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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이 떠나는 전라도 여행[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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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해철 시인의 남도의 흰 빛 그리고 푸른 빛<1>

그 그릇들의 빛깔이 우리네 산천의 빛깔인 것은 당연한 일이다

남도는 빛으로 가득한 곳이다. 찬란한 빛들 속에서 수많은 예술가들이 예술을 꽃피웠고, 꽃피우고 있는 곳이 바로 남도이다. 남도의 황토 빛은 그윽하고, 노란 빛은 따스하고, 붉은 빛은 뜨겁고, 검은 빛은 고요하고, 푸른 빛은 아련하고, 흰 빛은 고결하다. 이런 황홀한 빛 속에서 남도 사람들이 탄생하고 살아가고 스러져간다.
그 빛을 쫒아 자기의 운명을 건 사람들을 만나는 것은 남도의 속살을 만나는 것과 같다. 그 곳에서 나고 그 곳에서 살면서 그 곳의 빛깔을 길어 올려 무언가를 탄생시키는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야말로 내가 그 동안 해온 여행의 참기쁨이었다.


그 많고 많은 사람들 중에서 그릇 속에서 빛을 찾아 운명을 건 두 사람의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남도의 흰 빛과 푸른 빛을 각자의 그릇에 올려 그 빛과 함께 살고 그 빛과 하나가 되고자 하는 사람들이다.

그릇이란 무엇인가? 까마득한 옛사람들부터 지금의 우리들까지 푸른 빛, 흰 빛의 그릇이란 무엇인가? 어머니 아버지께 진지상을 올릴 때, 자식들의 주린 배를 채워줄 때, 인생살이 고비마다 천지신명께 빌 때, 먹거리나 공양물을 담아 올리던 소중한 것이 아니던가.
특히 옛사람들에게 그릇은 그냥 용기만이 아니고 신과 인간을 이어주거나 사람과 사람의 목숨을 이어주는 신성하고 고마운 존재였다. 그러므로 그릇을 허투루 만들지 않았으며 허투루 쓰거나 보관하지 않았다. 심지어 누군가 망자가 되면 그의 몸 곁에 그의 그릇을 영원한 동반자로 함께 묻어주곤 했다.

우리가 쓰고 있는 그릇들에는 비록 지금은 우리가 다 잊어버렸다 해도 그런 전통과 정신이 깃들어 있다. 그리고 남도의 어떤 이들은 그릇에 깃든 그런 소중한 것들을 고스란히 되살려 한없는 정성으로 그릇들을 빚고 있다. 그런 그릇들은 우리가 깃들어 살고 있는 천지와 둘이 아니고 하나이므로 그 그릇들의 빛깔이 우리네 산천의 빛깔인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신이 빚은 남도의 흰 빛과 푸른 빛을 인간의 손으로 다시 지어내어 그릇에 그대로 올린다는 것이 얼마나 지난한 일인가는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므로 운명을 건 일이다.

흰 빛


송기진(39)은 보성사람이다. 그를 만나려면 보성 차밭 속 깊은 계곡을 굽이굽이 내려가 다다른 큰 호수 가로 가야한다. 그 곳에서 그는 흰 빛의 사발을 굽고 산다. ‘보성 덤벙이’라는 분청백자 그릇을 만들며 세영(2세), 세정(6세) 두 딸과 아내와 함께 산다.

그는 살림집이며 작업장(보성요)인 그의 보금자리를 그의 손으로 몇 년에 걸쳐 지었다. 실은 지금도 지어가고 있다. 아이가 둘이 되면서 원래의 집에 뒤 칸을 덧대어 조금 넓힌 것이 얼마 전 일이고 앞으로도 도자기 가마 위의 지붕을 더 넓게 쳐야하는 일 등이 남아 있다. 허물어진 시골집들에서 주어온 나무들과 돌들도 많이 재료로 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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