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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대우가 만난사람] 조영남 "나의 소통은 젊음에 집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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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절된 사람·세대·집단 소통 이어주는게 광대 역할"

영원한 자유인 조영남 - '예술을 통한 소통'을 말하다
대담 = 권대우 아시아경제 대표이사 회장




인생에서 성공이 뭘까? 조영남씨는 항상 이에 대해 스스로 질문을 던지며 살아왔다. 자신의 인생에 대한 생각은 자신의 존재에 대한 질문에서 시작될 수밖에 없다.
언제부터인가 그에게는 그동안 습관적으로 추구하고 지켜온 가치까지도 원점에서 다시 생각하는 습관이 생겼다. 음대를 졸업하고 신학수업에 탐닉한 것도 그렇고, 모든 사람들이 잘 나가는 가수로 평가할 때도 그는 또 다른 세계, 즉 그림을 그리는데 혼을 바쳤다.

그래서 그에게는 늘 '자유인'이라는 닉네임이 따라 붙었다. 남들이 선뜻 나서지 못하는 여러 군데의 경계를 넘나들기 때문이다. '맞아죽을 각오로 쓴 친일선언'에서 비춰지듯 그는 어떤 누가 자신의 얼굴에 침을 뱉더라도 할 말을 솔직하게 하며 "내말이 틀리면 나를 때리라"는 듯이 솔직한 언행에 대한 열정을 버리기를 거부한다.

65세라는 적지 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가수로, 미술인으로, 방송인으로 끊임없이 인기를 유지하는 비법을 알 만한다. 장수상품, 수명이 긴 기업이 되기 위한 해법도 그를 통해 찾아 볼 수 있지 않을까하는 기대에서 청담동 자택을 찾았다.

 
-장수상품, 장수기업은 기업하는 사람들의 꿈입니다. 누구나 박카스나 활명수, 삼양라면 처럼 생명력이 질긴 상품을 갖기 바라고, 두산처럼 100년이 넘는 기업으로 남기를 원합니다. 그동안 살아온 과정, 그리고 세월은 흘러도 식지 않는 인기를 보며 그 비법을 경영에 접목시켜보면 어떨까하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저에겐 한 가지 원칙이 있습니다. 제가 살아온 과정도 일반 CEO들이 사업을 전개해 나가는 방법과 거의 같다는 것입니다. 성실성을 가지고 끊임없이 밀고 나가는 것
-바로 그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요즘 제가 현대중공업에서 전시를 하고 있습니다. 그곳에 많은 유품들이 전시돼 있는데 이를 보면서 많은 것을 생각했습니다. 거기에서 성실성, 끝까지 밀고 나가는 저력-그것이 오늘의 현대중공업을 있게 했고, 그 뒤에 숨겨진 '큰 기업인'의 자화상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인생은 게임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게임을 시작하고, 뜻을 세웠으면 끝까지 밀고 나가는 힘, 추진력이 있어야지요. 성공한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 바로 끝까지 초심을 잃지 않는 힘이 아닐까요?

-추진력, 끈기 물론 중요하지요. 그런데 그것만으로 초 요즘같은 초스피드 시대에서 경쟁력이 될 수 있겠습니까? 창의성, 상상력, 발상의 전환-요즘은 이런 역량이 더 중요하지 않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창의성이라는 문제만 놓고 봐도 마찬가지입니다. 가만히 앉아서 생각만 한다고 창의적인 사람이 될 수는 없습니다. 끈질김과 쉼없는 탐구, 거기서 파생되는 것이 창의성이죠.

조영남에게 천재적인 창의력이 있지는 않습니다. 이것도 해보고, 저것도 해보고, 또 시작한 것을 성공으로 이끌기 위해 열정을 바치다보니 사람들은 저를 보고 '잘 나간다'고 하는 것일 뿐입니다. 그런 과정에서 파생상품처럼 창의성이 나온 것이지요.

제가 아무리 그림재주가 있다고 해도 홍익대 졸업한 사람만큼 잘 그리겠습니까. 그러나 각오가 돼 있고 여기에 끊임없는 노력을 더한다면 누구나 다 아티스트가 될 수 있지 않습니까? 역량의 차이는 있겠지만 사람에게는 누구에게나 재능이 잠재돼 있습니다.

