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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명훈칼럼]불의의 사회, 진실의 불편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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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는 결국 승리하고, 진실은 언젠가 드러난다고 흔히들 말한다. 정말 그런가. 우리 사회의 요즘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 선뜻 동의하기 어려워진다. 배트맨이 고담시를 지켜내듯 반드시 악한은 꺼꾸러지고, 정의가 승리하는 것만은 아니다. 죽은 체 하던 악당이 슬며시 일어나 대로를 활보하는 일이 비일 비재하다. 정의의 총탄을 피해가는 사악한 악한도 적지 않다. 그것이 영화와는 다른 현실이다.

열망은 결핍에서 비롯된다. 한국 사회의 때아닌 '정의 신드롬'은 그만큼 불의가 판치기 때문이다. 베스트셀러 '정의란 무엇인가'의 저자 마이클 샌델이 내린 명쾌한 진단이다. 얼마 전 한국을 찾았던 샌델은 그의 책에 쏠리는 한국인들의 뜨거운 관심을 "정의에 대한 배고픔같은 갈증"이라 정의했다. 그는 갈증의 배경을 이렇게 설명했다. "몇 십년 동안 미국과 유럽, 한국 등은 모든 논의의 포커스를 경제성장에 맞춰 왔다. 풍요해질수록 사람들은 도덕적 공허함을 느끼게 됐다."
마이클 샌델의 분석은 날카롭다. 하지만 한국의 현실은 그의 탁월한 상상력에 일격을 가한다. 이미 충분히 풍요해졌고, 사회적 지위까지 얻었지만 차마 탐욕을 떨치지 못하는 사람들이 넘친다. 멀리 갈 것도 없다. 얼마 전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만났고, 외교통상부의 장관 딸 특채에서 다시 목격했다. 보통 사람들이 정의에 목말라 할 때 선택된 사람들은 정의를 배반한 것이다.

그들의 낙마는 정의의 승리인가. 단정은 이르다. 진정한 악당은 숨죽이고 있는지 모른다. 쓰러졌던 불의가 우리의 기억력을 시험하듯 언제 툭툭 털고 일어날지도 알 수 없다.

정의를 바로 세우는 힘은 진실이다. 한 장의 빛바랜 사진이 총리 후보자의 거짓말을 벗겨냈듯이. 그러나 진실은 쉽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진실은 불편하고 때로는 고통스럽기 때문이다.
국회 청문회에서 거짓말이나 위장전입, 쪽방투기가 들통나지 않았다면 그들은 명예를 지키고 임명권자는 체통을 살리고 국민은 상처받지 않았을 것이다. 외교부의 장관 딸 특채 사실이 드러나지 않았다면 유명환 장관이나 외교부가 망신을 당하지 않았을 것이고, 청년 백수들의 분노를 사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좋게 좋게 가기 위해서 진실은 은폐된다. 그렇게 특권과 기득권은 유지되고 '그들만의 세계'를 둘러싼 울타리는 한층 탄탄해진다. 설사 꼬리가 잡힌다 해도 고백이나 참회보다는 '죄송'과 '부덕의 소치'라는 애매한 표현으로 넘어가려 한다.

때문에 진실을 가린 견고한 성을 허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 사회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진실게임이 그 반증이다. 예컨대 내로라하는 집권당 국회의원들과 청와대, 정보기관까지 얽히고설켜서 벌이고 있는 '민간인 불법 사찰'의 진실은 무엇인가.

진실이 코미디처럼 다가올 때도 있다. 한복 차림에 턱수염을 그럴듯하게 기르면 뭔가 전래 비법을 간직한 고수로 보이는 법. 가짜를 진실로 바꾸는 위장술이다. 그런 차림새의 전 국새제작단장이 검찰에 불려가서야 국새 제작의 전통기법을 모른다고 자백했다. 지금도 중요한 국가서류에는 엉터리 비법으로 만든 금빛 국새가 꾹꾹 눌러 찍히고 있을 것이다. 따지고 보면 검찰에 불려가서야 진실을 털어 놓는 게 어디 그 사람뿐이던가.

진실은 용기와 양심의 축척으로 완성된다. 그래서 진실은 불편하고 때로는 상처가 따른다. 그런 고통을 이겨내지 못한다면 '장관 딸' 파문이나 '거짓말 청문회'는 다시 한바탕 소동으로 끝날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된다면 국격도, 공정한 사회도, 선진국 진입도 공허한 구호로 떠돌고 정의에 대한 목마름만이 깊어질 것이다.



박명훈 주필 pmh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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