쏟아지는 변호사들, 흔들리는 변호사 업계
[아시아경제 정준영 기자] "한국시장은 매력적인 곳입니다." 영국 변호사협회를 대표해 안나 프라그 과장이 입을 열었다. 지난 17일 대한변호사협회 주최로 열린 토론회 자리에서다. 그는 "1차 개방이 시작되면 영국 최대 로펌인 클리포드 챈스를 필두로 5개 로펌이 한국에 진출할 것"이라는 선전포고성 발언도 했다. 지난 4일 한-유럽연합( EU) 자유무역협정(FTA)의 비준 동의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기 때문이다. 오는 7월 1차 개방을 필두로 2016년까지 3단계에 걸쳐 개방되는 국내 법률시장이 마침내 글로벌 전쟁터로 변모되는 것이다. 그동안 우물안 개구리에 머물렀던 국내 변호사 업계가 해외 진출 등을 통해 달라질 모습과 함께 국내 법률 소비자들에게 미칠 영향 등을 긴급 진단하는 기획 기사를 2차례에 걸쳐 나눠 싣는다.
<상>변호사 공급과잉..어떤 현상 벌어질까
"수고하셨습니다. 다음 기일에 뵙죠." 사무실로 찾아오는 의뢰인과 상담하며 기일에 맞춰 법정만을 오가던 시절은 지났다. 힘들게 변론을 마친 A변호사. 사무실로 돌아왔지만 같은 방을 사용하는 로스쿨 출신 동료 변호사가 피워댄 담배 연기에 목이 매캐하다. 다가오는 연봉 협상을 생각하면 더 암담하다. 1인 1실에 억대 연봉은 옛 말. 2인 1실은 기본이고 연봉은 동결되면 그나마 다행이다. 억대 초봉으로 주변의 부러움을 샀던 연봉은 이미 지난번 협상에서 2천만원이나 깎여나갔다.
선망의 직종 '변호사'가 맞닥뜨릴 2016년의 풍경이다. 로스쿨 졸업생 배출, 법률시장 개방 등 법조계의 '빅뱅'은 특히 변호사 시장의 판도를 뒤바꿔 버릴 것이란 게 법조계 안팎의 전망이다. 핵심은 변호사 공급 과잉 현상이다. 19일 법조계에 따르면,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1기생이 졸업하는 2012년에 무려 2500여명의 신규 법조인력이 법률시장에 배출된다. 법무부 방침에 따라 로스쿨 입학정원의 75%가 변호사 시험을 통해 자격을 얻게 될 경우, 기존에 치러진 사법시험을 통해 사법연수원을 수료하는 1000여명과 함께 1500여명의 로스쿨생이 법률시장에 공급된다. 올해 4월 현재 대한변호사협회에 등록된 변호사는 1만2478명으로 기존 인력 대비 20%에 달하는 신규인력이 한번에 쏟아져 나오는 셈이다.
◆고소득 전문직은 옛 말, 사무실 유지도 어려워져 = 변호사들의 '팍팍한 생활'이 가장 쉽게 떠올려봄직한 '그림'이다. 대한변호사협회가 2009년 개업 5년차 또는 나이 40세 이하의 청년변호사를 대상으로 소득과 사건수임액 등을 조사한 결과, 이들이 한 해 버는 순소득은 평균 3,778만 원으로 나타났다. 청년변호사층이 전체 변호사의 5분의 1을 차지하고 있고 2년새 법률서비스 수요에 큰 변동이 없는 한, 내년 배출될 2500여명의 신규법조인을 청년층으로 가정하고 단순히 산술적으로만 따지면 40세 이하 청년변호사의 내년 평균 순소득은 1889만원이다. 서울 서초동의 중소법률사무소에서 활동하는 한 변호사는 "사무실 임대료가 보증금 1억원에 월 450만원인데 수임료는 이미 내려갈 대로 내려간 실정"이라면서 "과다경쟁을 통해 이보다 더 소득이 내려간다면 재앙일 것"이라고 전했다. 변호사업계에 따르면 서울지역 변호사의 월평균 수임건수는 4.5건이다. 전체 변호사의 3분의 2가 서울에 몰려있는 것을 감안하면 내년 신규인력이 같은 비율로 분포될 경우 수임건수는 3.7건으로 더욱 내려가게 된다. 변호사들이 병원 응급실을 돌며 명함을 뿌리거나 법원에서 홍보활동을 벌이는 장면을 상상해보게 만드는 대목이다.
◆ 서비스 소외지역ㆍ계층 축소 전망… 수임료 하락도 기대 = 법률서비스 소외지역이나 계층이 줄어들 것이란 긍정적인 전망도 나온다. 지난해 대한변협이 발간한 '한국 변호사 백서 2010'에 따르면 변호사가 단 한명도 없는 이른바 '무변촌(無辯村)' 시ㆍ군ㆍ구는 무려 83곳에 달한다. 전화상담 이상의 법률서비스를 이용하려면 인근 지역으로 몸소 찾아가야만 했던 법률서비스 소외지역의 주민들은 법조인력 공급확대를 오히려 반길지도 모른다. 법무법인 바른의 한 변호사는 "한 중견로펌이 경남 공업지역 쪽에 지사를 마련해 지방시장을 개척하려 한다는 얘기도 들린다"면서 "변호사들 입장에선 시장이 작아지는 것이기 때문에 활동무대를 재경지역과 지방으로 분류할 수만은 없는 상황"이라고 귀띔했다.
대기업들 역시 선택의 여지가 커지면서 법조계에 형성된 '법률자문 네트워크'가 한 차례 지각변동을 맞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법률시장 개방 때문이다. 영국 등 유럽 굴지의 로펌들이 들이닥치면 대기업들의 눈도 그 쪽으로 향하게 될 공산이 크다는 얘기다. 국내 굴지의 건설업체 법무파트 관계자는 "유럽 로펌들이 시장 점유율을 높이기 위해 진입 초반에 '무료 자문' 등 무척 파격적인 이벤트를 선보일 것이란 소문이 벌써부터 돌고 있다"면서 "사실 대기업이 로펌을 필요로 하는 건 주로 해외 영업이나 대규모 M&A 때문인데, 이 부분에서 유럽 선진 로펌들의 역량을 무시하긴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고등법원 부장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변호사 업계에서도 수임료 정찰제 같은 가격 체계화의 과정이 진행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 무리한 경쟁으로 인한 법률서비스의 질 하락 우려 = 경쟁을 통한 가격인하로 법률서비스 수혜층의 확대가 점쳐짐에도 불구하고 마냥 반길 수만은 없다는 견해도 있다. 사법연수원 교수 출신의 한 변호사는 "법학을 전공하고 기업에서 법무팀원으로 일하는 사람조차 소송의 당사자를 혼동하거나 재판정에서 지켜야할 기본적인 규정조차 모르는 경우가 있다"며 로스쿨을 통해 대량으로 배출될 인력들이 3년의 교육만으로 실정법 체계에 대한 이해를 쌓고 나오리라 보기는 어렵다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 하경효 고려대 로스쿨 학장은 법률시장의 수요가 늘어나는 공급을 전부 수용하기란 힘들 것으로 전제하면서도 "많은 기회비용을 감내하고 배출되는 고급인력들에 대해 공공기관, 일반 기업들이 송무 외의 계약체결, 제도설계단계부터 법률자문 영역을 확대하고, 법조인들 또한 국민 전반의 법률서비스 질 향상을 위해 과거만 못한 예우를 감내하는 사회적 공감대와 기반 조성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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