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제철소 설립 이야기-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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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 여름, 포항제철소 부지는 본격적인 공사가 한창 진행됐고 이제 공장을 완공한 다음까지 함께 생각해야 했다.



특히 원료확보 문제가 중요한 사안으로 떠올랐다. 원료를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일이야말로 제철소 경영의 사활이 걸려 있는 문제였기 때문이다. 연간 100만t 규모의 대단위 제철소가 제대로 가동되기 위해서는 주원료인 철광석은 연간 150만t, 원료탄은 80만t이 필요했다. 당시 우리나라에서 생산하는 철광석은 생산량이 매우 적었고 품질도 좋지 않았으며, 코크스 원료인 유연탄은 국내에서 전혀 생산되지 않았다. 수입이 불가피한 상황이었다.



포스코는 필요한 전체 철광석의 20%를 국내에서 조달하고 나머지 120만t과 원료탄 전량을 수입하기로 결정했다. 세계 주요 철강기업들은 탄탄한 거래관계를 바탕으로 신설기업보다 유리한 조건에 원료를 확보하고 있었다. 포스코가 대등한 가격 경쟁력을 갖기 위해서는 그들과 같은 가격, 비슷한 조건으로 원료를 수입해야 했다.



우선 일본 종합상사에 위탁구매 가능성을 타진했다. 미쓰비시상사는 한국이 원료를 직접 구할 수 없을 것이라고 장담하며, 위탁수수료를 요구했다. 철광석과 유연탄은 일반 상품처럼 쉽게 구입할 수 있는 것이 아닌 만큼 소비량과 대금 지불능력을 100% 확신할 수 있을 때라야 원료 채굴을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일본 종합상사들은 포스코의 원료 계약권을 독점하기 위해 끈질기게 포스코를 설득했지만 수수료까지 덧붙인 비싼 값에 원료를 구입할 수는 없었다.



이번에는 종합상사가 아닌 신일본제철을 찾았다. 우선 1년 동안 쓸 원료가 급하니 신일본제철에서 구매하는 원료를 그만큼만 되팔 수 없는지 타진했다. 결과는 거절이었다. 다른 제철소들이 반대할 뿐만 아니라 포항제철소가 나중에 경쟁상대가 될 수도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일본과 더 이상 접촉해봐야 결과는 마찬가지일 것이 분명했다.



직접 원료를 구매하기로 한 포스코는 대표단을 구성해 호주의 세계적 철광석·원료탄 생산업체인 해머슬리(Harmersley Iron PTY. LTD)와 벨람비석탄회사(The Bellambi Coal co. PTY. LTD) 등을 방문했다. 그러나 일본 무역상사들이 호언했던 대로 대표단을 문전박대했다. 필리핀이나 인도네시아가 제철소를 건설했지만 대부분 실패했고, 설사 성공한다 해도 통상 1년 정도 공기가 지연되는 것이 보통이며, 세계시장에 팔 수 있을 만한 품질의 철강을 만들 것인지, 대금결제 능력을 가질 것인지도 장담할 수 없다는 게 이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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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박태준 사장이 직접 나섰다. 먼저 외교경로를 물색해 주한 호주 대사와 접촉했다. 1971년 7월 하순, 호주 정부는 박 사장을 초청하는 한편 원료공급업체와의 만남도 주선해 줬다. 협상이 어려울 것으로 예상한 박 사장은 상대방에게 믿음을 줄 수 있을 만한 자료를 최대한 준비했다. 또 아직 기초공사 중인 공장부지마다 커다란 푯말을 세우고 공장 명칭을 쓴 다음 사진을 찍었다. 완성된 제철소의 모습을 보여준다면 협상이 한결 수월할 테지만 아직 그럴 수가 없었던 것이다. 달리 방도가 없었다.



광산 소유주들이 모여 있는 자리에서 박 사장은 준비해간 사진자료들을 보여주고 포항제철소가 반드시 성공할 것임을 강조했다. 한국 정부가 보증하는 국영기업체라는 점도 강조했다. 하지만 그들은 비웃거나 화를 냈다. 며칠 동안 끈질기게 설득했지만 효과가 없었다. 현지 대사관을 총동원해 설득공세를 펼치기도 했지만 허사였다.



이 때 박 사장은 호주인들이 ‘장군’에 대해 특별한 존경심을 갖고 있다는 말을 기억해 내고, 장군 정복 차림에 계급장을 달고 광산 소유주들을 만났다. 실제로 그들은 태도를 바꾸고 박 사장의 말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온갖 정성을 기울인 끝에 마침내 해머슬리의 약속을 받아냈다. 해머슬리가 손해를 입게 된다면 한국 정부가 모든 책임을 질 것이라는 손해배상 각서까지 쓰고 철광석 공급 약속을 받았다. 벨람비와도 접촉해 사우스불라이탄을 수입하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벨람비는 구두약속을 어기고 일본에 공급하는 것보다 비싼 값을 요구해왔다. 포스코는 이들 호주업체의 계약서를 돌려보내고, 미국과 인도 등 다른 지역의 업체에 원료 공급 가능 여부를 조사했다. 호주 원료업체들이 이 사실을 알아채고는 물량에 관계없이 일본과 동일한 가격에 원료를 공급하겠다고 합의했다.



결과적으로 포스코는 공기가 늦어지기는커녕 앞당겨 조업을 시작, 계약한 원료생산업체들을 놀라게 했다. 특히2년 후인 1973년 포항 1기 설비가 가동된 지 4개월도 지나지 않아 제1차 석유파동이 터져 원료가격이 폭등했다. 세계 각지의 제철소들은 원료확보를 위해 동분서주했다. 포스코는 장기공급계약 덕분에 느긋하게 상대적 이익을 거둘 수 있었다.



그 후 설비를 확장할 때마다 공기를 단축, 해외 원료공급업체들은 포스코를 믿음직한 대형 바이어로 여기게 됐다.<자료제공: 포스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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