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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옷은 무조건 물려받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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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는 다 그랬다. 가난할 것까지는 없어도 풍족하지는 않던 그 시절 형제들의 옷을 물려 입는 것은 당연한 일이기는 했다. 문제는 내가 육남매 중의 막내였다는 사실이다. 큰형이 입던 옷을 다시 작은 형이 물려받고 다시 내 차례가 되기까지 딱 십년이 걸렸다.

하다못해 누나들이 입던 옷까지 내 차지가 되고는 해서 어떤 옷은 단춧구멍이 왼쪽에 어떤 옷은 오른쪽에 가 있었다. 내 밑으로는 어떤 아이도 없었으니 치마만 아니라면 어떤 옷이든 소화해야 할 운명을 타고 난 것이었다. 어릴 적 일이라 세세한 부분까지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학창시절 내가 입던 옷까지 아직 집에 남아있는 것을 보면 내 어슴푸레한 기억은 거의 정확한 것이라 짐작해 볼 수 있다.
새 옷을 입는 날은 일년에 정기적으로 두 차례씩 있었다. 설과 추석 전이면 어머니는 아이들을 이끌고 설빔과 추석빔을 장만하러 시장에 나가곤 했다. 그때만 해도 의류 브랜드라는 것들이 등장하기 전이었다. 석유 냄새 풍기는 새 옷과 신발을 받아들고 좋아하던 그 시절로부터 삼십 년이 넘게 흘렀다.

친환경이라는 용어도 없던 그 시절 어머니는 이미 친환경적인 삶을 실천하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이날까지 별 탈 없이 건강하게 지내고 있는 것도 어쩌면 그 시절 헌옷을 줄기차게 입은 덕일 수도 있다. 재활용과 재사용은 친환경 생활의 핵심 키워드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돈이 많아야 친환경 생활도 할 수 있다는 많은 이들의 생각과 달리 근검절약은 친환경이라는 개념과 많은 점에서 닮아있다.

면화밭에서 전 세계 살충제의 25%가 뿌려지며 한 장의 티셔츠를 만드는 데 열일곱 숟가락의 화학 비료와 일곱 숟가락 정도의 화학 약품이 사용된다고 한다. 이렇게 생산된 면에 염소계 표백제와 형광증백제를 사용해 표백한 원단에서는 암과 선천성 결손증, 번식 장애 등을 유발하는 수많은 독성 물질들이 검출된다.
이런 사실을 알고 나면 아이에게 선뜻 새 옷을 사 입히기가 힘들어질 것이다. 가장 바람직한 것은 유기농 면으로 된 옷을 구입하는 것이겠지만 아이의 모든 옷을 유기농 소재로 바꿔주기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독성 물질들은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감소하므로 헌옷을 물려받는 것은 아이의 건강을 위한 최선의 대안이라 할 수 있다.

아이에게 물려받은 옷을 입히는 것은 새 옷보다 훨씬 안전한 옷을 입히는 것 뿐 아니라 새로운 면의 생산에 필요한 제초제와 화약 비료, 화약 약품, 화석 연료의 사용을 줄이고 쓰레기 배출을 억제하는 효과가 있다.

헌옷 물려 입히기와 함께 실천해야 또 한 가지는 석유계 합성계면활성제, 형광증백제, 인공색소가 들어있지 않고 팜유와 고급 야자유를 사용하는 천연 유지 성분으로 세탁용 세제와 섬유유연제를 바꾸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신경 계통의 손상과 면역 기능의 저하, 발암 가능성 등 합성 세제의 폐해에서 피해갈 수 있으며 수질 오염도 줄일 수 있다. 가정에서 날마다 사용하는 합성 세제는 세탁된 옷을 통해 인체에 지속적으로 축적된다는 점에서 섬유 생산 단계의 독성 물질보다 훨씬 위험하다.

우리 아이는 오늘도 헌옷을 입고 열심히 뛰어놀고 있다. 언젠가 때가 되면 새 옷을 사달라고 조를 날이 오겠지만 버틸 수 있을 때까지 물려받은 옷으로 버텨볼 생각이다.

<여세호, '친환경으로 키우는 우리 아이'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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