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문종 경민대학교 총장

홍문종 경민대학교 총장

AD
원본보기 아이콘
[아시아경제 ]늦은 밤, 서울 명동 인근의 지하도를 찾았다.


어린 시절을 보낸 곳이라 평소 즐겨 찾는 곳이기도 하고 또 얼마 전 우연히 목격했던 노숙인들의 충격적인 실상을 다시 한 번 확인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며칠 전 이 지하도를 지나다가 통로를 빼곡히 채운 채 바닥에서 잠을 자고 있는 노숙인들을 보았었다. 짐작했던 것보다 훨씬 적나라한 현실이어서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듯 했었다. 음습한 뒷거리 풍경의 한 조각이 되어 서로 뒤엉켜 있는 그들의 모습에서 인간의 존엄을 논하는 일 자체가 차라리 허영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것은 번화한 서울의 한복판에서 극단적인 '생존'의 실상이었다. 휘황찬란한 빛을 뿜어내는 건물, 그 주변 야경과 대비되는 노숙인들을 바라보는 일은 혼란스럽고 불편한 일이었다. 울렁거리는 멀미 증세는 집으로 돌아온 이후로도 내내 마음 한 귀퉁이에 남아 떨쳐지지 않고 나를 자극했다.

그러다가 오늘 급기야 노숙자들의 침소(?)를 다시 방문하게 된 것이다.


다시 찾은 명동 지하도는 지난 번 보다 훨씬 분주했다. 자정이 넘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이제 막 노숙인들에게 컵라면 배급을 끝낸 구호단체의 손길이 지나간 때문인지, 아니면 갑자기 추워진 날씨 탓인지 지난 번 보다 노숙하는 사람들의 규모도 불어나 있었다.


마침 심야시간을 이용해 강행군 중인 지하철 에스컬레이터 설치공사 소음은 맹렬하게 지하공간을 울려대고 있었다. 마치 그 누구도 잘 생각하지 말라는 기세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숙인들에겐 그마저도 자장가처럼 들리는 듯 싶었다. 아무런 미동도 없이 평상심을 유지할 수 있는 그들의 내공이 경이로웠다.


어쩌면 그 누구의 시선도 의식하지 않은 채 널브러져 있는 모습은 무심한 평온을 가장한 '포기'가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문득 치열한 생존 구도로부터 밀려난 인간의 파괴된 내면이 드러난 상흔의 다른 얼굴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쳐갔다. 삶에 대한 애착이 조금도 남아있지 않은 듯한 표정은 지켜보는 사람을 착잡하게 만들었다.


올 상반기 우리나라의 상품수지가 266달러의 흑자를 기록, OECD 30개 회원국 중 719억 달러를 기록한 독일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는 통계결과가 나왔다. 우리가 선진 제조국의 대명사인 일본을 크게 추월한 초유의 상품수지 흑자 결과에 크게 고무돼 있는 표정이다. 상품수지는 상품의 수출입 거래에 따른 대금을 말하는 것으로 이 상품수지 흑자가 일본을 앞선 건 그만큼 한국 제품의 국제 경쟁력이 높아졌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우리로서는 또 하나의 새로운 이정표를 세운 의미이고 새로운 가능성을 입증한 것이기에 자랑스러울 만 하다. 이 참에 일본을 완전히 따라잡을 수 있는 산업체질로 바꿔서 어떤 상황에서도 침체되지 않는 공고한 대한민국 경제가 되길 바라는 마음도 간절하다.


경제 발전 못지않게 중요한 가치는 국민 개개인의 행복지수다. 우리 사회가 좀 더 건강해지기 위해서는 수출도 잘하고 나라 전체의 부가 커지는 것 못지않게 국민전체의 행복지수도 올라가야 한다. 그러나 우리 대한민국의 현실을 보면 그다지 희망적이지 않은 것 같다. 실질적인 경제지표의 뒷받침에도 불구하고 점점 더 벌어지고 있는 빈부 격차의 심각성 때문이다. 실업난으로 많은 청소년들이 무기력감에 빠져서 방향설정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는 여건에 놓이는 경우도 태반인 점도 마찬가지다.


정확한 수치는 알 수 없지만 좋아지는 경제에 반해 국민들의 행복지수는 형편이 좋지 못한 게 사실이다. 일정한 주거없이 거리에서 생활하는 부랑인과 노숙인이 1만4천명 규모에 달하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이들 중 상당수가 장애나 정신질환 등에 시달리고 있고 그 숫자도 날로 늘고 있다고 한다.


가난은 나라님도 구제하지 못한다고 했다. 가난을 해결할 수 있는 획기적인 대책 마련이 결코 쉽지 않은 현실을 대변한 의미일 것이다. 명동 지하도의 노숙인들을 바라보면서 내가 좌절 비슷한 느낌을 갖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이런 문제점을 해결하고자 하는 시도는 단 한시도 멈출 수 없다는 생각이다.


최소한 아무리 삶이 버겁더라도 노숙인들로 하여금 국가나 사회로부터 버림받았다는 생각을 갖게 해서는 안된다. 그들이 스스로를 필요없는 존재로 규정하는 순간, 그로 인해 파생되는 사회붕괴의 파장은 생각보다 심각한 현실로 대두될 것이기 때문이다. 막대한 지불 비용은 당연히 우리 모두의 몫이 된다는 사실도 잊지 말아야 한다. 이런 저런 후유증을 감안할 때 사전에 대비하는 편이 훨씬 수월하다는 계산이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노숙인이 없는 사회, 꿈같은 이야기로 현실이 될 수는 없다. 그러나 최소한 노숙인들이 우리와 함께 해야할 공동체라는 인식을 저버려서는 안된다.


대한민국이 아무로 경제강국으로 국제적 지위가 올라간다해도 불우한 우리의 이웃이 줄어들지 않는 한 그 행복은 허상으로 끝나게 될 공산이 크다는 사실을 기억해야할 것이다.


그런 이유로 지금이 바로 저마다 누리고 있는 혜택의 일부를 희생하겠다는 결단의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나의 것' 못지 않게 '우리의 것' 역시 중요한 가치라는 사회적 공감대가 이뤄진다면 가난 구제는 좀 더 구체성을 띠게 되고 수월해지지 않을까 싶다. 주머니를 털 형편이 아니라면 직접적인 봉사만으로도 우리 사회의 행복지수를 올리는 데 일조할 수 있다.

AD

우리 모두 그 결심을 하자.


그리고 지금 당장 가난구제를 실행해 보자.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함께 보면 좋은 기사

새로보기

내 안의 인사이트 깨우기

취향저격 맞춤뉴스

많이 본 뉴스

당신을 위한 추천 콘텐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