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그래도 희망을 쏜다] <1> 시대별 20대 한자리에
아사이경제신문은 온·오프라인 개편에 맞춰 한국사회의 경제 흐름을 반영, 네티즌들이 관심을 갖는 사회적인 이슈를 집중 기획 보도합니다.
그 첫순서로 취업난과 자기상실에 고뇌하는 2009년 20대 자화상을 그린 '20대 그래도 희망을 쏜다'를 총 12회에 걸쳐 온라인으로 게재합니다.
[프롤로그] 한국의 20대는 '충격과 변화'에 익숙하다. 민주화운동이 한창이던 80년대에 태어나 애인손을 잡고 촛불집회에 참가하기까지, 조용필 모창으로 재롱을 부리다 아이폰으로 랩을 듣기까지 각 시대를 상징하는 20대들의 모습은 현저히 다르다.
그만큼 그들의 고민과 생활방식, 추구하는 삶의 질은 시대의 흐름에 맞게 진화하고 있다.
격변의 시대 속에 다양한 패턴으로 나타나는 요즘 20대의 치열한 삶의 정글, 그속으로 들어가봤다.
취업문제, 이성문제로 밤잠을 설치는 요즘 20대. "만약 내가 과거에 살았다면 얼마나 좋은데 취직할 수 있었을까?", "자유로운 영혼의 내 여자친구는 언제든 날 떠나지 않을까" 고민거리는 점점 늘어만 간다. 하지만 과거의 20대들도 나름대로의 고민이 있지 않을까?
40, 60대의 육성증언과 통계청 자료를 바탕으로 20년전과 40년전에 살았던 20대들의 이야기를 가상대담으로 꾸몄다. 60년대 이대팔씨(20, 은행원)와 80년대 오대오씨(26, 자동차 세일즈맨), 2000년대 샤기킴 씨(29, 예비직장인)가 시대별 대표로 참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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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기킴 : 전 요즘 취업도 어려운데다 뭘해도 즐겁지 않아요. 무기력해지는 일상입니다. 심지어 세상살이에 지쳐서 방으로 숨는 친구들도 있구요. 다들 무슨 재미로 사시는지요?
이대팔 : 반갑습니다. 가르마가 반듯반듯한 이대팔입니다. 사기.. 아니 샤기 킴씨, 것참 우문이군요. 제경우는 얼마전에 고향집에 드디어 라디오를 들여놨지요. 월계약금 1만원을 내고 10개월할부로 말입니다. 제 월급이 9만원 정도이니 사실 엄청난 돈입니다만 가족들이 기뻐하니 저도 좋습니다. 집에 들어오면 가끔 종로로 나가 친구들과 술을 마시거나 클럽에서 맥주를 마십니다만, 아무래도 제일 기쁜 건 하숙집 방에서 저축계획을 세우는 거지요. 오파상 사무실에서 사환을 보고 있는 미쓰박과 곧 식도 올릴 참입니다.
샤기킴 : 아 그시절에도 클럽이 있었군요. 부비부비도 하고 그러나요.
이대팔 : 무슨 말씀인지 모르겠군요. 아 그리고 60년대라고 촌스러운 시대였다는 생각은 버리세요. 얼마전엔 문정숙, 김승호씨가 주연한 ‘계약결혼’이란 영화도 있었더랬습니다. 아마도 미국문화영향도 있고 한참 나라 규모가 커질때라 ‘케세라세라’로 막나가는 방탕한 족속도 꽤 있었더랬지요.
오대오 : 강철대오 오대오입니다. 인사가 늦었군요. 동기들과 대학 시절 밤새워 시국토론을 하던 습관이 이어져 직장에서도 정치 사회 문제를 놓고 난상토론을 밤늦게까지 하고 있죠. 대학 후배들 모아놓고 술 사주는 게 낙입니다. 어째 요즘은 후배들이 술을 사줘도 별로 기뻐하는 기색이 없네요. 다들 속으론 저같은 사람이 되지 말아야지 하는 생각들 하겠죠. 웃고 떠들며 소주를 마시다가도 그런 눈빛들을 보면 섬뜩해집디다.
샤기킴 : 다들 여자친구는 있으세요?
이대팔 : 로맨스 영화도 많지만 실제로 저같이 연애하는 경우는 아주 드물어요. 주변에 직장을 가지고 있는 여성도 적을뿐더러 대부분 중매결혼을 많이 하던 때라서.. 하지만 곧 결혼을 하게 되면 안사람은 주부로 있게 할 참입니다. 아이들 교육이나 살림 꾸리는 건 여자 몫이니까요.
오대오 : 영화속에서야 미팅이다 뭐다 해서 나오지만 제 개인적으로는 거의 대학생활을 제대로 누리지 못했습니다. 수업에도 제대로 못들어갈만큼 시국운동에 열심이었으니까요. ‘데모’를 하다 동지끼리 연애하는 경우도 꽤 있었죠. 캠퍼스커플이란 말도 제가 있는 80년대에 본격적으로 나왔으니까요. 저는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야 이성과의 만날 기회가 있었습니다만 어떤 친구들은 미팅에도 나가고 연애해서 일찍 결혼한 친구들도 많아요.
