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품단가 이어 사업영역문제 시급…"사업조정신청제 만으론 부족"
[아시아경제 최대열 기자]지난달 26일 오전 은평구에 있는 한 기업형슈퍼마켓(SSM) 매장 앞. 이틀 후 열릴 재보궐선거에 이 지역 후보로 나선 이재오 의원(28일 선거에서 국회의원 당선)에 대한 낙선운동이 열렸다. 운동을 연 단체는 전국의 소상공인 단체들이 회원으로 있는 전국상인유권자협회였다.
전국 철물점들이 회원으로 있는 한국산업용재공구상협회의 유재근 협회장은 지난달 국무총리, 중소기업청장을 만난 자리에서 "대기업 계열사 소모성자재(MRO)업체들이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일반 회사까지 상대로 영업을 하는 바람에 전국 5만여개 철물점 가운데 절반이 문을 닫을 지경"이라고 말했다.
대기업들의 무분별한 진출을 막아달라는 요청에 김동선 중기청장은 "중소기업고유업종제도가 2007년 부로 폐지되는 바람에 현재는 사업조정신청을 통해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상호조율하며 합의점을 찾고 있다"고 답했다. 유 협회장은 자리가 끝나고 나오며 "사업조정신청제도를 이용하려 했지만 현재 신청 자체도 쉽지 않은 상황"이라며 답답해했다.
1일 중소기업청과 중소기업중앙회에 따르면 지난해 7월 처음으로 SSM에 대해 사업조정신청이 접수된 이후 지난 7월 현재 SSM에 대해서만 총 175건이 신청됐다. 96건이 조정완료됐으며 29건은 반려, 나머지 50건은 현재 조사중이다. 대형마트에 대한 사업조정신청도 12건, 기타업종에 대해서도 27건이 중기중앙회측에 접수된 상태다. 총 접수건수만 215건으로 지난 60년대 이 제도가 도입된 이후 매해 2, 3건 정도만 신청됐던 점을 감안하면 폭발적인 증가세다. 현재로선 대기업의 무분별한 사업확장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방패막이'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소상공인들은 정작 이 제도의 실효성에 대해 불만의 목소리가 높다. 대표적인 사례가 SSM의 편법임점. 송파구에 있는 한 SSM은 사업조정신청 절차가 시작되자 이 제도의 대상이 아닌 가맹점 형식으로 입점을 추진해 주변상인들과 마찰을 빚기도 했다. 이 회사 최고경영자는 최근 한 인터뷰를 통해 "(사업조정신청 대상에서 제외되는)가맹점형 SSM을 지속적으로 추진할 것"이라고 공공연히 밝히고 다녔다.
대구 동구청은 관할 지역에 새로 입점하는 대기업 쇼핑몰이 지역상인들을 자극할 수도 있다고 판단, 건물외부에 사명이 눈에 띄지 않게 하라고 해당업체에 권고하기도 했다. 학생들의 졸업앨범을 만드는 한국사진앨범인쇄협동조합은 최근 보도자료를 통해 "교육과학기술부가 SK와 공조해 'e-졸업앨범사업'을 추진하면서 영세 앨범업자들의 생존권을 박탈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 협회 한윤석 부장은 "기존에 관련 사업을 논의하면서 협회를 통해 관련 통계수치만 알려달라고 하더니 최종 논의과정에서는 영세상인들을 배제해 궁지로 내몰렸다"며 "정부기관이 엮어 있어 사업조정신청제도를 이용하기도 막막한 실정"이라고 말했다.
좀더 강력한 제도적 장치를 주문하는 목소리가 높지만 전문가들은 "쉽지 않다"고 입을 모은다. 송장중 중소기업연구원은 "중소상공인들은 이전 고유업종제도와 같이 대기업이 원천적으로 진출하지 못하도록 강력한 제재장치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면서도 "시장원리에 반하는데다 세계무역기구(WTO) 규정에도 어긋나 정부도 대기업의 사업영역을 법적으로 제한하긴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주무부처인 중소기업청 역시 "최근 대·중소기업들의 사업영역에 관해서도 총리실을 필두로 공정거래위원회, 기획재정부, 지식경제부와 같은 관련 부처들간 협의를 진행중"이라면서도 "당장 어떤 제도를 만들 수 있을 만큼 쉬운 문제는 아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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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대열 기자 dycho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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