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해철 시인의 남도의 흰 빛 그리고 푸른 빛<3>

보성 그릇이 완전한 백자가 되고자 한 열망이 더 크게 있었다

분청 백자를 전남의 무안에서도 당시에 구웠는데 무안 분청 백자는 그릇의 밑둥지에 하얀 분이 발리지 않아서 잿빛의 태토 빛이 그대로 보인다. 반면에 보성 분청 백자는 ‘덤벙’ 하고 그릇 전체를 흰 분에 담가 입혔기 때문에 갈색의 태토가 보이지 않는다. 각기 특색이 있으나 보성 그릇이 완전한 백자가 되고자 한 열망이 더 크게 있었다.


보성 분청 백자는 만든 기간 약 50년에서 100년으로 그리 오랜동안이지는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송기진의 말에 의하면 그 이유 중 가장 중요한 것이 만들기의 어려움 때문이었다. 우리 도자기 중에서 세 번을 가마에서 불을 때서 굽는 것은 보성 분청자기 뿐이다. 다른 모든 백자나 청자, 분청자기들이 두 번 심지어 어떤 경우 한 번만 가마에서 불을 때도 만들 수 있지만 보성 분청자기는 세 번을 구워야 했으므로 여러 가지 어려움이 많았을 것으로 추정되어 시나브로 만드는 것을 그만두었을 것이다. 완전한 백자를 만들고 싶어한 보성 도공들의 염원이 그런 힘든 공정을 낳게 한 것이리라.

그런 점에서 보성 분청백자를 학술적으로도 깊이 연구한 송기진이, 다른 지역의 분청 백자들과는 분명한 차이가 있는 보성 분청 백자를 ‘보성 덤벙이’로 달리 분류하여 이름 지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명명하여 최초로 부르기 시작하였는데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보성 덤벙이로 부르고 있다.



송기진이 만든 찻잔에는 사용하면 할수록 아름다운 그림이 스며 새겨지는데, 찻물을 따르면 찻잔에 바로 그림이 우러나와 아름다운 물그림자로 뜬다. ‘보성 덤벙이’는 쓸수록, 세월이 갈수록 몸체에 스미어든 그림이 더 좋아져서, 영원히 보존하고픈 심정을 일으키고, 끝내는 ‘그릇과 내가 하나가 된다’라고 송기진은 말한다. 그릇에 새겨진 물그림의 추상적인 아름다움은 그 강렬함이 다른 어떤 그릇들보다 월등하다.

시간이 흐르면서 그릇이 변해가는 것이 마치 살아있는 것 같다. 목숨을 다해 혼신의 노력으로 만들어낸 물건들은 피가 흐르지 않는 것들이라 하더라도 마치 생명이 깃들어 있는 것같은 영성을 느끼게 하지 않던가? 에밀레 종처럼, 고려 불화처럼, 석굴암의 부처님처럼, 마한의 거대한 옹관처럼……. 그런 아름다운 현상을 만들어내는 그릇은 ‘보성 덤벙이’가 가장 으뜸이라고 알려져 있다. 그래서 그런지 우리나라 찻그릇을 유난히 좋아하는 일본의 문화인들이 보성 분청백자 그릇을 ‘호조 고비끼’라 하여 으뜸 가운데서도의 의뜸으로 여겨 귀하게 생각하고 있다. 물론 우리나라 차 마시는 사람들도 오래 가까이 하면 할수록 몸체에 그 세월과 그 사랑을 아로새겨 그릇의 주인을 추억하는 ‘보성 덤벙이’를 가족처럼 여기기까지 한다.


‘보성 덤벙이’의 흰 빛은 우리들 어머니가 오랜 만에 화장 하신 얼굴, 그 찰색이다. 콩밭을 종일 매어 얼굴이 검붉어지신 어머니께서 도시에서 열리는 조카딸 결혼식에 가시려고 오랜만에, 정말 오랜만에 단장하신 그 얼굴빛이다. 볼에 이마에 바르시고 또 바르신 ‘박하분’이나 ‘동동구루무’같은 하얀 분의 빛깔이어서 ‘보성 덤벙이’의 흰빛은 보는 이에게 따뜻함을 주고, 보고 또 봐도 질리지 않고, 보고 있지 않으면 보고 싶어지기 까지 하는 것이다.