샤기킴 : 요즘은 능력 인플레이션이라 다들 엄청난 스펙을 자랑하지요. 각자 취업조건은 어떤 걸 갖추셨지요?
이대팔 : 18살에 상고를 졸업하고 서울 명동에 있는 은행에 취직했습니다. 사실 전 사범대학교를 나와 존경받는 선생님을 하고 싶었지만, 부양 가족이 많아 어쩔 수 없었어요. 나름대로 안정된 직장이라 아직까지는 다닐 만합니다. 아 물론 그 시절의 상고는 지금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의 실력을 갖춰야 들어갈 수 있는 곳이었어요. 저는 타자기 자격증도 가지고 있었던 게 나름대로 경쟁력이라 할 수 있겠네요.
오대오 :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했지만 그다지 학점이 좋지는 않았어요. 3.0만점에 1.8정도.. 중소기업은 염두에도 없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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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기킴 : 요즘 대학생들이 기본적으로 갖추는 것만큼은 해야죠. 학점은 4.5만점에 4.3, 어학연수 9개월에 야학 동아리 생활도 2년이나 했어요. 외국회사에서 인턴도 반년 했습니다.
이대팔 : 봉사활동이나 동아리활동도 이력서에 쓰나요?
샤기킴 : 기업별로 맞춤전략이 필요하다고 하지만 기본적으로 제가 ‘적극적’이란 인상을 심어주기 위해서죠.
이대팔 : 제가 사는 시대에선 그정도 역량을 갖춘 사람이면 정부의 고위 관리가 됐을거에요.
오대오 : 제가 사는 시대도 그렇지만, 너무 기업 눈치를 보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드네요. 그렇게까지 자신을 미화해야 하는건지 궁금하네요.
샤기킴 : 이미지가 중시되는 시대니까요. 그런데, 여러분들이 살던 때는 취업이 정말 쉬웠습니까?
이대팔 : 쉽다기 보단 수요가 많았죠. 내가 사는 시대는 이른바 ‘개발연대’라고 불렸습니다. 외채 도입 수출주도형 경제개발로 만성적인 무역적자와 높은 대외의존도의 불씨를 만들었기에 불안한 눈길도 더러 있었지만... 수량적으로 보자면 투자가 확대되고 경제규모도 커져서 실업률도 떨어졌어요. 다만 직장의 질이 문제였습니다. 수출중점품목이었던 가발과 섬유 제조업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고통이 컸지요.
오대오 : 기업에서 사람 고르는데 있어서 그다지 큰신경은 안썼어요. 대학교를 졸업한 사람들도 많지 않았구요. 3저 호황(국제금리,유가,원/달러환율이 모두 낮은 상태)에다 경제성장률은 86년 12.9% 87년 13% 88년 12.4%로 단군 이래 최대 호황을 누렸어요. 다들 대기업 중심개발정책과 가계간 소득 불균형이 심해져 곧 경제불황이 올거라는 생각을 했는데 기막힌 반전이었지. 그러나 그게 다였는지는 아직 모르겠어요. 덕분에 늘 운동만 하다 졸업했는데도 대기업 6군데에 지원하니 4군데에서 오라는 연락이 오더군요.
샤기킴 : ...... 최고 인기직종은 어떤 거였나요?
이대팔 : ‘대마불사’ 은행원 아니겠습니까. 최고신랑감중 하나가 은행원이었지요. 사실 제 직업도 은행원입니다.
오대오 : 은행원도 인기였고 교사직 같은 공무원도 인기였어요. 생각해보십시오. 우리 누이는 85년에 상고를 졸업하고 농협에 들어갔다가 학교를 다니고 싶다며 안정적인 직장을 때려치고 나왔어요. 당신이 사는 시대엔 잘 있을 수 없는 일이죠..
샤기킴 : 지금도 은행원은 여전히 인기죠. 물론 얼마전에 잡코리아란 취업포털에서 조사해보니 성별 구분없이 절반 가량이 공무원을 꼽았답니다. 변호사, 의사 등의 전문직과 교사였다죠. 이 시대 ‘대마불사’는 공무원인가 봐요.
이대팔 : 다들 제일 고민되는 건 어떤 거에요? 아무래도 저때는 부양할 가족이 많았죠. 때문에 원래 가고 싶었던 사범대학교도 포기해야했구요.
오대오 : 대학시절 느꼈던 이상과 취업후 현실과의 괴리때문이랄까요. 80-90년대에 단란주점들이 번성한 이유 중에 하나로 저같은 사람들도 한몫했을겁니다. 술을 많이 마셨죠. 옛 대학시절 친구와 만나면 서로 ‘변절자’라고 하며 싸우기도 많이 했습니다.
샤기킴 : 글쎄요.. 오늘 말씀을 들어보니 시대가 바뀌어도 고민들은 다들 비슷하시네요. 언제고 힘들지 않았던 때는 없는것 같아요. 저는 일단 취직부터 되야할텐데.. 그러고 보니 제 나이가 제일 많네요..
박충훈 기자 parkjovi@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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