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Dim영역

[강현직칼럼] '당신이 있어 행복했습니다'

스크랩 글자크기

글자크기 설정

닫기
인쇄 RSS
우리시대의 거인 김대중 전 대통령이 영원히 우리 곁을 떠났다. 민주화와 인권. 통일운동의 상징인 그는 온 국민의 애도 속에 서울 국립현충원에서 안식에 들어갔다. 국장 기간 동안 수백만 국민들이 빈소를 찾아 조문을 하고 그가 가는 길을 많은 시민들이 지켜줬다. 국민이 그토록 애태울 만큼 그가 우리에게 주고 간 울림은 무엇일까.

영결식 내내 침통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이고 앉아 있던 미망인 이희호 여사는 운구 도중 서울광장에서 국민들에게 또박또박한 목소리로 고인의 뜻을 전했다. 릲제 남편은 일생을 통해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피나는 고통을 겪었습니다. 많은 오해를 받으면서도 오로지 인권과 남북의 화해, 협력을 위해 노력해 왔습니다. …… 제가 바라옵기는 남편이 평생 추구해 온 화해와 용서의 정신, 평화와 어려운 이웃을 사랑하는 행동의 양심으로 살아가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이것이 남편의 유지입니다릳 비록 길지 않는 인사였으나 어느 학자나 어느 정치인이 강조한 말보다 보다 함축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고인은 먼저 우리에게 '화해와 용서'의 메시지를 주었다. 그는 평생 지역과 이념의 골을 메우기 위해 앞장 서 왔다. 자신 스스로 피해자이면서도 이를 극복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그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암살소식을 듣고 안타까워했으며 그의 묘소를 참배하고 기념관 건립을 지원했다. 그는 대통령이 된 뒤 자신에게 사형선고를 내린 전두환 전 대통령을 풀어주었다. 용서를 통한 화해를 몸소 실천함으로서 낡은 이념과 고질적인 지역주의로부터 벗어나려고 애썼다.

그는 또 마지막 가는 길에서도 남북 화해의 길을 열어주었다. 그는 평생 과업으로 여겨 온 통일을 위해 3단계통일론 등을 제시하며 햇볕정책을 추진, 분단 반세기만에 남북정상회담을 이끌어냈고 금강산 뱃길과 개성 기찻길을 열었다. 최근 굳게 닫힌 남북 빗장도 북한 조문단이 옴으로서 다시 대화의 물꼬를 트게 됐다. 실질적인 대남 교류를 주도하는 인사들로 구성된 북측 조문단은 이명박 대통령을 면담하고 대화를 나눴다.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남북 교류협력이 진행될지 그것은 이제 우리의 몫이다.

그는 누구보다도 어려운 이웃을 사랑했다. 그는 '생산적 복지'를 도입해 서민과 소외계층을 배려하는 법과 제도를 정비, 국민기초생활 보장제를 실시하는 등 사회안전망을 강화했다. 마지막 일기에서도 볼 수 있듯이 그가 용산참사를 보며 차가운 거리로 내몰릴 철거민들을 애절하게 걱정한 것은 그의 삶의 투영이다. 사회의 양극화가 갈수록 심화되는 요즈음 그의 유지는 더욱 크게 들린다.
그는 생전에 실천을 중요시했다.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 편'이라며 암울한 군사정권 시절 민주주의와 정의를 지켜냈다. 그는 권력과 독재로부터 질식할 듯한 민주주의를 부둥켜안고 온갖 고초를 이겨냈다. 실천이 수반되지 않는 양심은 한낱 치장과 허위에 불과할 뿐이며 자신에 대한 기만이기도 하다. 그는 마지막 강연이 된 6.15 9주년 기념행사에서도 '행동하는 양심'을 강조했다. 민주주의가 왜곡되고 인권이 억압당할 때일수록 행동은 더욱 가치를 발한다.

우리는 그를 보내며 새로운 가치를 찾을 수 있었다. 그를 추모하는 행렬은 정파도, 이념도, 계층도, 지역도 없었다. 지난 엿새 이 땅에는 화해와 통합, 용서와 평화의 기운이 넘쳤고 모두들 함께하길 다짐했다. 이제 이를 행동으로 옮길 때다. 어렵게 만들어진 사회통합의 분위기를 더는 해쳐선 안 된다. 낡은 관습을 벗고 다가올 미래에 걸 맞는 새로운 가치를 정립해야 한다.여기에는 권력자도, 핍박받는 자도, 가진 자도, 못가진 자도 예외일 수 없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당신이 있어 행복했습니다' 조문록의 추모 글처럼 우리는 이제 그와 함께한 행복을 대체할 새로운 행복을 찾아야 한다.

<ⓒ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AD

이슈 PICK

  • '바보들과 뉴진스' 라임 맞춘 힙합 티셔츠 등장 어른들 싸움에도 대박 터진 뉴진스…신곡 '버블검' 500만뷰 돌파 하이브-민희진 갈등에도…'컴백' 뉴진스 새 앨범 재킷 공개

    #국내이슈

  • 머스크 베이징 찾자마자…테슬라, 中데이터 안전검사 통과 [포토]美 브레이킹 배틀에 등장한 '삼성 갤럭시' "딸 사랑했다"…14년간 이어진 부친과의 법정분쟁 드디어 끝낸 브리트니

    #해외이슈

  • 이재용 회장, 獨 자이스와 '기술 동맹' 논의 고개 숙인 황선홍의 작심발언 "지금의 시스템이면 격차 더 벌어질 것" [포토] '벌써 여름?'

    #포토PICK

  • 기아 EV9, 세계 3대 디자인상 '레드닷 어워드' 최우수상 1억 넘는 日도요타와 함께 등장한 김정은…"대북 제재 우회" 지적 신형 GV70 내달 출시…부분변경 디자인 공개

    #CAR라이프

  • [뉴스속 인물]하이브에 반기 든 '뉴진스의 엄마' 민희진 [뉴스속 용어]뉴스페이스 신호탄, '초소형 군집위성' [뉴스속 용어]日 정치인 '야스쿠니신사' 집단 참배…한·중 항의

    #뉴스속OO

간격처리를 위한 class

많이 본 뉴스 !가장 많이 읽힌 뉴스를 제공합니다. 집계 기준에 따라 최대 3일 전 기사까지 제공될 수 있습니다.

top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