치는 포퓰리즘 바람에 나라 곳간은 물론, 애써 경작해 온 복지 기반조차 쓰러질 수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대학구조조정이나 기여입학제와 같은 난제(難題)를 풀지 않고 등록금의 인위적 인하만을 가져올 경우 재정건전성 훼손은 물론 '80%에 이르는 대학진학률 증가→부실대학 양산→ 대졸 미취업자 증가→고용부진→가계·소비위축→경제동력 저하→재정투입'의 악순환을 우려한다.
공병호 공병호경영연구소장은 최근 한국경제연구원 기고문에서 "자기 학비를 익명의 납세자나 미래 세대가 지불토록 하는 것은 그들의 재산 중의 일부를 가져가는 것이며 그렇지 않으면 익명의 다수 미래 세대에게 부담을 지우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공 소장은 "2011년의 대한민국은 점심은 내가 먹고 비용은 남들이 지불케 하는 방향으로 자꾸 나아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했다.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