펀드 환매를 중단하면서 금융위기의 경종을 울렸던 베어스턴스가 몰락한 지 꼭 1년이 지났다. 이후 미국을 포함한 선진국이 천문학적인 규모의 유동성 공급과 금리 인하로 위기 진화에 나섰지만 터널의 끝은 아직 멀기만 하다.

최근 7000선을 뚫고 내려갔던 미국 다우존스가 지난 주 9% 급등하며 급락에 제동을 걸었으나 본격적인 상승을 점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겹겹의 불확실성 속에서 시장을 예측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지만 이번 위기가 투자가들을 더 힘들게 하는 이유는 전통적인 시장 지표들이 통하지 않다는 데 있다.

◇ PER = 주가 가치를 평가하는 대표적인 지표 중 하나가 PER(주가수익률)이다. PER은 개별 주식의 주가나 대표 인덱스가 고평가되었는지 아니면 저평가되었는지 여부를 판단해 투자 결정을 내리는 데 사용되는 가장 기본적인 잣대다.

주요 외신에 따르면 미국 증시의 역사적인 시장 PER은 15배였다. 통상 시장이 과열일 때 PER이 25배까지 치솟고, 최악의 약세장일 때 8배까지 곤두박질쳤다. 최근 시장 PER은 10-11배에서 움직이고 있다. PER이 평균을 밑돌고 있으니 저평가 상태이고, 매수 시기라고 봐야 할 수치이지만 최근 상황은 지표를 액면 그대로 신뢰할 수 없다는 것이 투자가들의 지적이다.

톰슨 로이터의 집계에 따르면 지난 1-2월에만 미국 상장기업의 이익은 18% 급감했다. 이처럼 E(이익)가 가파르게 떨어진 데다 경기 하강이 여전히 진행중이기 때문에 현재 집계된 PER을 신뢰할 수 없다는 목소리가 높다.

트림탭스 인베스트먼트 리서치의 찰스 바이더만 대표는 "경기가 자유낙하하는 상황에 앞으로 기업이 얼마나 이익을 벌어들일 것인지 예측하는 것은 지극히 어려운 일"이라고 지적했다.

◇ 매도 클라이막스 = 매도 세력이 항복할 때가 시장의 바닥이라는 얘기도 시장의 오랜 통설이었다. 위기가 닥치면 리스크에 가장 민감한 '새가슴' 투자자부터 주식을 매도하기 시작해 '팔자'가 극에 달하면 시장은 한 차례 극심한 공황을 겪게 된다. 이 때까지 팔지 않고 버티는 투자자들은 오히려 약세장에 적극적인 매수에 나서며, 이들의 뒷받침으로 시장이 체력을 회복해 상승 반전이 이루어진다는 얘기다.

하지만 팔다 지친 투자자들이 남은 주식까지 팔게 만드는 것이 이번 위기의 특징이다.

비즈니스위크 최신판은 투자가들이 지난해 9월 이른바 '매도 클라이막스'가 지났다고 여겼으나 이후 '팔자'가 추가로 나오며 주가를 끌어내렸다고 지적했다. 극단적인 공포 심리도 이번 위기에서는 신뢰할 만한 지표가 아니라는 얘기다.

◇ 증시 주변자금 = 주식형 펀드나 직접 투자자금이 증시에서 이탈해도 MMF를 포함한 증시 주변자금이 풍부하면 투자자들은 안도하게 마련이다. 이 자금이 저가 매수의 동력이 돼 급락에 제동을 걸거나 하락 후 반등을 이끌어내기 때문이다.

시가총액 대비 주변 자금의 비중이 높을수록 투자가들은 주가를 받치는 든든한 지원군을 확보했다는 믿음을 갖게 된다.

하지만 증시 주변자금 역시 이번 위기에서는 무용지물이라는 지적이다. 미국 증권업계에 따르면 지난 1월 주변자금 비중은 1984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지만 투자가들은 유동성의 힘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다.

고용 불안이 날로 높아지고 있어 투자가들이 공격적인 투자보다 자산을 지키는 데 급급하기 때문이다. 또 최근 시중 자금 흐름을 볼 때 투자자들이 주식을 매도해 안전 자산으로 옮기는 것 외에 부채 상환과 기본적인 생활비 충당에 사용하는 것으로 보인다는 분석도 제기됐다.

◇ 연말까지 고통 연장 = 금융 저술가 겸 역사가로 활동중인 올해 90세의 노장 피터 번스타인은 "이번 위기는 역사 속에서 해결책이나 향후 전망의 실마리를 찾기 힘들다"고 말한다. 10대 청소년기를 대공황 속에서 보낸 그는 "더 절망적인 것은 주가 하락의 속도와 깊이가 과거 어느 위기때보다 크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투자가들은 앞으로 6-9개월 동안 고통스러운 시간이 이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기업 파산과 주택 압류, 금융권 부도와 고용 악화 등 투자가들을 기다리는 악재가 아직 산적해 있다는 지적이다.


황숙혜 기자 snow@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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