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총생산 9291억달러, 경제 규모 세계 15위. 우리나라의 현재 모습이다. 세계 여러 나라의 도움을 받던 좁은 국토에 빈약한 자원을 가진 가난한 나라에서 현재의 모습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다 알겠지만, 우수한 인적 자원을 바탕으로 한 제조업이다.
현재 우리나라는 IT, 전자, 자동차, 조선 등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가지고 있다. 외국의 물건을 베끼거나 하청을 받아서 생산하던 과거의 모습에서 현재와 같이 독창적인 제품을 만들고 또 그것들이 세계시장을 휩쓸고 있는 것에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있겠지만 이것저것을 섞어서 하나로 버무리는 이른바 '비빔밥 문화'가 한 요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몇 년 전부터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는 컨버전스 (convergence, 융합) 개념과도 일맥상통한다.
전세계적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한국의 휴대폰은 이제 단순한 전화기의 차원을 넘어섰다. 이미 카메라, MP3, 게임기의 기능이 녹아들어가 있으며 전국 어디서나 휴대폰을 통해서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다. 또한 다양한 동영상 재생 기능까지 더해져 휴대폰은 전화기가 아니라 작은 컴퓨터에 더욱 가까워진 느낌이다. 이렇게 여러 가지 기능이 하나의 제품에 융합된 한국의 휴대폰은 전세계 휴대폰 시장을 선도하고 있으며 삼성과 LG를 합친 전세계 휴대폰 점유율이 30%를 넘어서고 있다.
IT와 함께 세계시장을 선도하고 있는 조선업계에서도 이러한 특성을 잘 나타나고 있다. 세계 경제 위기와 함께 침체를 맞고 있는 우리 조선업계는 고부가가치 선박 수주에 집중하며 위기를 극복하고 있는데 이 중심에 있는 것이 FPSO(Floating Production Storage Offloading) 선박이다. 기존에 개별적으로 존재했던 시추 설비, 운반 설비, 정유 설비를 하나의 배 위에 융합시킨 이 선박은 석유자원 확보를 위해 전세계의 바다를 돌아다니는 현재의 추세에 정확히 들어맞는 상품이라고 할 수 있다. 이른바 '바다에 떠다니는 정유공장'이라고 할 수 있는 선박은 우리나라 조선업계가 세계적인 기술력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최근 삼성중공업이 향후 15년간 약 500억달러에 이르는 사상 최고의 수주 계약을 체결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미 상당한 수준에 올라와 있는 우리나라 제조업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서비스 산업에서도 최근 다양한 형태의 산업간 결합이 나타나고 있다. 유선 전화, 무선 전화, 인터넷, IPTV 등이 결합된 최근의 통신산업, 의료 서비스와 미용, 관광이 결합된 외국인의 국내 관광 트랜드부터 다양한 기능이 결합되어 규모가 점점 커져 가는 우리 나라 사교육 시장까지 여러 분야에서 이러한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독특한 백화점의 모습도 다양한 산업이 결합된 좋은 예이다. 신선한 식품에서부터 값비싼 명품까지 거의 모든 제품을 구매할 수 있으면서, 갤러리에서 미술 작품도 감상할 수 있고, 문화홀에서 예술 공연을 관람할 수 있으며, 문화센터에서 교양 강좌를 듣고, 식사도 하고, 영화도 보며, 운동에 심지어 스파까지 즐길 수 있는 우리나라의 백화점은 매장이 각각 별도로 운영되는 쇼핑몰 문화가 발달한 다른 나라에서는 찾기 힘든 형태로 그 자체가 좋은 관광 자원이 되고 있다.
이렇듯 다양한 이종(異種)의 결합인 컨버전스는 개별 제품이나 서비스 효과의 합을 뛰어넘는 시너지를 발휘한다. 특히 제조업에 비해 서비스업이 상대적으로 취약한 우리나라에서는 다양한 서비스의 결합이 서비스 산업 발전에 큰 동력이 될 수 있으며, 이는 전세계적으로 제조업 기술이나 하드웨어의 격차가 줄어들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의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다.
컨버전스의 전제는 서로 '다른' 산업의 결합이다. 이러한 결합을 가로막는 장벽이 있다면 컨버전스는 일어날 수 없다. 만약 휴대폰에 카메라 기능이나 MP3 플레이어 기능을 넣었던 시점에 그것을 방해하는 기술적, 제도적 요소가 있었다면 오늘날 세계적인 휴대폰 강국으로서의 대한민국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혹시 지금의 서비스 산업에도 '휴대폰'에 새로운 기능을 추가하는 것을 방해하는 것과 마찬가지인 장애 요소는 없을까?
우리나라의 유통업체들은 세계적인 유통업체들도 국내시장에서 자리잡지 못하고 철수를 했을 정도로 경쟁력을 가지고 있지만 객관적으로 봤을 때 해외 유명 업체에 비해 아직 열세인 것이 사실이다. 위에서 언급했던 몇 개의 서비스 산업도 아직까지는 국내용의 성격이 강한 것이 사실이다. 지금 우리나라 서비스 산업에 필요한 것은 해외 업체와 대등한 규모와 경쟁력을 갖추는 것이며, 여기에는 물론 기업들의 끊임없는 노력이 기본이지만 이를 뒷받침해 줄 수 있는 제도적인 도움이 결합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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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해외 이동통신의 트랜드는 모바일 인터넷 서비스라고 한다. 하지만 유독 한국의 이동통신 시장은 인터넷 통신보다 음성 통신의 비중이 오히려 더 커지고 있다고 한다. 이것에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그 중 하나가 '위피'의 의무 탑재였다고 전문가들은 얘기한다. 한국만의 무선 인터넷 표준 플랫폼인 '위피'의 탑재를 의무화 했다가 오히려 세계적인 모바일 인터넷 서비스 추세에 뒤쳐지고 만 우리나라의 통신 서비스처럼, 앞으로 국내에서 키운 역량을 바탕으로 세계 시장에서 외국 업체들과 겨루어야 할 우리의 서비스 산업이 오히려 국내의 다양한 규제로 인해 경쟁력을 키우지 못하게 된다면 먼 훗날에는 국내시장이 도리어 해외 업체에 잠식당할 수도 있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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