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주 DNA서 찾는다
<6>한화그룹 김종희 회장①
개인보다 국가 먼저
'엿가락보다 싼 화약' 공급
현암은 조선화약공판의 운영자로서 미 군정청 등을 상대로 판로를 개척하는 한편 활발한 교류를 통해 미군들로부터 '다이너마이트 김'이라는 애칭을 갖게 됐다. 그는 전후 한국 경제의 회복을 위해 화약공판을 마음대로 주무르던 미 고문관에게 가격 인상보다는 해방 전 가격 유지를 요구, 실질적으로 엿가락보다도 싸게 화약을 우리 산업 현장에 공급했다. 당시 엿 한 가래에 50전. 엿가래보다 굵은 화약은 하나에 30전이었다.
$pos="C";$title="";$txt="고(故) 현암 김종희 한화그룹 창업 회장이 한국화약을 방문한 이승만 전 대통령에게 회사를 소개하고 있다.";$size="550,441,0";$no="2010041214391638376_1.jpg";@include $libDir . "/image_check.php";?>
이후 현암은 화학 국산화를 위해 강력한 다이너마이트를 제조하는 데 인력과 설비를 집중하는 총력전을 펼쳤다.
1957년 5월 29일. 인천화약공장 초화공실을 높게 에워 싼 토제 위로 대형의 직각 삼각형의 적색 깃발이 올라 다이너마이트 시험 생산이 시작됐음을 알렸다. 초화공실의 적색 깃발은 초화 작업 중임을 알리는 신호였다.
시계가 오후 1시 30분에 이르자 더 기다릴 수 없던 신 과장은 사무실을 뛰쳐나와 초화공실로 달려갔다. 바로 그때 "우리가 해 냈다!"고 외치는 소리와 함께 토제 위의 깃발이 보이지 않던 것. 실로 한국의 화약 산업사에 신기원을 이루는 감격의 순간이었다. 한국이 아시아에서 일본에 이어 두 번째로 다이너마이트를 생산하는 국가가 됐다는 감격에 한화인은 모두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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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원 기자 kimhy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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