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택수 시인의 나무 인간의 꿈을 꾸다<2>
나의 푸른 외국어 노트
“똑같은 나무인데, 잎사귀에 무늬가 들어있는 나무들을 보며, 무늬 없는 나무와 비교해 보는 것도 큰 재미입니다. 비슷비슷해 보여도 생명 있는 것들은 모두 제 나름대로의 독특함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람이 그렇듯, 세상의 모든 나무들이 서로 똑같은 건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그 비슷비슷한 나무들 사이의 미묘한 차이를 찾아내는 기쁨, 그건 나무를 관찰하며 누릴 수 있는 큰 행복입니다.”
$pos="C";$title="";$txt="사람 사이의 장벽이 있기 때문에 오히려 나무 앞에서 더 절박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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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주일에 한두 번씩 나무에 관한 편지를 보내오는 분이 있다. 방방곡곡의 나무들을 찾아다니며 편지를 보내오는 그분처럼이야 할 수 없겠지만 나도 몇 개월쯤 석류나무를 관찰하며 지냈다. 그리고 또 몇 개월은 호랑가시나무 이파리를 들여다보며 살았다. 석류나무는 점심 무렵에 오가는 사무실 근처 골목길에 있었고, 호랑가시나무는 가끔씩 들르는 지인의 작업실에 있었다. 나는 틈이 날 때마다 그들의 수피와 이파리 모양을 골똘히 뜯어보았다. 일을 하다 무료하면 실례를 무릅쓰고 따온 이파리를 책상 위에 올려놓고 식물학자라도 된 듯 사뭇 심각한 표정을 짓곤 하였다. 그러나, 좀처럼 알 수 없었다. ‘비슷비슷한 나무들 사이의 그 미묘한 차이’.
$pos="C";$title="";$txt="자잘한 이파리가 편백나무를 휘감고 오르는 것은 지극한 일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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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쓰면서 나는 무엇인가에 대한 간절한 궁구가 사물과 나 사이의 국경선을 넘어가게 하는 힘이 된다고 믿었다. 무엇인가를 지극하게 들여다보면 새로운 말들이 태어나고, 그 말을 받아쓰면 시가 되고 노래가 되기 마련이다. 그런데, 내 정성이 부족했던 것일까. 뒤늦게 외국어 공부를 하듯 나무들에 관한 이야기를 폭식처럼 섭취하기 시작했지만 길을 묻는 외국인 앞에 선듯 나무 앞에서 늘 황망해하기 일수였으니. 그때 문득 생각난 게 찰리 채플린과 장 콕토의 이야기다.
세계일주여행을 떠난 장 콕토가 현해탄의 선상 갑판에서 찰리 채플린을 만난 일이 있는 모양이다. 서로를 잘 이해하고 있던 두 예술가는 한눈에 상대방을 알아보고 가까이 다가가지만 정작 한 마디 말도 나눌 수가 없었다. 말이 서로 통하지 않았던 것이다. 보다 못한 채플린의 부인이 통역을 자청하고 나섰다. 그런데 채플린이 조용히 부인을 가로막고 나선다. 통역이 되지 않는 상황, 한 마디 말도 주고받을 수 없는 그 상황이 오히려 그들을 더 간절하게 한다고. 그 간절함이 서로의 내면을 오가게 하는 힘이 된다고.
나무야말로 가장 익히기 힘든 외국어가 아닐까
채플린과 장 콕토 사이에 있던 장벽이 나무와 나 사이에도 있다. 나무야말로 가장 익히기 힘든 외국어가 아닐까. 나는 모두가 잠든 밤 나무가 별과 나누는 대화를 도저히 알아들을 수 없다. 하지만 우리 사이의 장벽이 있기에 오히려 나는 나무 앞에서 더 절박하다. ‘절망이 기교를 부르고, 기교는 다시 절망을 부른다’고 했던 게 시인 이상이었을 것이다. 석류꽃이 피고 지고 혼자 남은 꽃받침이 열매가 되어 부풀어가는 동안, 호랑가시나무 이파리 속의 엽맥들이 잎가상이 밖을 향해 밀어올린 가늘디가는 엽맥 하나가 뿔처럼 이파리를 뚫고나와 가시가 되어가는 동안 나는 놀랍게도 일상의 자잘한 소란들로부터 멀찌감치 떨어져 있을 수 있었다. 그리고 나무에 집중하느라 차분하게 가라앉은 내 숨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올 여름 내 외국어에 삼나무와 편백나무가 추가되었다. 장성 축령산 휴양림에서 만난 나무들이 그들이다. 삼나무와 편백나무는 시원시원하게 막힘없이 뻗어간 그 수형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하늘을 천막처럼 떠받치고 있는 이 기둥들은 대지를 뚫고나와 짓누르는 중력을 밀어 올리면서 솟아올라와 있다. 나무들이 뚫고나온 게 어디 대지 하나 뿐일까. 나무들은 공기를 뚫고, 어둠을 뚫고, 폭우가 치던 시간들을 뚫고, 그들을 바라보던 우리들을 뚫고 온몸으로 솟아올라 분수처럼 가지를 펴올리고 있는 것이다. 자신이 머무는 공간을 어떻게 저렇게 경이롭게 살아낼 수 있을까. 그 앞에 서면 아- 하는 감탄 밖에 더 이상 어떤 표현도 할 수 없다. “그곳에 솟구쳐 선 한 그루 나무 오오 순수한 솟구침”(릴케, '오르페우스에게 바치는 소네트')을 묵은 책더미 속에서 겨우 꺼내볼 수 있을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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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나무와 편백나무가 돋보이는 것은 그 훤칠한 외모도 외모지만 기실은 어떤 나무와도 비교할 수 없는 향기에 있다. ‘모든 식물은 하나의 램프다. 그 향기는 빛인 것이다’라는 빅토르 위고의 말을 삼나무와 편백나무만큼 실감나게 하는 나무를 나는 알지 못한다. 그 청신한 향기를 맡을 때 나는 바위에 부딪쳐 하얗게 깨어지는 여울물 소리와 물 위로 가볍게 배를 뒤집으며 튀어오르는 은피라미의 서늘한 비늘빛을 동시에 느낀다.
$pos="C";$title="";$txt="축령산은 나무인간 임종국 선생이 있었기에 푸른 하늘을 가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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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소설 '향수'에는 매일 우유를 마실 때마다 우유를 짜낸 소의 기분을 냄새로 알아맞히는 주인공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처럼 나도 나무들의 기분을 알아맞혀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러는 동안 나무 향기가 내 몸과 마음에 배어들게 된다면 지나가던 새들이 나를 나무와 잠시 혼동하고 어깨에 내려앉을지도 모르는 일 아닌가. 하기는 사슴이나 토끼를 속이기 위해 동물들이 좋아하는 식물의 액으로 사람 냄새를 가리는 이들을 소개한 책을 본 적이 있다. 식물액을 묻힌 그들은 사슴과 토끼가 찾아올 때까지 자신에게 최면을 건다. ‘나는 나무다. 나는 나무다’, 이런 주문을 걸면서 말이다. 엉뚱하지만 상상만으로도 미소가 일며 몸이 향긋해 오지 않는가. 삼나무와 편백나무의 향기가 옷깃에 묻어온 속진의 체취를 씻어내주길 기다리며 나도 나무 인간의 꿈을 꿔본다. 지나가던 다람쥐가 비에 씻긴 머루알처럼 빛나는 눈망울로 흘낏 나를 쳐다보고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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