-뉴턴이나 파스칼 같은 사람들을 보면 초기에는 신의 영역을 탐구하려고 하다가 나중에 과학자가 되고 철학자도 됐습니다. 그러나 그 과정을 거치면서 인류사회에 남는 업적도 남기게 됐습니다. 선생님도 처음에는 음악을 했고, 그 다음 그림을 그렸고, 이젠 방송의 영역에서까지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젊을 때 신학에도 열정을 쏟을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렇습니다. 제가 신학을 하게 된 계기는 좀 독특합니다. 왜 조상들은 기독교에 그렇게 열심일까? 그럼 나는 조상들이 믿어온 종교를 계속 이어나가야 할까? 이에 대한 물음이 있었습니다. 종교의 본질을 알고 싶었던 것입니다. 물론 호기심도 생겼지요. 그때는 음악이라던가, 미술에 대한 관심보다 종교에 대한 저의 생각을 정리해야 하겠다는 결심이 우선이었습니다.

-노래하면서, 그림을 그리면서, 방송진행을 하면서 몇권의 책을 썼더군요. '현대인도 못 알아먹는 현대미술' '예수의 샅바를 잡다'등 책 제목들이 우선 재미있습니다. 가수로서, 미술인으로서, 방송인으로서 특히 예수얘기는 의외입니다.

▲조영남이 웬 예수 타령이냐고 반문할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1975년 미국 플로리다의 트리니티 침례신학교에서 신학공부를 시작했습니다. 5년 뒤에는 졸업장과 동시에 목사 자격증도 받았습니다. 기독교에 대한 궁금증이 그만큼 많았기 때문입니다.

'예수의 샅바를 잡다'는 그때 제출한 논문을 바탕으로 쓴 것입니다. 사람들은 이런 저를 보고 조영남은 한번 빠지면 몰입한다는 말을 하죠.

-신학을 공부하고, 목사 자격증까지 땄는데 예수의 샅바를 잡는 것은 좀 심하지 않습니까?

▲제가 새삼 말하려는 것은 예수의 내면과 품성을 헤아리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그를 닮아 가려는 의지를 소유하는 것입니다.

쉽게 말하면 예수와 정면 대결로 씨름을 한판 벌이는 것입니다. 예수를 허공에다 올려놓고 맹탕으로 믿는다는 자리에서 예수를 씨름꾼이 샅바를 잡듯 바짝 끌어당겨 바로 보고, 바로 알고, 바로 배우는 자세로 잠시 자리바꿈을 해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린 결론은 무엇입니까?

 

▲종교로부터 해방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교회에 나가서 복음성가를 부릅니까? 조선생님께서 부른 노래 중에는 기독교 교인들이 들으면 마음이 뜨거워지고 감명받는 것들이 많지 않습니까? 종교로부터 해방됐다면서 교회에 가서 노래를 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지 않습니까?

▲제가 말하는 종교로부터의 해방은 그런 뜻이 아닙니다. "예수를 믿으면 천당 가고 구원받는다."는 강박관념, 즉 그런 思考(사고)에서 자유로워 졌다는 것입니다. 지나치게 그런 의식에 사로잡히면 생활이 너무 구속받기 때문이죠.

-기독교를 믿는 마음에는 변함이 없지만 천당, 구원 등에 속박되지 않은 신앙인을 지향한다는 말씀으로 받아들여도 될까요?

▲제가 죽은 다음의 일은 실제적으로 알 수가 없습니다. 죽어서 구원받은 사람을 만나 본적도 없습니다. 그러니까 제가 죽은 다음의 일에 대해서는 신경을 안 쓰겠다는 것입니다. 그건 신의 일이지 제 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사후의 일을 미리 예측하고 '이걸 믿어라 저걸 믿어라'하는 것으로부터 해방이 된 것입니다. 그것에 매달리면 구속을 받게 됩니다. 사후의 영역까지는 제가 건드리지 않기로 선을 그었습니다. '잘못하지 말라. 죽은 다음에 지옥 갈지 모른다. 방탕하지마라. 벌 받는다' 그런 측면에서 해방됐다고 보는 것이죠.

-종교가 무엇인가에 대해 갈증을 느끼고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말씀인 것 같습니다. 참된 크리스천의 삶, 진짜 자유인의 삶에 대해서도 그렇고요. 그런데 예수의 생애와 사상을 너무 자유분방한 관점에서 본 것은 아닐까요?

