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신범수 기자]대형병원은 경증환자들에 대한 문턱을 높이고 동네의원은 주치의제도를 실시해 만성질환자 관리에 집중하게 된다. 각자의 역할에 충실한 의료기관은 인센티브를 받게 되는 반면, 경증환자가 대형병원을 찾을 때는 지금보다 많은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보건복지부는 각 의료기관의 역할을 명확히 규정하는 내용 등을 담은 '의료기관 기능 재정립 기본계획'을 만들어 17일 발표했다. 이를 통해 의료자원의 낭비를 줄이고 건강보험 재정도 건실화 하겠다는 취지다.

'간단한 질병은 동네병원이, 대형병원은 연구와 중증질환 치료에 집중토록 한다'는 게 기본 골격이다. 병원 크기에 따른 고유한 역할은 이미 정해져 있지만 강제성이 약해 유명무실한 측면이 있다는 판단에서다.


진수희 보건복지부 장관은 "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해 적정한 비용으로 보다 나은 의료서비스를 제공하자는 게 기본 목표"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의원 즉 동네병원은 경증 외래환자에 대한 포괄적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며, 소위 '주치의 제도(선택의원제)'를 실시해 만성질환 관리에 집중토록 한다. 병원급 의료기관은 입원환자 중심 혹은 전문병원화를 통해 경쟁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역할이 정해졌다. 대형병원은 중증질환에 대한 진료와 교육 및 연구기능을 강화해 세계적 경쟁력을 갖춘 병원으로 육성한다는 것이 정부의 목표다.


다만 계획은 큰 그림에서의 방향만을 규정할 뿐, 구체적 인센티브 내용 및 비용 인상폭, 경증질환의 범위 등은 향후 소비자, 공급자 등이 참여하는 논의기구를 통해 2012년 말까지 순차적으로 정한다는 방침이다.


진 장관은 "지속가능한 보건의료체계를 구축하기 위한 기본방향에서 국민들과 관련 단체의 종합적인 이해와 협조를 당부한다"고 말했다.


◆대형병원은 비싸게, 동네병원은 싸게


정부가 구상하는 선택의원제는 감기 등 경증질환과 고혈압 등 만성질환을 꾸준히 관리해주는 '주치의' 개념이다. 선택의원제에 참여하는 병원은 안정적인 환자 수급이 가능해지고, 서비스 질을 올리면 인센티브를 받게 된다. 선택의원은 여타 병원보다 진료비를 싸게 책정해 환자들이 굳이 대형병원을 찾을 이유를 없애겠다는 게 정부의 생각이다.


복지부에 따르면 상급종합병원 외래 진료건수 중 의원급에서도 진료가 가능한 경증질환은 2009년 32.5%에 달했다. 이를 동네병원으로 흡수시켜 건강보험료의 낭비를 막고, 중증환자가 대형병원에서 원활히 치료받을 수 있게 하겠다는 것이다.


아울러 가벼운 질환으로 대형병원을 찾는 환자에겐 약제비 등 비용부담을 늘려 진입장벽을 높이기로 했다. 현재 논의되고 있는 경증질환의 종류로는 감기, 급성편도염, 본태성 고혈압 등 16개 정도다. 정확한 경증질환의 분류와 약제비 인상폭은 소비자, 공급자 등이 참여하는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에서 정하기로 했다.


◆의료의 질 상승 없이 비용만 증가 우려도


향후 구체적 논의가 진행되면서 실효성에 대한 논란도 예상된다. 우선 건강보험 재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환자에게 부담을 전가시킨다는 비판이 대표적이다.


한국환자단체연합회는 "동네 의원의 의료서비스 질적 개선이 없는 한 환자들은 여전히 대형병원을 찾을 것"이라며 "대학병원의 환자 쏠림 현상은 해소되지 않으면서 환자의 부담만 늘어나는 결과가 뻔해 보인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복지부의 입장은 분명하다. 배출되는 의사의 90%가 전문의인 상황에서 동네병원의 의료수준이 결코 낮지 않다는 게 반박 논리다. 복지부 관계자는 "선택의원에 대한 지속적인 서비스 질 관리를 통해서도 이런 우려를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지난 몇 년간 정부가 대형병원 본인부담률을 지속적으로 올려왔음에도, 대형병원 쏠림 현상이 눈에 띄게 개선되지 못했다는 점 등을 감안할 때 제도의 실효성을 둘러싼 논쟁은 불가피한 상황이다.


◆부실한 병상관리, 의료인력 수급 문제도 개선


이번 계획에는 의료인력, 병상, 장비 등 자원의 효율적인 수급과 품질을 제고하는 포괄적 방안도 포함됐다. 병원 간 역할이 뒤섞이면서 큰 병원과 작은 병원이 환자를 놓고 경쟁하는 구도는 바람직하지 않다는 판단에서다.


병원들의 무분별한 병상 늘이기를 막고, 효율적인 사용을 권장하기 위해 시도별, 종별 병상 수급평가를 의료기관 개설허가와 연계하기로 했다. 고가 장비에 대한 품질검사 강화로 노후ㆍ부적합 장비를 퇴출하는 '의료자원 관리체계 선진화' 계획도 포함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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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부 관계자는 "올 해 말까지 체계적인 병상수급관리시스템을 도입하고, 장비 관리를 통해 수가를 차등화 함으로써 건강보험 재정의 낭비를 막고 국민들의 경제적 부담을 경감시키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복지부는 이 같은 내용을 18일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에 상정해 심의 의결을 받아 본격적으로 제도 개선을 추진할 예정이다.


신범수 기자 ans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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