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생태계 바꿔라]④'넘어진 벤처', 그속에 잡스가 있을지 모른다
초기투자, 대부분 대표이사 대출금으로 충당
'연대보증' 시름..벤처부활제 혜택 6년간 3곳뿐
[아시아경제 이승종 기자] 지중해의 라이벌, 로마와 카르타고는 패자에 대한 문화가 달랐다. 로마는 장군이 전투에 져도 다시 기회를 줬다. 실패도 경험이라고 본 것이다. 카르타고는 달랐다. 한 번
◆한 번 실패는 '사망선고'=벤처를 한다-실패한다-재도전한다. 이 간단한 과정 중 우리나라는 첫 단계부터 문제가 있다. 벤처 대표에게 지나치게 과중한 책임을 연계시켜, 한 번 실패하면 다시 일어설 수 없게끔 만들어 놓은 것이다. 업계서 사업 실패가 곧 '인생 실패'로 해석되는 이유다.
엔젤(초기투자자)의 부재로 자금을 융통할 길이 없는 초기 벤처는 대부분 사비나 금융기관 융자를 통해 자금을 마련한다. 문제는 금융기관이 벤처 대표에게 연대보증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대부분 벤처가 유한책임회사(LLC)인 까닭에 회사 손실에 대한 대표의 책임은 유한한 게 원칙이지만, 무한책임을 강요받는 셈이다. 한 벤처 대표는 "사실상 법과 현실이 충돌하는 셈"이라며 "외국 업체 대표들에게 아무리 설명해 줘도 이해하지 못하더라"고 말했다.
연대보증에 묶인 벤처 대표는 사업에 실패할 시 적게는 수억원에서 많게는 수백억원까지 채무를 지게 된다. 신용불량의 늪에 빠져드는 것이다. 한 번 벤처에 실패하면 재기에 성공하기 쉽지 않은 이유다. 이런 모습은 고스란히 예비 벤처인에게 악영향을 미친다. 벤처에 대한 이미지는 나빠진다. 악순환이다.
이민화 카이스트 교수는 "재도전이 한국에서 안되는 이유는 창업시 돈을 빌리기 때문"이라며 "벤처 초기에는 융자가 아니라 투자로 가는 게 원칙이다"고 강조했다.
그동안 전문가들은 연대보증제 폐지 등 실패 벤처인들의 부담을 완화해줄 것을 정부에 요구해 왔다. 대표적 벤처기업가인 안철수 카이스트 교수는 연대보증제를 두고 "벤처기업을 좀비로 만드는 정책"이라며 비판했다. 연대보증 때문에 대표이사가 적당한 때 사업을 접지 못하고 회사 목숨을 이어간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연대보증제가 가장 큰 문제"라며 "단기적으로는 연대보증제의 개선과 융자 건전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유명무실한 '패자부활제'=제 역할을 못하는 벤처기업경영재기지원제도(벤처패자부활제)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높다. 정부는 실패한 벤처에게 재도전 기회를 주자는 의미에서 지난 2005년 일명 패자부활제를 실시했다. 벤처기업협회가 심사를 맡고 기술보증기금이 재도전 자금을 지원하는 식이다. 문제는 지난 6년간 이 제도를 통해 구원된 기업이 3개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총 지원자금은 5억원이다. 백필규 중소기업연구원 연구원은 "6년간 3개라면 제도가 없는 거나 다름 없다"며 "벤처 패자부활에 대한 필요성은 인식되는데 잘 돌아가지 않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업계는 패자부활제의 선정 기준을 지적한다. 기준이 지나치게 엄격해 정작 지원이 필요한 벤처에게 기회가 돌아가지 못한다는 것이다. 한 관계자는 "실패 벤처 중에는 신용불량인 곳이 많은데 이들은 애초 선정 자체가 어렵게끔 돼 있다"며 "넘어진 사람에게 '부축해 줄테니 우선 나에게 걸어오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고 꼬집었다. 지원을 받은 업체들도 문제를 지적하긴 마찬가지다. 패자부활제 지원을 받은 한 업체 대표는 "전체적으로 선정 기준 자체가 불합리한 면이 많다"며 "획기적인 개선이 이뤄지지 않으면 빛 좋은 개살구에 그치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백 연구원은 "실패를 겪은 벤처 중에는 다듬어지지 않은 원석도 많을 것"이라며 "패자부활제는 우리나라 벤처 발전을 위해 꼭 필요한 부분"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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