▲저 스스로는 그로부터 종교에 빠지지 않고 종교로부터 해방됐습니다. 조상님들은 그 당시 최선의 선택을 했던 것입니다. 우리 부모님 세대나 그 선대만해도 신문물이 들어올 때이니까 기독교가 가장 신선했을 겁니다. 그래서 그 분들이 그것을 선택했고 그 시대에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던 것이죠. 그런데 부모님세대에서 그것이 끊어졌습니다.

그래서 저는 목사자격증을 따 놓고도 예술을 선택했습니다. 그게 더 낫다고 판단한거죠. 말이 되는지는 모르지만 종교로 승부를 거는 것보다 내 삶 전체를 예술에 걸기로 했지요.

-평소 선생님을 보면서 아쉬운 부분이 있습니다. 노래를 하면 훌륭한 가수입니다. 시선을 모으고 인기를 유지하는 재능을 가진 것 같습니다. 또 그림을 그리면서 거기서도 주목을 받지 않습니까? 65세, 그 나이면 할아버지인데 젊은 사람들과 소통하는 역량도 뛰어난 것 같습니다. 아쉬운 것은 이처럼 뛰어난 재능을 가진 분이 어느 한곳에 역량을 집중시키면 국가와 민족, 인류를 위해 더 큰 발자취를 남길 수도 있을텐데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저는 그런 생각이 없습니다. 인류를 위해서 일 한다던가, 좀더 위대해 진다던가, 그런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어떻게 살아야 재미 있는가, 가장 재미있으면서도 보람을 느끼며 사는 방법이 무엇인가를 찾는 것에 노력을 집중합니다.

제 스스로 보람과 행복지수를 높일 수 있는 것을 찾는 겁니다. 제가 추구하는 것은 불편하지 않을 만큼의 유명함, 그럴 만큼의 여유를 갖는 것입니다. 조용필이나 나훈아처럼 유명해지면 불편하지 않겠습니까? 스스로 불편하지 않도록 사는 것이 진짜 행복이 아닐까요?

노래는 나보다 잘하는 사람들이 얼마든지 있으니까 훌륭하게 하시라고 하고, 저는 '오늘 내일 재밌게, 보람을 느끼면서 살 수 있는 일이 뭐냐' 거기에만 관심을 둡니다. 재미있는 일을 하는데 돈이 따라붙고, 거기다 인기까지 유지되면 그보다 좋은 것이 어디 있습니까?

-어차피 할 일이라면 재미, 보람을 느끼면서 하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스트레스도 덜 받고, 그만큼 생산성도 오를 테니까요. 이태백, 사오정, 오륙도 등에게 매우 좋은 메시지가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어떻게 출세할까, 어떻게 돈을 모을까, 이처럼 초조하게 살다보면 더 수렁으로 빠질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본인이 재미있어 하는 일에 모든 역량을 집중시키고, 이왕 하는 일이 있으면 거기서 행복을 찾고하는 것, 정말 중요한 것 같습니다.

▲제가 하고 싶은 얘기가 바로 그것입니다. 미화원 아저씨들은 풀을 뽑고 쓰레기를 치울 때 가장 재미있다고 느끼면 행복지수는 높아지게 됩니다. 나 때문에 남들이 쾌적하게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하면 그만큼 보람이 생기겠지요. "돈 때문에 내가 이 일을 한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행복하겠습니까?

-어떤 일이든 생각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요즘 우리사회에서 가장 큰 문제는 소통입니다. 조선생님은 65세, 할아버지입니다. 톡톡 튀는 발상과 세대 간의 생각차를 뛰어넘는 말솜씨, 그런 에너지가 어디서 나옵니까? 소통의 기술, 노하우를 CEO들과 정치인들이 좀 배웠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그런 질문 많이 받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가수, 화가, 남친, 아빠로서의 소통의 핵심이자 근원은 젊음(young)입니다. 저의 사고는 젊음에 집중돼 있습니다. 젊음이 바로 소통의 진원지인 셈이지요.

젊음과의 소통은 쉽지 않습니다. 한국사회의 가장 큰 문제는 젊음과의 소통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소통의 장애는 학벌, 나이, 존댓말로 대표되는 몇 가지 요인들 때문입니다. 이런 것들이 해소되지 않는 한 우리는 결코 선진국이 될 수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영(young)-젊다는 것, 새롭다는 것에 대한 개념이 없습니다. 늙은 사람들은 늙어서 그 자체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거 별것 아닙니다.