그 따스한 하얀 빛깔 위에 자식 때문에 기뻐서 혹은 슬퍼서 남모르게 흘리신 어머니의 몇 방울 눈물같은 얼룩이 맺혀 만든 ‘보성 덤벙이’의 얼굴에 그려지는 물무늬를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으랴?. 더욱이 시간이 흐르면서 어느 날은 그 무늬의 너울거림이 막걸리 사발에 흥이 오르신 아버님의 소리가락이 되어 눈에 선하다면!


송기진은 세영 세정 두 딸과 놀다가 곧 바로 옆방에 들어 이런 흰 빛의 그릇을 혼신을 다하여 빚고 굽는다. 그릇을 만드는 일과 아이들 뺨을 어루만지는 일이 하나가 되어 ‘보성 덤벙이’ 그릇 속에 아이들이 있고 아이들 웃음과 울음 속에 하얀 빛의 그릇이 있다.


그릇을 만드는 것은 도 닦는 것이고, 자기 마음을 밝히는 것이고

송기진은 ‘보성 덤벙이’가 ‘업’이라고 했다. 그 그릇을 만나고, 만들게 되고, 대학 선생 자리를 포기하게 되고, 가난 속에서도 결코 벗어나지 못하게 된 ‘업’이라고 했다. 그리고 다른 일에 바빠 하루를 거의 보냈다 해도 나머지 짧은 시간이라도 빠짐없이 물레를 돌리는 것이 자신에게는 무엇보다고 중요한 일이어서 습관이 되었다했다. 그릇을 만드는 것은 도 닦는 것이고, 자기 마음을 밝히는 것이고, 그래서 실은 돈하고도 관계가 없다고도 하였다. 답답하고 어려울 때면 산천경계의 제신들에게 기원하고 기도할 뿐이라고 하였다. 그렇게 그가 그와 그의 식구들의 운명까지를 걸었기 때문에 ‘보성 덤벙이’는 그런 다정한 남도의 흰 빛을 600년 만에 다시 송기진에게 나타내주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우리나라 차 특히 보성 녹차는 ‘보성 덤벙이’ 찻잔으로 마셔야 제 맛과 멋이 우러나올 것이다. 제 고장 것들은 서로 서로 잘 어울려서 영원을 함께 해 온 것이므로 그렇다. 송기진에 의하면 ‘보성 덤벙이’ 그릇의 몸을 이루는 흙은 선조 대대로 우리 온돌의 구들장이 되어온 바위가 풍화된 흙이라는데 그래서 그런지 과학적 검사 결과 인간의 몸에 제일 좋은 ‘원적외선’이 많이 함유되어 있고 또 ‘게르마늄’ 성분도 많이 들어 있는, 정말 몸에 이로운 흙이라는 것이다. 이런 과학적 검사와 연구도 지금껏 송기진이 해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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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성 덤벙이’ 그릇은 남도의 흰 빛에 그 임자의 인생이 배어들어 그 사람과 하나가 되어 세월을 같이 산다. 살아있는 친구이고, 그 친구의 몸이다. 마치 남도의 흰 모시 적삼에 그 주인의 세월이 스며든 것같이, 남도의 하얀 돌각담에 시간이 그림을 그려놓은 것같이, 어느 다 늙은 남도 사람이 젊은 날 받아 고이 간직하고 있는 사연 가득한 하얀 편지지의 오래된 눈물 자국같이…….


덧붙이는 말로 올 초 일본에서 40년 이상 찻그릇만을 만들어와 일본 최고의 명인의 한사람인 다나까 싸지로(Sajiro Tanaka, 田中 佐次郞)라는 사람이 우연히 보성요에 들렀는데 송기진의 찻잔들을 십여개 이상을 두 손으로 잡고 들어올려 살피면서 ‘최고다. 한국에서 일본에서 볼 수 없었다. 최고다’라고 혼자말처럼 했다는 것이다. 일본인들은 어디에 가서 남의 작품들을 그렇게 많이 만져 보고 그런 말들을 함부로 하지 않는다는 것을 생각할 때 그 일본의 장인도 남도의 흰빛과 그 웅숭한 멋에 취했다고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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