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사회=?' 정재승 교수는 무엇을 만들어낼까
[아시아경제 성정은 기자] 신경과학자들이 건축을 논한다? '도대체 신경과학자들이 왜 건축을 얘기할까' 싶을 때쯤 그의 얘기가 이어진다.
"혹시 천장높이가 높아지면 창의력도 높아진다는 말 들어보셨나요? 실제로 신경과학자와 건축학자들이 모여 실험을 했는데요, 단순연산을 할 때는 천장이 낮은 데서 더 좋은 결과가 나온 반면 창의력을 요구하는 문제는 천장의 높이가 높을 때 더 좋은 결과가 나왔다고 합니다. 신경과학자와 건축학자 반반으로 구성된 '건축을 위한 신경과학자들의 모임'은 이처럼 건축물이 사람들의 인지과정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했습니다."
그는 정재승 카이스트(KAIST) 교수다. 한국교육학술정보원(원장 천세영)이 명사특강을 위해 여론 조사를 했는데 사람들이 가장 듣고싶어하는 강사 1순위로 뽑혀 18일 열린 강연에 초청연사로 나섰다. KERIS홀에서 열린 이날 특강의 주제는 'NeuroRevolution'이다. 굳이 우리말로 번역하자면 '뇌혁명'이다.
카이스트 바이오 및 뇌공학과 부교수인 정 교수는 '과학콘서트', '크로스' 등의 책을 펴낸 대중적 과학 저술가로도 유명하다. 2009년에 열린 다보스포럼에서는 '차세대 글로벌 리더'로 선정되기도 했다.
이어지는 강의에서 그는 "신경과학과 건축, 이렇게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분야들이 서로 합쳐져 어떻게 사회를 변화시키는지 보여주는 데 오늘 강의의 의미가 있다"고 했다. 정 교수는 "사람의 행동을 결정하는 '뇌'를 연구하는 게 신경과학이므로 이 신경과학의 연구 내용을 잘 활용하면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다"고 힘주어 강조했다. 다만 사회를 제대로 변화시키려면 신경과학 연구 결과에 대해 과학자, 예술가, 시민 등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논의를 하는 자리가 필요하다. 이것이 과학과 사회의 만남, 바로 '크로스'라는 것이다.
그가 가르치는 뇌공학 분야의 연구 대상은 '뇌'다. 그는 우리 뇌에서 일어나는 작용을 이성과 욕망의 상호작용이라고 간단하게 정의했다. "사람들이 하는 모든 행동은 이성과 욕망 사이의 줄다리기 결과입니다. 40대 여성에게 샤넬 가방을 보여줬을 때의 뇌 사진과 마약환자에게 코카인을 보여줄 때의 뇌 사진을 구분하기가 불가능하다면 믿으시겠어요? 두 경우의 뇌 사진 모두 다 '욕망'이라는 이름의 중추가 똑같이 활성화 돼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또 다른 뇌사진 몇 장을 보여주며 그가 말을 이었다. "사람들 뇌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살피면 그 사람이 지금 눈앞에 둔 물건을 살지 안살지도 알 수가 있습니다. 어떤 물건을 보여줬을 때 욕망을 관장하는 중추가 눈에 띄게 활성화되는 사람은 이미 머릿속에서 설득이 끝난 사람입니다. 욕망이 이성을 설득해 이미 구매를 하기로 맘을 먹은 것이죠."
뇌를 들여다보고 인간의 행동을 예측하는 이런 활동은 이미 ' Neuro Marketing'이라고 하여 구미 선진국에서는 가장 유망한 학문 분야로 자리잡은 지 오래다. 코카콜라 본사는 구매 상황에서의 인간 두뇌활동 연구에 해마다 1억달러 이상을 쏟아붓고 있다.
뇌공학의 연구 대상에 대해 설명을 하던 그는 우리 뇌가 작용하는 과정을 연구하는 게 사회에서 어떻게 활용될 수 있는지에 관한 얘기로 화제를 바꿨다. "자동차 K7의 이름이 어떻게 나왔는지 아시나요? 사람들한테 알파벳 A부터 Z까지와 숫자 1부터 10까지를 보여주면서 구매욕이 가장 높게 나타난 알파벳과 숫자의 조합을 찾은 게 K7입니다. 욕망의 중추를 자극하는 이름을 찾은 거죠. K7은 결국 4만5000대가 팔리면서 그랜저를 처음으로 이긴 차가 됐습니다."