오히려 젊음이 새롭고 젊다는 것이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명확한 시스템이 작동되지 않으니 소통이 되겠습니까?

-세대간, 계층간, 서로 다른 이익 집단간 마음을 열고 서로 진솔해지는 모습이 아쉬운 것 같습니다.

▲어린아이처럼 되면 모든 게 가능합니다. 성경에도 어린아이가 되지 않으면 천국에 갈수 없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나 애기가 되고 너 애기가 되면' 걸림돌은 자연 해소됩니다. 제가 말하는 젊음의 의미는 바로 그런 뜻입니다. 최근 5살짜리 여친이 생겼습니다. 물론 10대, 20대 친구들도 있습니다만. 딸의 친구들과 대화하는 시간도 종종 갖습니다.

5살짜리 여친과는 1주일에 한번씩 식당에서 만나 이런저런 얘기를 하는데 정말 많은 것을 배웁니다. 자신의 엄마, 아빠에게도 하지 않는 얘기보따리를 쉽게 풀어 놓더군요.

윤희라고 하는데 노래하라고 하면 "개구리가~"하면서 얼마나 귀여운지 모릅니다. 걔가 제 엄마한테는 말을 안 하지만 제 귀에다 대고는 "인형 사 달라", "치마 사 달라" 이야기를 합니다. 저랑은 소통이 되는 것이지요.

미국에서는 이런 관계들이 자연적으로 형성돼 있습니다. "어른들 밥 먹는데 애들은 저쪽에 가있어" 이런 문화는 절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런 야만적인 문화가 어디 있습니까. 로버트 케네디의 사무실 사진을 본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법무부장관실에도 아이들이 버글버글 뛰어놀지 않습니까.

-더 이상 좋은 말이 필요 없는 것 같습니다. 믿음의 원천은 어린아이 같은 생각에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높은 사회갈등비용도 단순한 곳에서 답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요?

▲저는 그렇게 삽니다. 20대를 만나면 20대로 돌아가고 윤희를 만나면 5살짜리 남자친구로 나도 모르게 변신합니다. 그런데 그 변신에 이기적인 욕심이 깔려 있어서는 안 됩니다. 계산된 이기심은 뒤통수를 맞게 돼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우리나라의 정치인들은 정신연령을 낮추는 작업부터 먼저 해야겠군요.

▲그렇습니다. 얼마나 코미디입니까? 나라를 위해서, 국민을 위해서 뽑힌 사람들이 맨날 얼굴을 붉히며 극한투쟁만 하고 있으니,,,,,,. 정치인들이 늘 화난 표정, 심각한 표정을 하고 있으면 이를 지켜보는 국민들의 표정도 닮아가지 않겠습니까?

영국의회처럼 한 사람이 이야기하면 "와!"하고 웃으면서 왜 그렇게 못하는지 안타깝습니다.

-'광대가 뭐냐'는 물음에 대한 답이 재미있었습니다. "광대는 서로 다른 이질적인 사람, 세계, 집단을 연결해주는 운반자다"라는 것이었습니다. 조선생님은 예술인입니다. 그러나 국민들에게 노래와 예술을 통해 감동을 주고, 방송을 통해 웃음을 선물하며 무엇인가 생각하게 하게 한다는 점에서 단절된 소통의 끈을 잇는 운반자의 역할을 하고 있는 셈입니다.

▲제 기술이 카피할만한 것이라면 저로서도 영광입니다. 앞으로 운반자의 역할을 더 충실하게 해달라는 채찍으로 받아들이겠습니다.



-스스로 에너지를 충전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조 선생님은 독특한 에너지 충전소를 스스로 작동하며 동력을 얻는 것 같습니다.

▲저는 신학을 전공했습니다. '예수의 샅바를 잡다'라는 책도 많은 노력과 생각을 통해 집필했습니다. 매일 오전에는 그림을 그리고 있습니다. 그림이 그냥 됩니까? 독서와 생각-그런 노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동력이 끊어지고 맙니다. 건방진 얘기인 것 같지만 그런 것이 '나이롱 뽕'치다가 얻어진 것은 아닐 것입니다.

