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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주, 이래도 살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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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계사는 계산적인 사람이라고? 천만에! 회계사는 창의적인 인물이다. 그럼 은행가는 어떨까. 역시 계산적인 사람일 것 같지만 이들은 '창의'를 넘어 의뭉스럽고, 때로는 비겁하기까지 하다.

그러면 회계사와 은행가가 뭉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월가의 은행이 대출 자산을 평가하는 데 사용되는 소위 '유연한 회계원칙'이라는 흥미로운 결과물이 탄생한다.
유연한 회계원칙은 말 그대로 경영진이 대출 채권에 대해 어떤 값을 매기든 모두 그럴듯 해 보이게 한다. 가령, 채권을 만기까지 보유할 것이라고 명시하면 만기에 가서 채권 원리금을 모두 상환할 수 있을 것이라는 가정 하에 가치가 평가된다. 경영진이 손실 발생 가능성을 인정하지 않는 한 장부상 손실 처리 역시 이뤄지지 않는다.

유연한 회계원칙과 달리 시가평가 회계라는 것이 있다. 이 원칙을 따를 때 채권 가치를 현재 시장가치로 계산한다. 주가 등락에 따라 평가금액이 오르내리는 것과 같은 이치다.

대부분의 은행은 시가평가가 아니라 '유연한' 회계원칙에 따라 장부 가치를 산정한다. 다만 시가평가를 적용할 때와 차이를 주석에 밝히기만 하면 된다.
짐작하겠지만 두 가지 방법의 차이는 엄청나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A)와 웰스파고 등 주요 은행의 채권 장부 가치는 시가평가를 적용할 때에 비해 유연한 회계원칙을 따를 때 5~10% 가량 높았고, 심지어 20% 이상 부풀려지는 경우도 발견됐다.

물론 은행이 시가평가를 반대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만기까지 보유할 채권인데도 시장 가격이 급등락할 때마다 은행의 재무건전성 및 자산가치 역시 냉탕과 온탕을 오갈 것이라는 지적이다. 실제로 리먼 브러더스의 파산으로 인해 시가평가의 부작용이 부각되기도 했다.

일정 부분 이 같은 주장의 타당성을 인정한다 해도 시가평가를 거부하는 은행의 회계 관행에는 문제가 적지 않다. 무엇보다 은행이 주주들에게 공개하는 자산의 가치는 항상 내재가치를 반영해야 한다. 그런데 시장가치와 장부가치가 다르다는 것은 회계사들이 시장의 평가를 무시한다는 의미가 된다.

더구나 지난 2년 동안 금융시장의 시스템이 총체적으로 망가지는 과정을 통해 은행이 스스로 자산가치를 평가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명명백백하게 드러났다. 은행은 자신들이 보유한 구조화 증권의 가격이 얼마인지 계산해 내지 못하는 웃지 못할 풍경을 연출했고, 아울러 장부 가치에 대한 신뢰도 무너져내렸다.

단순히 시장가치를 장부에 반영하지 않아 장부 가치를 부풀리는 것 외에 은행이 취하는 잇점은 또 있다. 이론적으로 은행은 자신이 보유한 채권의 시장가치가 하락할 때 이를 싼 값에 되사들여 장부가치와 차액만큼을 이익으로 계상할 수 있다. 실제로 씨티그룹과 뱅크오브아메리카(BOA) 등 일부 은행이 이 같은 '화장술'로 장부상 수치를 부풀렸다.

은행은 늘 주장한다. 보유 자산의 시장가치를 무시하는 것은 시장이 그 자산 가치를 정확히 평가하고 있다는 확신이 없어서라는 것.

이유가 어떻든 회계에서 나타나는 모순은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을 이야기해 준다. 은행의 장부 가치는 상당히 주관적이라는 것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은행의 장부상 자산가치는 그 수치가 보너스와 직결되는 사람들의 주관적 의견에 달려 있다.

황숙혜 기자 snow@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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