얘기는 자동차에서 호르몬으로 넘어갔다. "사람한테 옥시토신을 주입하면 그 사람은 갑자기 사회적인 모습을 보이게 됩니다. 실제로 외국에서 이를 이용해 'anti-shyness spray'를 만든 적이 있습니다. 만약 결혼정보 회사가 이 스프레이를 활용한다면 '날씨가 춥네요. 겨울인가봐요'라는 말만 주고받던 회원들이 '35년간 당신을 만나려고 이렇게 기다렸나봐요'와 같은 말을 자연스럽게 하게 돼 결혼에 골인할 확률을 더 높여줄 수가 있는 겁니다."
이 부분에서 사람들이 박장대소를 하자 안경 너머로 보이는 그의 눈가에도 웃음이 넘쳐났다. 웃음을 띠던 눈이 다시 반짝하는 순간, 그는 말을 이어 자신이 발명한 특별한 안경을 소개했다. 안경의 이름은 'my history glasses'다.
안경에 뇌의 움직임을 포착하는 센서를 달아 뇌가 반응을 보이는 시점마다 눈앞에 펼쳐진 모습을 사진으로 찍는다. 안경에 찍힌 사진들은 모두 스마트폰으로 전송이 되게끔 돼있어서 집에 가서 스마트폰을 열어보면 오늘 하루 내가 인상 깊게 봤던 장면들이 그 안에 다 담겨있다.
내가 찍고 싶을 때 사진을 찍는 게 아니라 실제로 내 뇌가 반응하는 시점, 진짜로 내가 반응하는 것만을 찍어내는 데 이 안경의 특성이 있단다. 정 교수는 이 안경을 "본인이 어떤 인간인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물건"이라고 표현했다. 청중들 사이에서 다시 웃음이 터져나왔다.
그는 웃음이 잦아들 때까지 잠시 기다렸다가 다시 말문을 열었다. "과학은 이처럼 인간의 사고와 행동을 연구하는 학문입니다. 과학의 결과물이 세상에 도움이 될 수도 있지만 때로는 굉장히 위험할 수도 있습니다. 공상과학에나 나올 법한 일들이 실험실에서는 이미 벌어지고 있습니다. 과학의 결과물이 세상에 나온 뒤에 이를 판단하려고 하면 이미 때는 늦습니다."
재미있는 사례들을 나열하며 강의 내내 웃음 띤 눈을 하던 그의 표정이 사뭇 진지해 보였다. "이미 부작용이 생긴 뒤에 논의를 하는 건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결과물이 세상에 나오기 전 과학자들이 하고 있는 연구에 대해 과학자, 예술가, 시민 등 다양한 사람이 모여 논의를 할 필요가 있습니다. 해답은 과학과 다른 여러 분야의 만남, '크로스'에 있는 것입니다."
강의 끝 무렵이 되자 정 교수가 강의를 시작할 때 던졌던 얘기가 문득 다시 떠올랐다. 정 교수는 강의 서두에 '건축을 위한 신경과학자들의 모임'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들은 천장높이와 창의력의 관계를 실험하면서 그 동안 건축물이 사람들의 인지과정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한 사례가 단 한 번도 없었다는 걸 알게 됐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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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 신경과학자와 건축학자들이 지금 어디선가 모여 '치매환자를 위한 건물은 어떻게 지어야 환자 인지기능을 향상시킬 수 있나'하는 등의 문제를 논의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정 교수의 말대로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분야가 서로 합쳐져 어떻게 사회를 변화시키는 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자신이 연구하고 또 가르치는 '과학'만을 맹신하지 않고 다양한 분야의 목소리를 함께 듣겠다며 과학과 다른 분야가 함께 하는 곳에서 사회 발전 방안을 찾겠다는 정 교수의 생각이 흥미롭다. 정 교수의 강연에서 얻은 '과학+사회=?'의 답은 '더 나은 사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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