-'맞아죽을 각오로 쓴 친일선언'이라는 책이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요즘 우리사회의 갈등구조를 보면서 '맞아죽을 각오'로 할 말이 많을텐데요.

▲제 소통의 핵심은 바로 그렇습니다. 결정적으로 우리가 가장 소통이 안 되는 것이 일본하고의 관계입니다. 절단 돼 있지요. 100년 동안 절단됐으니 이를 기점으로 벽을 허물자는 것이 제 주장입니다.

서로 이해하고 잊어버리라는 것입니다. 나쁜 감정을 버리자는 것이지요. 기독교 공부를 한 결과입니다. 기독교에서는 '원수도 사랑하라'고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왜 일본이라는 원수는 남겨둡니까? 잊어버릴 것은 잊어버리고, 해소할 것은 해소해야지요. 지금 우리사회의 갈등양상도 그런 원칙에서 생각하면 매듭이 풀릴 것입니다.

'화개장터'를 부른것도 그런 이유입니다. 전라도와 경상도가 나쁜 감정을 가지고 있으면 쾌적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 후로 많이 친해진 것도 같습니다. 제가 그걸로 표창을 받아야 하는데 일본하고 친하자고 했다가 완전히 내동댕이 쳐졌습니다.

-국회 주제가를 '화개장터'로 하면 여야간의 극한대립이 없어질 것 같습니다.

▲이제는 스스로 깨달았을 것입니다. 소통부재 상태로는 서로가 갑갑하다는 것을 알게 됐을겁니다. 소통이라는 것이 중요한 이슈로 부각됐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선호하는 소통의 방법이 '예술을 통한 소통'입니다. 어떻게 보면 가장 고차원적인 방법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대중가요를 통해서 소통을 하는 것은 철학적인 깊이는 약하지만 편안한 안위를 줍니다. 반면 예술은 깊이 있는 안위를 줄 수 있습니다. 제가 그린 이 그림을 보면 서양의 왕이 화투옷 즉 동양의 옷을 입고 있지 않습니까?

-그림을 영감을 얻을 때 어떤식으로 작업을 하십니까. 어떤 화가들은 현지 답사도 하고 사전 리서치가 복잡한 것 같습니다.

▲ 그렇습니다. 거기서 죽느냐 사느냐가 갈리는 것입니다. 저는 일찍 화투라는 소재를 잡아서 크게 재미를 봤습니다. 화투로 박카스(나의 장수상품)가 된 것이지요. 편견이 심한 나라에서 대중가수가 화가로 올라선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검투사는 만인의 존경을 받으면서 영웅취급을 받지만 패배하는 순간 죽음이라고 합니다. 연예인이 인기가 있을 때는 존경을 받고 사랑을 받지만 인기가 떨어지는 순간 인생의 끝이라고들 말합니다.

▲그래서 자살하는 경우도 있잖아요? 그래서 저는 떨어질 인기를 만들어놓지 않습니다. 올라가지 않으면 되는 것입니다. 너무 높은데까지 올라가지 말자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있는 듯 없는 듯 한 제일 쾌적한 상태가 제가 추구하는 것입니다. 이렇게하면 누구나 다 재미있게 살 수 있습니다. 집안에 그랜드 피아노를 가지고 사느냐, 없이 사느냐가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것입니다.

제가 중학교 때까지 충청도에 살았는데 내 생애에서 가장 행복했습니다.. 가진 거라고는 친구들, 초가집과 국민학교 마당, 중학교에 올라가서는 탁구대 하나 그것밖에 없어도 정말 행복했었습니다. 지금도 가장 그리워하는 시절입니다. 그래서 제 그림에도 초가집이 많이 있지 않습니까?


■ 프로필

1945년 출생

1964년 용문고등학교 졸업

1964년~한양대학교 중퇴

트리니티신학대학교 졸업

서울대학교 성악과 명예졸업

1970년 '딜라일라'로 가수데뷔

1991년 뉴욕 카네기홀 콘서트

1996년 한국방송대상 가수상

1996년 서울대 음악대 동문회 명예회원

1997년 한국화랑미술제 이목화랑 초대전(예술의전당)

1999년 한국상록회본부 선정 제11회 인간상록수 표창

2007년 MBC 연기대상 라디오부문 신인상


정리 = 박소연 기자 muse@asiae.co.kr
사진 = 박성기 기자 musictok@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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